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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교육체제와 국가교육위원회, 교육시스템과 교육정책 지향의 불일치를 넘어서

글_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탈산업사회형 교육시스템으로의 개혁

  우리나라의 교육정책과 교육체제를 보면 지난 1960~80년대 초중반까지는 ‘서구 선진국에서 생산된 지식을 빨리빨리 받아들여 될 수 있으면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주입하여 암기하게 함으로써 서구 선진국을 하루빨리 좇아가야 한다.’를 모토로 했다. 이런 산업사회교육체제는 우리나라의 압축적 경제개발의 강력한 수단으로 기여했다고 할 것이다. 학습자를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바라보며 최고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고위관료와 소수 전문가가 교육정책을 생산하면, 전국의 모든 학교와 교육기관이 일사불란하게 집행했다. 이와 같은 산업사회교육체제는 우리나라의 빠른 경제성장에 기여한 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서구지식 수입 통로에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 서열화되고, 학생 역시 서구에서 수입된 지식을 얼마나 많이 잘 암기하고 있는가에 따라 서열화되었다. 이러한 과도한 서열경쟁은 공동체적 관계의 중요성과 교수-학습자의 주체적이고 능동적 측면을 등한시하게 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산업사회교육체제의 한계가 지적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1995년 5월 31일부터 1997년 6월 2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5.31 교육 개혁방안이 발표되었다. 이는 ‘학습자의 다양한 특성과 자질을 살리고, 통합적 사고력과 창조력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방향성은 탈산업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정책을 지시하고 결정하는 단위가 최고 관리자에서 고위관리자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산업사회의 중앙집권적 교육시스템 하에 멈춰있었다.  

  교육시스템과 교육 정책적 지향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는 ‘주입 암기식으로 빨리빨리 통합적 사고력과 창조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빨리빨리 공문을 내려 보내 학교에 자율과 자치를 정착시켜야 한다’와 같은 자기모순 때문에 교육정책이 희화화되고, 교육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실제 이루어진 것과 상관없이 서류상으로는 일정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만들어야 하므로 불필요한 공문과 잡무가 증가했으며, 이는 교원들의 교육 활동에 장애를 초래해 왔다.

  고등교육의 경우도 학문 분야별 특성이나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는 정량적 교수평가, 부적절한 대학평가 등으로 인하여 대학구성원들의 공동체 형성을 통한 연구, 교육 활동보다는 전시 행정적 보고서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었다. 그 결과 대학의 실질적인 질적 발전에 장애를 초래해 왔다.



지속적·안정적 교육정책 추진 기구의 필요성


  미래 교육체제의 최우선 과제는 5.31 교육체제가 안고 있던 교육시스템과 교육 정책적 지향의 불일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탈산업사회형 교육시스템으로의 개혁과 함께 더 나아가 지능정보사회형 교육시스템으로 바꾸어나가는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교육정책의 희화화와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헛바퀴 도는 정책으로 인한 교육 현장의 피로감과 사기 저하를 완화해야 한다.


  교육시스템 개혁을 위해서 첫째, 대통령 임기에 맞춰진 산업사회 교육정책 주기 5년을 넘어서 교육정책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종합적인 중장기교육계획이 필요하다. 둘째, 중앙정부 기구 중심의 교육시스템에서 벗어나 지역교육시스템의 발전이 필요하다. 교육정책은 학교현장, 지역의 현실과 실천을 바탕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셋째, 중앙정부 기구와 서구지식 수입 통로에 가까웠던 소수 전문가가 교육정책을 독점하는 구조를 벗어나야한다. ‘국민이 묻고, 국민과 함께 답을 찾는’ 교육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치와 자율에 기초한 요구를 수렴하는 교육네트워킹, 중앙과 지방 그리고 지역과 지역을 잇는 국가 수준 교육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자치와 자율에 기초한 협력적 교육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국민의 참여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래사회의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교육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기구로써 국가교육위원회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법안으로 제출된 국가교육위원회의 주요 기능은 △10년 단위 국가교육 기본계획 수립 △국가 인적자원개발정책 △학제·교원·대입정책 등의 장기적 방향 검토 △교육과정(총론·각론)의 연구·개발·고시 △지방 교육자치 강화 지원·조정 및 지역사회와의 연계 △기타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 의견수렴 등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설치될 경우, 교육자치·분권화를 포함한 교육 거버넌스를 감안하여 교육부의 역할과 기능의 재정립은 필요할 것이다. 교육부 유·초·중등사무는 원칙적으로 교육청 사무로 이관해야 한다. 다만, 국가 수준 관리를 요하는 사무(교육 격차 해소, 학생건강과 안정보장 등)는 예외적으로 교육부가 수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학습자의 능동성과 자기 주도성을 보장하여 학습자가
통합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고, 자신의 삶에 바탕하여
자기실현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로 수립될 미래 교육체제


  이제 과거 산업화시대의 소수 엘리트 위주 경쟁 교육으로는 지능정보화시대를 대비할 수 없다. 미래사회는 우리의 자녀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분화된 발전경로를 보장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헌법 제31조 1항의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은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미래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다양한 교육 직업 생애를 통일적으로 인식하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자기 정체성의 형성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삶에 대한 의욕과 모험심이 필요하다. 학습자의 능동성과 자기 주도성을 보장하여 학습자가 통합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고, 자신의 삶에 바탕하여 자기실현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민주적 권리와 책임에 대한 자각과 민주적 역량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자동화로 사라지는 산업사회형 일자리를 대체하는 사회 문화적 일자리 확대와 이를 위한 생활생태계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의식과 관계 맺는 능력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설치되면 가장 먼저, 10년 단위 국가교육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만약 국가교육위원회 법안이 2019년에 통과되고 2020년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할 경우, 10년 단위 국가 기본계획은 아마도 ‘2030 교육체제’가 될 것이다. 올해 국가교육회의에서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위한 노력과 함께 ‘2030 교육체제’ 수립 준비를 위해 지역과 현장,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경청하고자 한다. 미래 교육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은 국민의 참여를 통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충실히 밟아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가 과거의 오랜 잘못을 바로잡고, 현재의 교육시스템과 교육정책 지향의 불일치를 넘어 ‘국민이 이끌 교육 백년대계’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



김진경 의장은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기획단장·대입제도 개편특별위원장을 지냈으며 2018년 12월경 2기 의장에 취임 했다. 시인이면서 중·고교 교사 출신인 김 의장은 대통령 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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