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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② 디지털 시대,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글 _ 백화현 <책으로 크는 아이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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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은 ‘천천히’ 편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온 국민이 사랑하는 나태주의 ‘풀꽃’ 전문이다. 세 문장밖에 되지 않는 짤막한 이 시가 이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마도 시인이 우리의 깊은 마음속 간절한 열망을 알아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길’ 원한다. 자신이 장미꽃이든 풀꽃이든 말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요구, 당연한 욕망이다. 그러나 이 욕망이 채워지기란 참말이지 어렵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초고속’을 앞세우는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엔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말마따나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할 터인데 시대는 우리를 자꾸만 빨리, 더 빨리 뛰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3초 광고에 익숙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한두 살 때부터 스마트폰과 TV를 접하며 자라는 아이들은 ‘빨리’ 넘어가는 화면에 익숙해져 ‘느린 것’은 곧 ‘답답한 것’이 되고 만다. 더욱, 자라면서 점점 익숙해지는 인터넷의 광속도는 빠르지 않은 것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살다 보면, ‘오래도록’, ‘자세히’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만큼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이룰 길을 찾지 못해 불안과 초조,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디지털 시대에도 가끔씩이나마 천천히 걸으며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자연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이다. 


  유튜브와 영상자료들, 그리고 인터넷 정보들이 ‘빨리’ 편이라면 종이책은 ‘천천히’ 편이다. 이들 모두 인간의 감성과 지성을 풍요롭게 하고, 잘만 활용하면 앞만 보고 달리려는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여 자신과 이웃, 세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지만, ‘천천히’ 걷게 하는 데는 종이책만 한 것이 없다. 종이책은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면서도 친자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 특히 종이책을 적극적으로 권할 필요가 있다.     


9세까지는 종이책을 읽어주며 ‘책의 재미’를 알게 하자

  책을 읽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자를 읽는 일은 소리를 듣고 말을 하는 것처럼 선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태곳적에도 소리를 듣고 말은 할 수 있었지만 글을 읽는 일은 문자가 탄생한 이후에야 가능한 것이었다. 이마저도 오랜 세월 양반과 귀족에게만 허락되었기에 일반 서민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우리의 경우엔 1930년대 ‘브나로드 운동’이 있고 난 후였다. 이처럼 독서는 아주 늦게 시작된, 애초 없었던 뇌에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 내는 후천적인 것이기에 그만큼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단계별로 지속성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독서계의 거장 다니엘 페나크가 지적한 것처럼 독서에는 명령형이 먹히지 않는다. 때문에 부모나 교사의 욕심을 앞세워 강요하기보다는, 천천히,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는 방법을 찾되, 시작은 언제나 ‘재미’여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책의 재미를 경험시켜 주기에 ‘읽어주기’만 한 것은 없다. 몇 년 전 해외 여러 나라 학교와 도서관을 탐방한 적이 있다. 이때 캐나다 토론토 조이스초등학교와 미국의 드와잇초등학교에서는 유치부와 1, 2학년 아이들에게 ‘독서수업’ 시간을 별도로 마련하여 ‘읽어주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유치원, 또 일부 가정에서도 ‘읽어주기’는 더러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들처럼 지속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닌데다, 오로지 ‘재미’에 방점을 찍은 것은 아니라서 방법이 많이 달랐다.


  “우리는 평생독서가를 기르기 위해 이 교육과정을 도입했습니다. 평생 책을 읽는 사람으로 기르려면 어린 시절에 ‘책의 재미’를 충분히 누려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유치부와 1, 2학년에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만한 책을 골라 읽어준 후 아이들이 느끼고 생각한 것, 상상과 경험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드와잇초등학교 사서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독서수업 시간에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 가져오지 않았다. 40분 동안 선생님이 한두 권의 책을 읽어주면 질문하고 상상하고 경험담을 나누고 그림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등, 신나게 이야기를 할 뿐 전혀 쓸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들은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이 ‘글자만 바글바글한 책’이 눈물과 웃음을 주고, 손에 땀을 쥐게도 한다는 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 상상과 경험의 세계를 마음껏 펼치며 한껏 ‘책을 즐길 수’ 있나 보다.


  미국의 신경심리학자 조셉 르두는 ‘학습이란 천성을 길들이는 것’이라 했다. 2~3년 지속적으로 이런 경험을 하다 보면 ‘책=재미’라는 의식이 절로 싹트고 자신도 모르는 새 책만 보면 손이 절로 가게 되는 ‘길들임’ 현상이 나타날 것 같다. 학습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어린이를 독서로 이끌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지 싶다. 


