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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침 소리가 살아 움직이는 섬 - 강화도

강지영 객원기자



  가을 끝자락을 마주 보고 섰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이 가지 끝에 붙들려 있다. 성긴 나뭇가지 사이를 채운 누런 들판. 잎이 지고 수확이 끝나면 새 계절이 성큼 다가와 있으리라. 그리하여 겨울은 찬 바람과 함께 하얗고 하얀 눈을 눈앞에 데려다 놓고 있으리라. 흰 눈 맞이에 앞서 찬란한 이별을 대면한다. 묵은 땅이 결실을 뱉어내고 있는 섬으로 간다. 초침도 분침도 시침도 사라지고 숫자만 남겨진 시계를 끌어안고 잃어버린 시간을 만나러 강화도로 들어간다.  



광성보광성보


  누런 물결이 넘실거리는 섬은 더없이 평화롭다.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옮겨 놓은 듯한 멋스러운 섬 강화도에는 역사의 변곡점이 하나하나 깃들어 있다. 섬은 온몸으로 이 나라가 걸어온 시간을 품어내고 있다. 전쟁의 역사와 침략의 아픔과 한반도의 뿌리. 길 굽이굽이 깃든 지난날 사연을 읽어나가기 위해 처음 들어선 곳은 광성보다. 1871년 강제통상을 요구하며 조선의 문을 치고 들어온 것은 미국이었다. 신미양요가 벌어졌던 전장(戰場) 광성보는 강화 12진보 중 하나로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맞서 천도한 이후 쌓은 성이다. 몽골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쌓은 이 성은 시간이 흘러 미국이라는 나라에 맞서 싸울 격전지가 되었다. 미군은 통상을 명목으로 초지진, 덕진진을 거쳐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펼쳤다. 조선은 어재연을 지휘관으로 죽을 각오로 전쟁을 펼쳐나갔고, 나라를 지켜내고자 하는 백성의 마음은 온몸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도 발을 뒤로 물리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을 되짚어보다

  대포가 시간의 유물이 되어 놓여 있는 광성돈대로 들어간다. 성벽 너머의 잔잔한 물결과 대포를 감싸 안은 푸른 잔디가 평화를 불러들인다. 무사한 오늘이 격전 끝에 손에 쥔 것임을 새삼 실감하며 안해루로 들어간다. 물길을 벗 삼아 성벽과 나란히 펼쳐진 산책로를 걷는다. 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이 전쟁의 상흔에 덧대는 반창고가 되어 바닥에 놓인다.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죽기로 싸워준 선조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고려궁지고려궁지



  천천히 길을 걸으며 시간이 지워진 것 같은 격리의 날을 지나고 있는 우리는 오늘의 한국을 과연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이를 악물고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 있는 이들의 얼굴이 눈앞을 지나간다. 어재순과 어재연을 기리는 쌍충비와 순국 무명용사비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신원 모를 순국 용사들이 이름을 찾았기를 염원하며 솔숲을 지나온다. 손돌목돈대를 거쳐 이른 길 끝에 용두돈대가 있다. 거친 물결이 소용돌이치는 용머리 모양 바위에서 용솟음치는 지난 시간을 마주한다. 소중한 것을 지켜내고자 했던 이들의 절박함과 절실함이 밝은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을 버티고 있는 우리네 묵묵함에 겹쳐진다. 



격전지를 지나오며

  소용돌이치는 물결을 시계추 삼아 용두돈대를 돌아 나온다. 지난날을 거슬러 올라가듯 발길을 옮긴 곳은 신미양요의 격렬한 포격전이 펼쳐진 곳이자 병인양요 시절 양현수의 정족산성 접근의 길목이 되어주었던 덕진진이다. 남장포대를 걸어 공조루로 들어간다. 강화 해협과 등을 겨누고 있는 누런 물결이 땅이 빚어낸 태양이 되어 여객을 맞는다. 평온한 풍경을 마주하며 오늘의 풍요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이 순간을 값지게 마주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의 최초 상륙지였던 초지진을 지나와 향한 곳은 고려궁지다. 


  고려궁지는 몽골과의 강화 이후 고려왕조가 39년간 머물렀던 궁궐터다. 동헌을 등지고 선다. 눈 앞에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을 내려다보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을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아름드리나무가 빚어내는 느긋한 오후의 그림자 위로 위기에 처한 국가와 고난에 허덕이는 백성을 향한 매만짐의 손길이 어린다. 손을 마주 잡고 힘겨운 시간을 함께 관통했을 이들의 모습에 우리네 모습을 덧대본다. 잘 견디고 있다는,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소리 없는 속삭임이 귀를 지나간다. 



강화성당강화성당



강화성당

강화성당



사찰인 듯, 성당인 듯

  마지막으로 이른 곳은 강화성당이다. 강화도에는 성공회가 들어선 역사가 있다. 19세기 조선에 들어온 성공회는 조선인들을 품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성공회는 교리 전파를 위해 1989년 온수리에 진료소를 열어 의료 혜택을 베풀었다. 그에 마음을 연 주민들이 성당 건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만든 것인 온수리 성당이다. 이후 사찰과 성당 건축을 섞은 듯한 독특한 형태의 강화성당이 강화도에 들어서게 된다. 


  조선 건축 양식을 받아들이는 성공회의 노력이 깃든 강화성당 앞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찰 같기도 한 건물은 안으로 들어서자 성당 특유의 빛을 고이 빚어내 고 있다. 창에서 쏟아지는 빛에서 경건함과 엄숙함이 배어난다. 빛이 곱게 번져나가며 성당 안으로 지난날을 불러온다. 성당 가운데 자리 잡은 예수상과 십자가가 가슴을 파고든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신은 인간에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는 말을 곱씹는다. 성당 가운데서 두 손을 모으고 서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간을 지나고 나면 그만큼 강해져 있을 것이라는 말을 되뇌어 본다.


  성당 한쪽에 걸린 시계를 본다. 시침과 분침과 초침을 찾은 시계가 째깍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초침 소리가 시간이 멎지 않고 흐르고 있었음을 알려온다. 막막함 속에서도 묵묵히 시간을 지켜온 우리네 성실함이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었음을 그것이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낼 것임을 일러온다. 째깍째깍. 섬이 노을을 불러들이는 소리가 귀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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