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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10년, 그 확산과 지속 가능성

글_ 송주명 한신대 교수(전 서울시교육청 혁신미래교육추진단장)

 

  작년 말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민들이 단지 내 신설학교의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면서 혁신학교가 세간의 관심을 다시 끌고 있다. 반대의 이유는 혁신학교가 ‘공부 안 시키는’ 학교이고, 특히 고등학교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혁신학교는 진짜 공부하지 않는 학교인가?

 

 

혁신학교, 입시 위주 교육의 새로운 대안
  혁신학교는 2009년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과 더불어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의 실천 경험을 통해 당시 한국교육에 대한 다양한 문제의식이 투영된 공교육 혁신 모델로 출발했다. 초기에는 주로 학교문화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왔으나, 2011년부터 아이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암기교육이 아니라 생각을 키우고 아이들을 독립적인 존재로 키우는 창의지성교육을 추구했다.
  이에 따라 혁신학교는 (1) 학교장의 획기적 권한위임 (2) 학교 구성원의 민주적 자치공동체 (3) 교사의 전문적 학습공동체 (4) 선진적 창의지성교육이라는 4개의 지표로 더욱 분명하게 재구성되었다. 학교의 권위구조를 바꾸어 민주적 학교문화를 발전시키고, 교사들이 주체적으로 연구하여 아이들에게 차원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인 것이다. 혁신학교는 공부를 안 하는 곳이 아니라 미래에 걸맞은 ‘새로운 공부’를 실천하는 새학교 모델이었다.
  혁신학교는 개별학교를 변화시켜, 공교육 내의 학교혁신 모델을 보여주려 하였다. 교육 주체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혁신학교는 출범한 지 5년도 되지 않아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에 실망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현재는 경기도를 넘어 전국적으로 혁신교육을 실천하는 헌신적인 선생님들과 학부모가 함께 교육문화의 저변을 변화시키는 성과를 낳고 있다. 혁신학교는 선생님들과 학부모, 그중에서도 특히 선생님들의 집단지성과 헌신적인 실천의 빛나는 결실이라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2009년 온갖 난관을 뚫고 경기도의 13개 학교에서 시작해 지난해 1,525개교에 이를 정도로 혁신학교 수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혁신학교는 공교육 혁신을 개별학교 차원에서 모색했기 때문에 몇 가지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첫째, 준비된 혁신학교를 개별적으로 선정하다 보니 지역별, 학교급별로 고르게 분포되지 않아 초·중·고등학교 간 연계된 학교혁신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새로운 교육철학으로 시작한 혁신교육이 초·중등교육의 최정점인 고등학교에서 실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둘째, 혁신학교는 현재의 교원인사 규정으로 인해 초빙교사제도를 활용하더라도 ‘준비된 혁신교사’들이 모였을 때만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혁신학교의 지속성 문제가 초기부터 제기되어 왔다. 준비된 교사들이 인사 규정을 따라 학교를 이동해버리면, 어떤 경우에는 이름만 혁신학교인 학교가 나타날 가능성도 생긴다.
  셋째, 혁신학교의 질적 성장 문제가 존재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혁신학교 제1기에는 경기도 전체 학교의 약 10%에 해당하는 혁신학교가 지정되어서 학교문화를 변화, 발전시키는 데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혁신학교의 궁극적 목적인 새로운 공부에 대한 변화를 본격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는 입시형 공부로 굴절된 고등학교에서 혁신학교가 대안으로 자리 잡지 못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넷째, 혁신학교 수를 늘리는 것에만 몰두한 확대 정책으로 인해 위기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혁신학교와 일반 학교의 중간적 범주까지 끼어들면서 혁신학교의 질 관리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문래창작예술촌에서 목공체험하는 서울 영원중학교 학생들

 

 

초·중·고 연계통합형 지역교육 모델 필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원래 혁신학교의 문제의식을 살리고 확산할 방안은 무엇인가? 방법은 개별학교 접근이 아니라 지역적 접근으로 바꾸는 것이다. 우선은 교육환경과 여건이 비슷한 인구 20만 명 규모의 지역을 하나의 교육자치구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교육자치구 안의 모든 초·중·고등학교가 혁신교육의 철학과 방향 그리고 내용을 공유하는 교육자치공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혁신학교의 철학적 지향이자 내용이기도 한 창의지성교육이 고등학교에서 최종적으로 꽃 필 수 있도록 초·중·고 연계통합형 지역교육 모델이 설계되어야 한다. 지역 내 고등학교들은 인문지성·사회과학·자연과학·문화예술 등 특화와 융합을 통해 학생 선택의 기회를 높여주고, 고교학점제 등의 실천적 조건을 개선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지성, 재능과 역량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개별화된 교육과정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둘째, 혁신교육의 지속성을 위해서 무엇보다 지역의 교육환경을 잘 이해하고 전문적 교육역량과 열의가 있는 교사들이 지역 안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교사들이 지역 내에서 순환하더라도 학교 간의 교육 편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지역적 혁신학교 접근을 위해서는 교육자치와 지방자치 간의 협력과 소통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교육자치구에서의 혁신학교의 성공을 위해서는 교육정책과 내용, 교원 등의 소프트웨어는 교육청이 책임지되, 자치구 내 교육 혁신에 필요한 예산과 하드웨어, 지역 내 인프라 구축은 지방자치단체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새로운 교육협력 모델을 세워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의 문화와 교육자산을 충분히 활용하는 분권 자치형 ‘혁신학교군’이 가능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혁신교육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개선 노력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혁신교육을 일반화한다는 것은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선 학교가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개별 교사의 헌신에만 의존한 학교의 변화가 아니라, 교육 현장의 자치와 민주주의가 정립될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치밀하게 개선해야만 혁신교육이 지속되고 확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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