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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④ “친구야 책방 가자!”

글 _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먼저 질문부터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해봅니다. 가장 최근에 책방에 가본 적은 언제인지요?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자신만만하게 답하는 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우물쭈물 5초쯤 답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데 거금 5백 원을 걸겠습니다. 편의점 가듯 서점에 들르고 ‘카톡’ 보듯 책을 펼치는 생활습관이 사라진 지 오래니까요. 실제로 위의 질문은 출판사에서 새 식구를 뽑을 때 면접에서 불시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몇 초간 우물쭈물하거나, 제목만 아는 베스트셀러로 답을 하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만들겠다는 사람이 최근에 읽은 책이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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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들이는 노력만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새삼스럽게 책은 누구나 읽어야 하고 책 읽기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책 읽기란 얼마나 어려운 중노동인지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듯 말하지만, 그것은 순 사기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책 읽기란 아주 고난도의 능력이 필요한 지적 활동이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정신적인 노력뿐 아니라 신체적인 고통까지 따르는 전인적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손에 잡히지 않는 글자 알갱이와 기호로 가득한 문장들을 따라가면서 거기서 의미를 찾아내서 하나로 엮는다는 것이 보통 일인가요? 문자와 의미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영화나 TV 화면을 보면 척 하고 아는 것을, 글자와 문장의 나열들만 통해서 그런 영상을 구성한다고 합시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책을 읽다보면 한 시간만 지나도 어깨가 아프고 눈이 침침하고 하품이 납니다. 졸음을 참으며 엎드려 보고 드러누워도 보지만 여전히 여기저기가 결립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이렇게 육체의 부담까지 수반하는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책 읽기는 좋은 것이라고 이구동성 말하니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자고요. 우리는 책에 들이는 노력 딱 그만큼만 그 좋은 것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 귀찮고 괴로운 일을 멀리하고, 유튜브를 즐기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당연하지요. 하지만 책 읽기가 고통스러워도 거기서 얻는 즐거움만큼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을 거라 장담합니다.


만화방에서 시작된 나의 책 읽기 습관

  내가 책 읽기 습관을 들인 것은 우습게도 어릴 때 들락거리던 만화방에서였습니다. 먼 친척아저씨가 만화가게를 열었는데 꼬맹이인 저만큼은 만화책을 공짜로 마음껏 보게 해줬던 것입니다. 거기서 만화로 그린 세계명작동화, 멋진 청춘남녀의 로맨스, 무시무시한 천하협객의 싸움에 푹 빠져 시간을 잊었고, 덤으로 세계의 문물, 인간의 감정, 중국의 신기한 풍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팔 할은 만화방 덕분이랄까요?


  비록 만화일지언정 거기에 몰입했던 경험은 이후에 좀 더 어려운 책, 글자만 가득한 책들에도 같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데까지 나아갔고, 덕분에 지금은 책을 만드는 출판인이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책과 더불어 살고, 먹고사는 일마저 책에 의존하게 되기까지는 최소 30년은 걸린 것 같습니다. 책을 알고 책이란 물건을 이해하기까지 그렇게 걸린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책과 친해진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그래서 책은 어려서부터 읽기 시작하고, 중간에 끊지 않고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 읽어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인가 봅니다.


서점에 출몰한 중고등학생들! 

  그런데 최근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학기 시즌에 참고서를 살 때를 빼고는 서점에서 도무지 볼 수 없었던 청소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서점에 출몰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게 대체 어인 일이지? 방과 후가 되면 중고등학생들이 두셋씩 짝을 지어 책들을 들춰보고 사가는 겁니다. 이유인즉 고양시가 실시하는 ‘친구야 책방가자!’ 프로젝트 때문이었습니다. 고양시에서 지역 중·고등학생 모두에게 1만 5천 원의 도서교환권을 지급해서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마음대로 살 수 있게 하는 사업을 진행한 겁니다.


  프로젝트의 성과는 놀랄 만했습니다. 아마도 자기 발로 처음 서점에 와본 어린 친구들이 부지기수일 테고, 제 손으로 직접 책을 골라 사본 친구도 대다수였을 겁니다. 고양시가 쓴 예산은 8억 원. 2조 7천억 원인 시 예산의 눈곱조차 안 되는 돈으로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요. 아마 5만 명 학생 중 적어도 1천 명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경험을 잊지 못할 것이고, 적어도 1천 명은 자기 용돈으로 다시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올 겁니다.


  책을 사려면 온라인서점보다는 내 발로 직접 오프라인 동네서점에 가기를 권합니다. 사람들은 온라인서점에 책 종류도 훨씬 많고 배송까지 해주니 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모니터와 모바일에 뜨는 책은 사실 몇 종에 불과하고 필요한 책을 찾으려면 검색을 해야만 합니다. 비슷한 책들을 쉽게 비교하면서 원하는 대로 고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네책방이든 대형서점이든 오프라인은 다릅니다. 우리는 한눈에 책들을 훑어보고, 재미있겠다 싶은 책을 금방 골라냅니다. 책을 들고 만지고 펼쳐보는 재미도 별스럽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그 책을 들고 뒹굴어야 할 테니까요.


  “친구야 책방 가자!” 책방 갈 돈이 없다면 도서관에 갈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도 우리는 내 손으로 맘껏 책을 고르고 실컷 읽을 수 있습니다. 몇 시간을 책에 빠져 있다가 충만한 마음으로 어둑한 밤거리를 홀로 걷는 기분을 느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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