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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댕이’는 ‘커엽’다

전남 광영고등학교 황왕용 선생님

  언어는 자의적 특성이 있습니다. 사람을 잘 따르고 영리한 네 발 달린 갯과의 포유류가 ‘개’라고 불리는 것에 어떤 필연적 관계도 없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dog’, 독일어로는 ‘Hund’처럼 의미와 기호가 절대적 관계가 아닙니다. 사회적 약속이 아니라면 ‘펜’을 꼭 ‘펜’이라고 부를 이유도 없습니다. 앤드루 클레먼츠의 


  <프린들 주세요>라는 동화에서는 ‘펜’을 ‘프린들’로 부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선생님은 주인공에게 바른 말을 사용하라며 벌을 주기도 합니다만, 그럴수록 ‘프린들’은 더 유행합니다. 대한민국의 10대들도 신조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한글 파괴라는 걱정도 많지만, 한편으로 10대들의 은어 사용은 그들만의 사회적 약속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한 야구 갤러리에서 유명해진 언어 유희적 표현인 ‘야민정음’은 10대를 만나 크게 변형, 확산, 확장된 사례입니다. 글자 여러 개를 압축하는 경우, 글자를 180도 회전하는 경우, 얼핏 보면 헛갈려서 한글 자모를 의도적으로 바꾸는 경우 등등 다양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곰’은 ‘문’으로, ‘멍멍이’는 ‘댕댕이’, ‘귀엽다’는 ‘커엽다’처럼 표현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심지어 2023학년도 수능 사회문화에 ‘띵작(명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신조어 사용 세태가 지문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 ‘leet’가 비슷한 사례입니다. ‘leet’는 알파벳과 비슷하게 생긴 모양, 숫자 등을 이용하여 암호처럼 해독해야 이해할 수 있는 해커들이 만들어 낸 언어입니다. ‘미국에도 이런 비슷한 형태의 은어가 있다면, 번역 서비스도 제공해 줄까’라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인공신경망 기반으로 언어를 번역해주는 파파고에서 ‘댕댕이’라고 입력하면 ‘dog’가 아닌 ‘clog’라고 번역되더군요. 점심시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한 친구에게 파파고 번역 결과를 보여줬더니 신기해하면서도, 요즘에는 이런 말 잘 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한글 파괴라는 우려는 잠시 스치는 바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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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황왕용 선생님은 전남 광영고등학교에서 사서교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제자들과 언어를 매개로 한 소통에 관심을 갖고 수업하고 있다. 10대들이 자주 쓰는 말(급식체)과 부모 세대가 사용하는 말(도시락체)의 만남을 통해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있다. 저서로는 <급식체 사전>, <궁금하지만 물어보기엔 애매한 학교도서관 이야기>, <괜찮아, 나도 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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