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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허난설헌 남매의 고향 - 강릉 초당마을

글 · 사진 _ 김혜영 여행작가


  강릉 경포대에 오르면 둥근 거울 같은 경포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눈으로 경포호 둘레를 훑다가 남쪽 솔숲이 우거진 곳에서 멈춘다. 이곳이 허균·허난설헌 남매가 살았던 초당마을이다. 500여 년 전 초당마을 솔숲에서 어린 허난설헌과 허균이 함께 뛰놀던 모습을 상상하며 경포호 호숫길을 걸어 초당마을로 향한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안에 자리한 기념관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안에 자리한 기념관



허균·허난설헌 남매가 예술적 재능을 키운 초당마을

  초당마을은 경포호 남쪽 호숫가에 자리했다. 조선 중기 문신 초당 허엽(1517∼1580)이 들어와 살면서 초당마을이라 불렸다. 허엽은 우리나라 최초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1569~1618)과 천재 시인 허난설헌(1563~1589)의 아버지였다. 셋째 딸 허난설헌과 넷째 아들 허균은 초당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허엽 가족이 살았던 강릉 초당동 고택(강원도 문화재자료)은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행랑채와 사랑채, ‘ㅁ’자형의 안채가 차례로 보인다. 


강릉 선교장의 행랑채강릉 선교장의 행랑채


  안채에 허균과 허난설헌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영정 속 허난설헌은 그녀의 호처럼 난초의 청초함과 눈의 깨끗함을 지녔다. 

허난설헌은 어려서부터 문학적 천재성을 드러내 허엽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여자에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던 당시, 허엽은 딸에게 ‘허초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아들들과 차별 없이 학문을 가르쳤다. 자유로운 가풍 속에서 자란 허난설헌이 보수적인 안동 김씨 집안 자제와 혼인하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남편과 시어머니와의 갈등, 어린 아들과 딸을 전염병으로 잃고, 배 속의 아이까지 유산하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불운한 처지를 달래기 위해 시 창작에 매달렸으나, 결국 27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허균이 누이의 재능이 아까워 유작을 모아 1608년에 ‘난설헌집’을 간행하여 그녀의 시가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았다. 


  허 씨 남매의 비극적 생애와 문학 작품은 생가터 맞은편 ‘허균·허난설헌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남매가 시대를 잘못 만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그 삶이 애잔하다. 


경포호 둘레로 초당 솔숲 산책로가 이어진다.경포호 둘레로 초당 솔숲 산책로가 이어진다.



아름다운 초당 솔숲과 강릉 바다를 품은 초당두부

  초당마을을 둘러싼 솔숲은 세찬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미관상으로도 운치 있다. 80~100년 이상 된 소나무 3천여 그루와 은행나무, 감나무, 왕벚나무, 모과나무, 회화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다. 


  허 씨 남매가 살았던 고택 주변 솔숲은 2010년 민간환경단체인 생명의 숲과 유한킴벌리, 산림청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숲 어울림상’과 ‘아름다운 숲 누리상’을 수상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이곳에서 허난설헌 문화제와 허균 문화제를 개최하여 두 문인을 기리고 있다. 아침 또는 늦은 오후 무렵 소나무 사이로 비껴드는 은은한 햇살을 느끼며 산책로를 걷다 보면, 허씨 일가의 개인 도서관이었다는 ‘호서장서각터’도 만난다. 


  사실 초당마을은 초당두부가 가장 유명하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아래 초당두부 요리 전문점 열아홉 채가 성업 중이다. 대부분 이곳 토박이들이 대를 이어 두부를 만든다. 초당두부를 처음 만든 이가 허엽이다. 허엽이 천일염 간수 대신 바닷물을 넣어 몽글몽글한 두부를 만들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고 한다. 허엽이 이 두부를 ‘초당두부’라 불렀고, 만드는 비법이 초당마을에 전해진 것이다.


  초당두부마을에서는 매일 새벽 2~4시부터 콩을 갈고 가마솥에 삶아, 전통 방식대로 초당두부를 만든다. 아침 7시쯤이면 두부가 완성된다. 갓 만든 두부가 가장 맛이 좋다.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초당마을부터 들르는 이유이다. 


초당마을의 두부 요리 전문점에서 허엽이 개발한 초당두부의 전통을  잇고 있다.초당마을의 두부 요리 전문점에서 허엽이 개발한 초당두부의 전통을 잇고 있다.


허균·허난설헌기념관 내부 모습허균·허난설헌기념관 내부 모습

경포호 호숫가의 옛 정취, 경포대와 선교장

  초당마을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강릉 경포대(보물)는 경포호 서쪽 언덕에 세워졌다. 1326년(고려 충숙왕 13년)에 방해정 뒷산 인월사 옛터에 세운 것을 1508년(조선 중종 3년)에 지금의 지리로 옮겨왔다. 경포호 둘레에 있는 13개 누각과 정자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기둥이 48개나 된다. 


  경포대 내부에는 숙종이 직접 지은 ‘어제시’와 율곡 이이가 10세에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해 문장가 조하망의 상량문 등 수많은 명사와 시인 묵객의 글이 게시돼 있다. 난간 아래 높은 마루턱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경포호를 바라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강릉선교장(국가민속문화재)은 17세기 초,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이 지은 조선 시대 사대부 가옥이다. 배를 타고 경포호를 건너다녔다고 하여 ‘선교장’이라 불렸다. 강릉에서 한양까지 가는 동안 선교장 땅만 밟고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재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현재 국가 지정 명품 고택으로 지정되었으며 한옥 체험, 배다리 만들기, 다식 만들기 등의 전통 체험을 진행한다. 선교장 내에 박물관과 한옥 카페와 전통음식 전문식당 등이 있다. 선교장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솔숲 둘레길 또한 명품 숲길이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주소 강원도 강릉시 난설헌로 193번길 1-29

문의 033-640-4798

관람 시간(초당동 고택, 기념관, 전통차 체험관)

09:00~18: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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