도서관을 고향처럼 그리운 곳으로

  독서에 있어서만큼은 북유럽이 세계 최고다. 특히 핀란드와 스웨덴, 덴마크는 어린이책 천국이다. 토베 얀손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안데르센의 영향력이 막강한 탓인지, 애초에 독서 토대가 탄탄했기에 이러한 아동문학가들이 탄생한 것인지, 순서야 어찌 되었든 그들은 아주 어린 아기 때부터 책에 둘러싸여 자란다. 2014년 북유럽 도서관들을 탐방하러 갔을 때 주요 도서관들은 가장 비싼 땅, 도심 한복판이나 마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고, 도서관마다 유모차가 즐비하게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오후 4시면 퇴근을 한다. 그리고 탁아시설이 잘 되어 있는 탓인지 여성과 남성이 엇비슷한 취업률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아빠 손을 잡고 오거나 아빠 품에 안겨 책을 보는 아이가 많다. 그들은 퇴근길에 엄마든 아빠든 아이를 탁아소에서 찾아 도서관에 들러 책을 한두 권 읽어주고 아이가 도서관에서 놀도록 한 후 귀가하는 경우가 많다 한다. 주말에는 그런 풍경이 더욱 흔하다.


  도서관에는 책만 있지 않다. 그곳에는 친구가 있고 추억이 있고 냄새가 있고 풍경이 있다. 이런 곳을 아기였을 때부터 자주 접하다 보면 그곳은 집처럼 편안하고 고향처럼 그리운 곳이 될 것이다. 이를 경험하며 자란 아이들은 청소년이 되어서도 스스로 도서관을 찾게 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드나들게 될 것이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리운 곳=도서관. 아이를 책으로 이끌고 싶은 교사와 부모라면 탐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방법이지 않은가.


친구와 책모임을 하도록 돕자 

  서구 선진국에서는 저학년까지는 ‘책의 재미’에 초점을 두고 아이들을 책으로 이끌지만, 3학년부터는 탐구활동을 하도록 이끈다. 교과서를 통해 기본 내용을 익힌 후, 도서관 또는 교과실의 수많은 책과 컴퓨터의 웹자료들을 찾아 아이들 스스로 읽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발표한 후 글을 써 제출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과 결과물들이 그대로 평가에 반영된다. 당연히 따로 정답 하나를 맞히라는 시험은 보지 않는다. 


  그러나 ‘교과서 하나에 정답 하나’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데다 교육열이 하늘을 찌를 만큼 드높은 경우, 우리처럼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끝없이 문제집을 푸는 일에 내몰릴 확률이 높다. 점수를 올리는 데 반복과 예습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이렇게 끌려다니다 보면 아이들은 독서할 시간을 확보할 수 없을뿐더러 설혹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지칠 대로 지친 탓에, 그 시기에 적합한 문학서나 인문서보다는 쉽게 읽히는 만화책이나 판타지 소설을 택할 수밖에 없다. 독서 정체 내지는 퇴보가 일어나는 것이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교육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할 테니, 우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고학년 이상 중 희망하는 아이들에게 책과 친구를 결합시킨 책모임을 하도록 이끌면 좋겠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친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데다 사이에 ‘책’이 매개가 되면 친구들과 다양한 주제로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정신적인 벗’을 얻게도 된다. 곧 

친구도 얻고 책도 얻게 되어 ‘행복한 배움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1주일 또는 2주일에 한두 시간씩, 정한 요일,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만나 ‘같은 책’ 또는 ‘주제는 같되 다른 책’을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누면 된다. 물론 분량이 많은 단행본의 경우는 미리 책을 읽어 와야 한다. 또 읽고 토론하는 것 외에 쓰기도 병행하고 싶다면, 미리 독후감을 써오거나 질문을 만들어 오거나, 맘에 드는 단락을 베껴오는 일을 그때그때 첨가하면 된다. 우리 두 아들의 경우, 큰아이는 중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반에서 9시 반까지, 우리 집 거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이런 책모임을 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기대 이상으로 멋지게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감동을 했기에, 이 모임 형태를 당시 근무하던 학교에 그대로 도입하여 한 해 20개가 넘는 독서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해 보았다. 지면상 길게 소개할 수가 없으니, 궁금한 분들은 졸저 <책으로 크는 아이들>과 <도란도란 책모임>을 참고하면 좋겠다. 


  앞서 말했지만 독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은 본능이고 인간은 누구든 자신의 성장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단계에 맞게 차근차근 풀어 가면 많은 아이들이 책이 주는 행복감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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