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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채의 집을 품은 - 신안 섬티아고

글 _ 강지영 객원기자


  2021년의 끝을 앞두고 있다. 바람은 차가워졌는데 해는 어제와 다름없는 온기로 만물을 비춰내고 있다. 찬바람을 맞으며 무심히 흘러 보내버린 듯한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길 굽이굽이 눈물과 사연이 깃들어 온통 상처로 얼룩진 줄만 알았는데 더듬더듬 앞을 마주해온 날들이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2022년을 맞이하기 위한 호흡을 골라야 할 때다. 뒤돌아보지 않기 위한 후회 없는 송별과 가슴 벅찬 만남을 위해 길을 나선다. 이별을 위해서는 나에게서 떠나 있을 필요가 있기에.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는 내가 아닌 것들로부터 거리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애써 홀로됨을 자청하며 섬을 찾아간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의 종지부를 찍으려 찾아가는 2021년의 마지막 여정은 전남 신안이다. 


  다섯 개의 섬 곳곳에 보물처럼 기도의 집을 마련해 두고 있는 신안의 순례자를 위한 섬, 섬티아고로 간다.



1. 건강의 집1. 건강의 집


  안개로 뿌옇게 가려진 길을 더듬어 도로를 달린다. 가로등을 점으로 만들고 전조등을 호롱불처럼 만드는 뿌옇고 불투명한 길을 느릿느릿 지나온다. 안개의 터널을 관통하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격리의 날들을 생각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아마득함 속에서도 앞날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와 함께 시련을 견디고 있는 이들의 온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묵묵히 걸어온 시간의 끝자락에 섬이 놓여 있다. 섬티아고로 들어가기 위해 송공항으로 간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1004섬 신안’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드높은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고 있는 태양과 겨울을 담은 찬 바람 때문일까. 천네 개의 섬이 천사(天使)의 섬이 되어 여객의 가슴에 안긴다.


  배에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뱃고동이 울린다. 잔잔한 물길과 섬을 향해 가는 배와 물거품과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긴 다리가 겨울의 여운을 더해준다. 수평선과 나란히 놓여 이어지는 7.22km의 대교는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다. 이 교량에는 ‘천사대교’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천사대교를 벗 삼아 한 시간쯤 바닷길을 달린 끝에 대기점도 선착장에 당도한다. 




섬티아고로 이름 붙여진 다섯 개의 섬

  신안군은 2017년 대기점도와 소기점도를 포함한 다섯 개의 섬을 중심으로 예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붙여 예배당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후 프랑스 작가진과 한국 작가진의 손을 거쳐 나온 예배당을 잇는 순례길을 조성하게 된다. 그렇게 단장을 마친 섬길에는 2020년 2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본떠 ‘섬티아고 순례길’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2. 생각하는 집2. 생각하는 집


  배에서 내려서자 건강의 집(베드로의 집)이 시야를 채우고 들어온다. 파란 지붕과 하얀 벽과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빛이 묘하게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토리니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예배당으로 들어선다. 조그마한 의자와 그 위로 쏟아져 내리는 빛이 침묵의 울림을 전해온다. 건강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었기 때문일까. 좁은 공간이 전해오는 안온함이 긴장해 굳어 있던 등을 어루만진다. 아픈 시간에 맞서 싸우느라 수고했다는 손길이 남긴 여운을 머금은 채 세상에 평온이 깃들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종을 울린다.


  길을 따라 여정을 더듬어간다. 두 번째로 들른 곳은 생각하는 집이라는 안드레아의 집이다. 벽 양쪽 구멍에서 흘러내리는 빛과 천장의 유리 장식이 빚어내는 색과 그 밑에 놓인 우물 앞에 서서 천천히 호흡을 고른다. 오르내리는 가슴을 따라 공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 나가기를 거듭한다. 머릿속 안개가 걷히는 듯 느껴지는 것은 건물이 여객과 함께 숨을 들이쉬고 뱉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리라. 왼쪽 창으로 섬과 섬을 잇기 위해 주민들이 놓아둔 징검다리를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긴 노두길을 본다. 밀물이면 잠겼다가 썰물이면 드러나는 노두길 위로 해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섬을 지켜온 주민들의 역사에 감긴 시간의 태엽이 풀려나며 평온을 불러들여 온다.



3. 그리움의 집3. 그리움의 집



4. 생명 평화의 집4. 생명 평화의 집



열두 채의 집을 따라 떠나는 여정 

  그리움의 집, 생명 평화의 집, 행복의 집, 감사의 집, 인연의 집을 거쳐 이른 곳은 기쁨의 집인 마테오의 집이다. 마테오의 집은 노두길 가운데 있어 물때를 맞추지 않으면 들어가 볼 수 없다. 물이 빠진 노두길로 들어간다. 하늘과 맞닿은 바다와 바다를 가르는 노두길. 그 사이를 걷자니 바다와 하늘 사이를 지나고 있는 듯 발이 가볍게 느껴진다. 바다 위에 놓인 기쁨의 집에서 바다를 넘어다본다. 넘실거리는 물결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평온이 찾아든다. 창 너머 바다 풍경이 세사에 가려 탁해진 눈동자를 매만진다. 푸른 바다가 기쁨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깨우침을 전해온다. 


  길을 따라가며 1년에 고무신이 9켤레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열성적으로 전도를 한 것으로 알려진 문준경 전도사(1891~1950)의 이야기를 읽는다. 이념 갈등이 빚어낸 전쟁의 위험 속에서 문준경은 교인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증도로 돌아온다. 교인들을 무차별 처형하던 인민군의 총구는 끝내 문준경을 겨누고 만다. 그리하여 그녀는 끝을 맞이한다. 위험 속에서 무작정 섬으로 들어온 문준경 순교자의 여정을 그리며 소원의 집을 향해 간다. 바닷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소원의 집에서 무릎을 꿇고 앉는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을 품지 말라.’라는 성경 한 구절을 읊조리며 이 시대를 아프게 지나고 있는 이들을 위한 마음을 전해 본다.


  칭찬의 집과 사랑의 집을 지나 마지막으로 이른 곳은 지혜의 집인 가롯 유다의 집이다. 꼬여 있는 종탑 위 종을 열두 번 울린다. 섬 초입 유다의 집에서 울린 종소리가 반향이 되어 되돌아온다. 종소리를 귀에 머금으며 생각한다. 열두 채의 집을 거쳐오며 만난 것은 열두 제자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섬으로의 여정은 내 속에 깃들어 있는 유약하고 여린 나를 만나는 길이자 쓰러지기 직전의 나를 품어 주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열두 채의 집에서 채우고 비운 것은 다름 아닌 내 마음이었다고. 



5. 행복의 집5. 행복의 집


6. 감사의 집6. 감사의 집


7. 인연의 집7. 인연의 집


8. 기쁨의 집8. 기쁨의 집


9. 소원의 집9. 소원의 집


10. 칭찬의 집10. 칭찬의 집


11. 사랑의 집11. 사랑의 집


12. 지혜의 집12. 지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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