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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代 교육명가를 만나다_ 이주호 충북 형석고 교감 가족


“바른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이
선생님으로 이끌었죠”


집 앞마당 벤치에서 제자들이 보낸 편지를 함께 보고 있는 이주호


  5월 스승의 날 3代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다. 한국전쟁을 겪은 이후 교단에 선 아버지를 따라 아들과 손녀가 대대로 제자들을 가슴에 품었다. 1957년부터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 동안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잇고, 이제는 딸이 그 길 위를 함께 걷기 시작했다.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라.”는 3대째 스승의 길을 걷는 이들의 나침반이 되었다. 이재춘(86) 퇴임 교사, 이주호(58·아들) 충북 형석고등학교 교감, 이남경(25·손녀) 세종 도원초등학교 교사가 이룬 3대 교육가족의 이야기다.


이재춘 퇴임 교사가 교사로 재직할 당시 지도에 가장 열정을 쏟은 모형 비행기

이주호 교감은 언론에 보도된 아버지의 지도 모습을 액자로 만들어 소중히 보관 중이다.


  “화선당(和善堂)은 항상 화목하고 선량한 기운이 있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인연이 있는 한문 선생님께서 우리 가족을 오랫동안 보시고 지어주셨지요. 율곡 선생님의 말씀인 ‘화선지기(和善之氣)’의 뜻을 담아 당호를 써 주셨어요.”

  대대로 교육자를 길러낸 집안으로 이들 교육가족은 이미 지역 내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이주호 교감은 “오랫동안 4대가 모여 살았다.”며 요즘 흔치 않은 집안이라고 웃는다.

  여든이 넘은 이재춘 어르신은 집안의 기둥이다. 어린 시절 호된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고 나서도 교사로서 ‘바름’과 ‘정직’을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여겼다. 그래서일까. 2남 2녀인 자식들은 모두 교육계에 몸담고 있다. 교감이 된 큰아들과 부부 교사인 둘째 아들 내외, 큰딸은 중등 수학교사로, 작은딸은 대학교 기획예산처에서 근무 중이다. 손녀딸은 할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교단에 선 지 3년 차 된 새내기 선생님이다.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요(웃음). 특별한 건 없어요. 단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자녀들을 앉혀 놓고 오랜 시간 무언가를 가르쳐 온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제자들을 보듬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고 듣고 익힌 것일 뿐. 손녀인 이남경 교사는
  “어릴 때부터 본 두 분의 삶이 그대로 몸에 뱄다.”고 했다. 솔선수범(率先垂範)은 대대로 교육자를 만든 비결이 아닐까.


매일 새벽 5시 출근길에 나선 교사…
모형항공기와 과학발명품경진대회 지도 ‘열정’


이재춘 퇴임 교사


  “한 달 월급을 밀가루, 강냉이, 우유가루 등 포대로 받았어요. 한국전쟁이 끝나고 어려웠을 때라 모두 그랬지요. 28~30원 정도인데 하숙비, 용돈을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었죠.”

  이재춘 퇴직 교사는 한국전쟁을 겪고 난 후 1957년 처음 교단에 섰다. 사범학교가 본격적인 교사양성기관으로 자리 잡기 전, 그는 초등교원양성소를 통해 준교사자격검정고시로 입직했다.

  힘들고 어려울 때였지만 아이들의 성장은 인생에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특히,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던 그는 모형항공기 제작 지도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79년 처음 열린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대회에 이듬해부터 출전, 이후 수많은 모형비행기대회 수상을 이끌었다.

  “아이들과 함께 모형비행기를 만들어 아침마다 연습했어요. 바람이 불지 않는 새벽부터 공터에 나가 지도하는 일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즐거웠지요.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면 방과 후 다시 모여 모형비행기를 만들고 아침엔 또다시 공터로 갔죠.” 20여 년 가까이 새벽 5시면 출근길에 올랐던 이유였다. 손녀는 “어릴 때 선생님은 다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교사가 된 지금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며 “수업하고 업무처리 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시간외 초과근무수당도 없을 때라 그에겐 ‘열정’만이 원동력이었다. 이후에는 과학발명품경진대회 지도로 아이들 역량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이 때문에 ‘99년 퇴직하고서도 5년 더 학교에 남아 아이들 모형항공기 등 과학 발명품 지도를 도왔다. 2004년에는 손자가 제26회 전국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금상(산업자원부장관상)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이러한 열정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아버지 뒤를 이어 교직의 길을 선택했다.

