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초등학교 동학년 교사가 함께 만드는 수업

집단지성으로 만들어가는  PBL 기반 교육과정 재구성

글_ 윤혜원 서울교대부설초등학교 교사(ft.정제용, 정민형, 홍명종)


01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 시작하지?

  PBL(Project based learning)은 이름만 들어도 뭔가 엄청난 것(?) 같은 느낌에 나 같은 평범한 교사는 시도해 볼 용기마저 나지 않을 정도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차원의 벽) 같은 존재였다. 시도해볼까 말까를 고민하던 때, ‘올해 본교 교육 방향은 PBL 기반의 교육과정 재구성으로 추진한다.’라는 학교 차원의 결정은 당혹감과 함께 그간 갈팡질팡하던 고민을 싹둑 잘라주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함께 고민한다고 해서 PBL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하나씩 품고 만난 4학년 교원학습공동체 첫 모임. 첫 모임은 예상 밖의 학교 결정과 PBL에 대한 불신, 불안, 불만의 성토로 대화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일을 돌이킬 수는 없는 법. 일단 서로의 생각 차이를 좁히고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PBL 관련 도서, 연구자료, 강의 등을 통해 각자 PBL의 정의, 운영 방법, 그리고 교육과정 재구성 주제 찾기가 숙제였다.


02 집단지성의 무한한 가능성

  두 번째 교원학습공동체 모임에서는 우리의 PBL에 대한 인식변화를 알 수 있었다. 그간 PBL이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PBL 수업에서 교사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정말 우리의 계획대로 될까?’, ‘진짜 학생들이 좋아할까?’라는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환되었다.

  첫 PBL 주제는 ‘우정’. 4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경험해 본 학교폭력예방실태조사 기간과 맞물려 학생들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갈 것이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학기 초에 자연스럽게 조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가 컸다. ‘우정’을 주제로 즉석에서 브레인스토밍을 실시했다. 관련 교과, 관련 단원, 성취기준, 활동내용, 최근 학생들의 흥미를 반영할 수 있는 자료(드라마, 영화, 만화 등등), 우정에 관한 책과 이야기 등등.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핵심역량, 성취기준)

2. 학생들이 배운 내용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평가내용, 평가기준, 평가방법)

3. 학생들은 어떤 내용으로 배움을 표현할 것인가? (학습내용)

4. 학생들이 흥미로워할 요소는 무엇인가? (학습자료, 학습기법)

  내키는 대로 작성한 마인드맵[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동학년 대화방에 공유한 다음 날,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의 마인드맵 자료를 2반 선생님이 정리하여 제시하였고, 또 다음 날 체계화된 PBL 차시별 계획을 3반 선생님께서 제시하였다. 그야말로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집단지성’이라는 낱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03 욕심 많았던 우리의 ‘첫 PBL 수업’

  첫 PBL로 ‘어떻게 해야 우정을 쌓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라는 탐구 질문 아래 [우정 컨설팅회사가 되어 우정 쌓기 프로그램 만들기]를 구성했다. 가장 투덜대던 학년이 가장 먼저 PBL을 시작했다는 모순과 다른 학년의 시샘 섞인 부러움 속에 4학년의 수업을 공개했다. 단순히 학생들의 산출물을 제시하는 결과 중심 공개수업이 아닌, PBL의 의미와 과정이 드러나는 살아있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우정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는 독서연계 교육연극수업(국어), ‘우정 쌓기 간식 만들기’를 통한 혼합물 분리수업(과학), ‘우정 쌓기 놀이’를 응용한 협력 놀이수업(체육)을 선보였다. 수업 그 자체로도, PBL의 내용에서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하지만 첫 PBL인지라 기대와 함께 욕심도 많았던 탓인지, 너무 많은 교과와 내용을 담아낸 것이 문제였다. 우리는 ‘학생들에게도 첫 PBL 경험이니 천천히 진행하자’, ‘수업 중에 배우는 내용으로 산출물을 만들고 최종 발표 때 이를 정리하여 발표하면 쉬울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두 달이라는 긴 PBL 과정에 어려움을 느꼈다. 야심 찬 첫 PBL에 큰 기대를 품었던 우리는 PBL 활동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과 기대에 못 미치는 산출물에 아쉬움이 컸다. 반면 학생들은 자기 회사의 프로그램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고 혹시 다음 PBL도 있는지, 언제 다음 PBL이 안내되는지,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모습에 다시금 작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교류 PBL 산출물



PBL 활동 중에 ‘교사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04 수업이 변하니 아이들이 변하더라

  두 번째 PBL은 좀 더 간결하게 해보기로 하였다. ‘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서울에 대해 더 깊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 아래 각 반에서 1주일간 개별적인 PBL을 실시해보기로 했다. 1반은 미술과 연계한 [서울의 입체 지도 만들기], 2반은 국어와 연계한 [서울 홍보대사 되기], 3반도 국어와 연계했지만, 전혀 다른 내용의 [서울의 문제점 해결 공청회]로 진행하였다. 4반은 메이커수업과 연계한 [우리가 상상하는 서울 만들기]로 진행했다. 쉬는 시간 중 산출물이 전시된 복도에서 우리는 놀라운 모습을 발견하였다. 뛰어노느라 복잡했던 복도가 자연스럽게 산출물 발표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자신들의 산출물을 자랑하느라 신났던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 끝나면 “다른 반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대요, 우리 반은 왜 그거 안 했어요? 다음에는 우리도 그렇게 해요.”라며 수업내용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또 다른 놀라운 모습을 선보였다. 선택의 힘, 자율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1학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2학기 PBL은 총 3번, 각 PBL 운영기간은 한 달 내외로 실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최종 산출물 발표 방식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켰다. 

