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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라는 이름, 그 무게에 대해②

준비 없이 담임교체로 첫 제자들과 만났던 날
“나는 어떤 선생님으로 남을 것인가?”


잊히지 않는 2018년 3월 21일

  2018년 3월 21일 아침,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내내 두려웠다. 갑자기 담임으로 한 학급을 맡게 되었다. 그저 담임이 되는 게 두려웠던 건 아니었다. 이틀 전, 19일 아침은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날은 추운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서 출근길이 좋지 않았다. 학교 현관에 들어서 신발을 갈아 신고 있는데 한 선생님이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선생님, 교장실로 잠시 같이 가시겠어요?”라는 말에 정신없이 따라갔다. 교장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체육 교과전담교사였던 나는 1교시 체육 수업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내게 “21일자로 담임을 맡아줘야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기간제 선생님 한 분이 갑작스레 발령이 나는 바람에 그 선생님께서 맡았던 학급의 담임 자리가 비게 되었다는 것이다. 순간 정신이 멍했다.

  내가 들어가게 될 학급에도 담임교체 소식이 전달되었고, 그 학급 학생들은 떠나야 하는 담임에 대해 슬퍼했다. 어떤 학생은 울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갑작스러운 담임교체에 대해 항의를 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갑자기 담임으로 들어가니 출근길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2018년 3월 21일 수요일은 내게서 잊히지 않는 하루다.

  올해 교직경력 2년차의 김재윤 선생님과 제자들


너무나 잔인했던 2018년 4월, 그 시간

  어떤 시인이 말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그 시인은 왜 4월을 잔인하다고 했을까? 시인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내게도 2018년의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담임교체 후, 학급을 재빠르게 안정시키기 위해 부족한 능력을 최대한 끌어모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신규교사인 내게는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담임으로 들어간 후 바로 다음날 학부모총회와 공개수업이 있었고, 그다음 주는 학부모 상담주간이었다. 여느 교사들에게 학부모총회, 공개수업, 상담주간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이 ‘3종 세트’는 신규교사이든, 베테랑 교사이든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부담으로 다가온다. 아직 학생들에 대해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무슨 상담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상담주간 내내 “선생님이 어려서 걱정이다”, “우리 애들에 대해 잘 아실까요?” 등의 말은 상처가 되었다. 그렇게 4월이 빠르게 지나갔다. 출근하여 교실 문을 여는 게 하루 중에 제일 힘든 일이 되었다. 선생님이라는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평생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4월 중순 어느 날 점심시간, 과학 수업 준비를 위해 화단에서 흙과 돌을 줍고 있었다. 다시 교실로 올라가려고 할 때쯤, 갑자기 뒤에서 “김재윤 선생님!!!”하고 누군가 큰 목소리로 불렀다. 순간 뒤를 돌아보는데 체육을 가르쳤던 6학년 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이 내게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나를 그리워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교직에 입문하기 전, ‘담임선생님’이라는 자리가 이렇게나 힘들고 버거운 자리였다는 것을 몰랐다. 교생실습 당시에는 그저 멋지게만 보였던 ‘선생님’이라는 세 글자의 무게를 실감했었다. 잔인했던 2018년의 4월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첫 스승의 날, 펑펑 울게 만들었던 감동편지

  ‘스승의 날은 무슨’이라며 속으로 자조했다. 1교시 수업 이후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내 책상 위에는 편지 봉투가 쌓여 있었다. 아이들은 교과전담 선생님 수업을 가서 교실에 아무도 없었다. 맨 위에 있는 봉투 하나를 열어봤다. 편지를 읽는 내내 코끝이 찡해졌다. ‘김재윤 선생님, 힘들어도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눈이 새빨개지도록 펑펑 울었다. 아이들도 나의 노력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3월 21일 이후, 아이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없었다. 내가 좋은 선생님인지, 잘 하고 있는지 스스로 믿지 못했다. 아이들의 편지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이 땅의 선배 선생님들이 힘들지만 왜 선생님으로 살아가는지 이해가 된다. 그날 이후, 아이들을 부담 없이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선생님이라는 세 글자가 내게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그저 우리 아이들의 자랑스러운 선생님이다.



학교현장 최전선에서 따뜻한 교육 실천할 터

  신규교사인 나는 퇴근길에 오를 때마다 하루를 반성한다. 오늘은 내가 아이들에게 잘 해주었는지,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더 해주지 못한 것이 머릿속을 맴돈다.

  사실 ‘선생님’이란 세 글자는 내게 많은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래서인지 힘에 부칠 때도 더러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란 글자를 달고 사는 만큼, 이는 필연적인 숙명이라 생각하며 산다. 더불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현장 최전선에 있는 만큼, 사명감을 띠고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한 교육을 실천할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한다. 먼저 걸어온 선배 선생님들을 보며, 선생님으로서 나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이 글을 마친다.
나의 첫 제자들과 4학년 3반 학생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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