  “선생님은 아무리 어려도 ‘선생’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거기에 걸맞도록 행동해야 하지요. 바른 사람, 제가 아이들에게 강조한 건 ‘바른 사람’만 돼라는 말이었어요.”


나눔을 실천하는 ‘헌혈왕’…
7년간 봉사활동 이끌며 제자 사랑


이주호 충북 형석고등학교 교감


  이주호 교감은 윤리를 전공하고 교단에 섰다. 바르고 정직하게 살라는 가르침으로 그는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남을 배려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봉사활동 지도는 제게 언제나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스승으로서 더욱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지요.”

  이 교감은 2009년부터 형석고에서 ‘단지사랑나눔’ 봉사동아리를 지도해 왔다. 7년 동안 꾸준히 아이들과 봉사활동을 다니다 보니 주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딸인 이남경 교사는 “제자들이 아빠 얼굴을 더 많이 봤을 것”이라고 웃는다.

  가족들 입에서 “학교 일이 언제나 1순위”라며 타박을 듣다가도 아버지도 그런 삶을 사셨고, 형제들도 모두 교직에 있다 보니 “이해한다.”는 말로 되돌아온단다. “아버지가 정말 존경스럽다. 교사가 된 지금은 더욱 그렇게 느낀다.”는 딸이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 제자인 언니, 오빠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다닌 탓에 교사로서 아버지의 모습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봐 왔다. “제자들로부터 편지를 많이 받는 인기남이시다.”는 딸은 “궂은 일 마다 않고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시는 걸 보고 배웠다.”라고 말한다.

  이 교감은 올해 뜻깊은 기록도 세웠다. 헌혈 168회의 기록. 좋은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이 수혜자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돕게 된다는 믿음의 설천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삶을 보고 배우며
교사로 성장합니다”


이남경
세종 도원초등학교 교사


  “할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일이 가장 훌륭한 길이라고 어릴 때부터 말씀하셨어요.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제가 눈을 뜨기 시작한 갓난아기 때부터 말씀하셨다고 해요(웃음). 지금은 그 말씀에 무척 감사하고 있죠.”

  올해 교직경력 3년 차인 이남경 교사는 할아버지의 소원(?)을 이룬 장본인이다. 아버지 뒤를 이어 교사가 되자 가장 기뻐한 사람은 단연 할아버지였다고. “자연스럽게 가정교육이 되지 않았나 싶다.”라고 이주호 교감은 말한다.

  “어린아이들하고 생활하셔서 그런지 또래 분들보다 활기가 넘치셨어요. 아이들 기를 받아서 젊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교단에 선 후에는 일이 어려워도 먼저 나서서 하는 선생님이 되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어요. 아이들에게 잘해야 한다고요.”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날에는 교육 문제로 일대 토론이 벌어진다. 학교, 교실, 아이들 이야기 등등. 가정교육부터 청소년 문제, 결손가정 등에 대해 서로 생각을 나누다 보면 교사로서 한 뼘은 커진 느낌이라고 했다. 특히, 새내기 교사들이 잘 모르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해서도 이 교사는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상처받거나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아이들 입장에서 헤아려야 한다고 조언해주세요.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든든한 교육가족이 힘이 됩니다.”

  방학 때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도 교육가족만의 큰 장점이다. 다만, 교직 사회를 벗어나면 “사회 물정에 어두울 수 있다.”라고 귀띔하기도 한다. 


지난해 교육명가로 수상한 표창패(위)와 할아버지,아버지가 교사로 재직하며 수상한 각종 감사패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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