  첫 번째 PBL은 ‘어떻게 해야 도시와 촌락에 대해 더 진지하게 탐구할 수 있을까?’라는 탐구 질문 아래 [마을 플래너가 되어 도시와 촌락 살리기]라는 주제였다. 학생들에게 PBL 내용, 일정표, 산출물 평가기준, 참고사항 등이 적힌 개별 안내문을 제공하였다. 흥미로웠던 것은 1학기와 다른 최종발표 방식(자신의 반이 아닌 다른 반으로 2모둠씩 이동)이 학급 내 협력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반이 다른 반에게 부족해 보이면 안 된다며,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중간발표 시 다른 모둠의 발표를 경청하고 다른 모둠의 활동에 도움을 주려 애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각 반에서 실시한 최종발표 후 기존의 반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법들(직접 만든 광고영상, 즉흥극으로 표현한 문제 상황, 이미지 중심의 깔끔한 PPT 구성,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협력해서 발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 등)에 놀란 학생들은 다음 PBL에 대한 높은 도전의식을 보였다. 몇몇 학생들은 “체육 시간에 할 수 있는 운동경기를 변형해서 소개하는 PBL 어때요?”, “뚝딱누리에 가서 뭐 만드는 PBL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라며 자신들이 만들어 온 PBL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05 앎과 삶의 연결고리 찾기

  4학년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PBL은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배운 것을 자신의 삶과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탐구 질문 아래 [연극으로 배움 나누기]라는 주제로 정해졌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했다. 배움을 표현할 과목, 단원, 패러디할 내용(동화, 영화, 만화, 광고 등등), 등장인물의 수(단독 모둠 또는 모둠 간 협력), 표현 방법(마임, 역할극, 뮤지컬, 콩트 등등)과 같은 연극적인 부분을 구안할 수 있는 영역만 안내하고 나머지 부분은 학생들이 모두 토의를 통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좀 더 질 높은 토의를 위해 모둠토의 협력학습지를 제공하자는 것과 학생들이 PBL 수업의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활동 중에는 평가기준과 내용을 제시하기로 했다. 이는 우리의 기대보다 효과적이었다. 협력학습지를 통해 모둠원 전체의 생각을 끌어냈고,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고집하기보다 서로 융합하여 더 발전된 의견을 만들었다. 가끔 모둠활동에 불성실하게 참여하는 학생도 게시된 평가내용을 보고 깜짝 놀라서 모둠활동에 다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망의 마지막 PBL 발표는 3시간에 가까운 긴 연극발표 시간이었다. 영화상영 시간보다 더 긴 발표시간을 학생들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학생들은 집중하여 관람했다. 어쩌면 평가기준 중에 관람 태도도 평가에 들어간다는 점도 한몫했을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의 연극 속에 표현된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 맞춰보고, 재치 있는 장면에서는 환호와 박수도 아낌없이 보내주며 실제처럼 연극을 관람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당초 연극발표 후 바로 ‘질문과 칭찬 나누기 활동’을 계획하였는데, 학생들의 발표 욕구가 너무 높아서 이를 실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후회의를 통해 최종발표를 하루에 진행하는 것보다 2일에 나눠서 또는 4일에 나눠서 연극을 진행하였다면 ‘질문과 칭찬  나누기 활동’을 실시하고, 더 깊은 배움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결론을 맺었다.


연극 PBL관람

 


연극 PBL 과정 산출물




06 아이들도 자라고, 선생님도 자란다

  1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낀 것은 학생들을 더 믿어주어도 된다는 점이었다. PBL 활동 중에 ‘교사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동료 선생님들도 더 믿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향의 차이, 능력의 차이,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우리의 부족한 점을 더 잘 메꿔줄 수 있었다. 그 어떤 의견도 경청하고 격려하는 1반 선생님. 제시된 의견을 모아서 깔끔하게 정리하는 2반 선생님. 쉼 없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또 제공하는 3반 선생님. 기존과는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도록 시야를 넓혀준 4반 선생님. 각각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주었기에 ‘PBL 기반의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첫 경험을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도전하고 싶지만 나를 믿지 못해서 시도해보지 못한 것 중 하나가 PBL이었다. 2019년이 시작될 때에는 너무나 두려웠던 PBL이었지만, 이제는 PBL 홍보대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PBL의 매력에 퐁당 빠지게 된 나를 발견한다.

  2020년이 시작되는 지금, 올해는 또 누구와 함께, 또 무엇을 통해 자라게 될지 기대해본다.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