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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교육 활성화 방안의 의의와 주요 도전 과제

글 김승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국가진로교육센터장

  우리나라가 신생아 출산 부문에서 세계 꼴찌의 오명을 얻은 지는 꽤 오래됐다. 이로 인해 산업의 업종별 비중이나 일자리 지형에서 이미 큰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고, 보건, 의료, 주거, 복지 등 사회 영역에서의 변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생산가능인구나 소비활동 인구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5~6세 아이들은 출생인구가 20만 명을 조금 웃도는 소위 ‘3차 인구절벽’ 시기에 태어난 세대이다. 80년대 초까지 연간 80만 명을 웃돌던 출생아 수가 이제 그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아이들의 내재 역량을 얼마나 일깨워 주는가?

  지구촌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에 진입하고 있는 점은 저출산 시대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새로운 변수가 된다.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챗GPT’는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내어놓고 있다. 엑셀이나 피피티(PPT) 작업, 코딩 등 화이트칼라의 전통적인 업무 영역은 물론, 글쓰기나 디자인, 작곡 등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감히 넘보기 어려울 것이라 여겨졌던 창작 영역들에까지 영향을 뻗치고 있다. 지금의 변화 속도를 생각하면, 현재의 초등학생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10년 후 혹은 20년 후의 미래는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불확실하기만 하다.


  비록 저출산 현상이 고착되고 기술발달로 인한 변동성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우리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기성세대와 비교할 때 자라나는 세대는 호기심과 열정 면에서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미지를 개척하는 데 있어서 상상을 뛰어넘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내재한 역량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일깨워 주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이 사회적 불확실성과 변화의 큰 파고를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이 사회적 안목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계기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 스스로 상황과 변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주어야 한다. 또한, 현재의 사회적 변화를 오독하지 않고 능히 이해하고 좇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 

진로교육은 청소년들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맥락의 경로를 경험하고 탐색하며,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고 설계하도록 지원하는 교육이다. 무엇보다 진로교육은 청소년들이 주어진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하는 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변화무쌍하고 불확실한 사회 환경 속에서 진로교육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진로교육이 본격화된 계기는 초·중·고교 모든 학교급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진로활동이 명시적으로 편성된 ‘2009 개정 교육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진로교육을 학교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이 기울여졌다. 굵직한 정책들만 하더라도 진로진학상담교사라는 진로전담교사의 학교 배치와 「진로교육법」의 제정, ‘진로와 직업’ 교과의 선택 확대와 진로심리검사 등을 지원하는 온라인 진로정보망 구축, 국가진로교육센터 및 시·군·구 단위의 진로체험지원센터 설치와 학교 밖 진로체험처 확보 등 이루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로써 진로교육의 핵심적 인프라가 전국적으로 구축되었고 학교교육에 진로교육이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다양한 체험활동과 사회적 관계망을 경험할 수 있는 진로체험 프로그램도 크게 확대되었다. 



진로교육의 당면한 이슈와 도전적 과제들

  10년 남짓의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은 정책적 성과와 성취가 있었지만, 진로교육을 둘러싼 정책환경의 변화, 진로교육의 확산 과정에서 드러난 이슈, 진로교육 현장에서의 문제 등 진로교육이 풀어야 할 도전적 과제도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금번 4월에 교육부가 발표한 ‘진로교육 활성화 방안(2023~2027)’은 지금까지 거둔 진로교육의 성과와 문제점을 바탕으로 향후 5년간 진로교육이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 방향과 실천적 과제를 담고 있다. 다음은 ‘진로교육 활성화 방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고려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진로교육의 당면한 주요 이슈나 도전적 과제들이다. 


01 이제 진로교육의 대상과 범위가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를 포함한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보편화되었지만, ‘프로게이머’나 ‘유튜버’를 장래 직업으로 희망한다는 아이들의 말을 어른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적이 있다. 어른들의 진로지도 방식이 아이들의 미래 도전을 북돋고 독려하기보다는 어른들이 겪은 과거 경험에 머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의 진로지도가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진로교사나 일부 어른들만이 아닌 사회 구성원 전체의 진로 마인드 형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모든 국민이 각자의 생애에 걸친 진로개발에 진정성 있게 참여하는 일이다. 따라서 취업 등 사회진출을 모색하는 대학생과 성인의 진로 확립 및 전환을 지원함으로써, 전 생애에 걸친 진로교육의 기반을 마련할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02 디지털 대전환 등 급속한 기술 발전상이 학교 교육에 투영되는 과정에서 진로교육이 담당하는 기능과 역할을 재점검하고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 현장에서 진로교육은 현재 학생들이 인공지능(AI) 등 미래 신산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데 많은 기반과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신산업 분야 및 기술변화상에 대한 진로체험활동 등 학습경험은 학교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학교에서는 코딩교육이나 SW교육, 디지털 역량과 적응형 학습(Adaptive Learning) 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진로교육이 학교 밖의 사회적, 기술적 변화를 학교교육으로 연결하고 매개하는 기능을 더욱 촉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진로정보망을 포함한 진로교육 시스템 전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학생들의 창업 및 미래 직업세계 체험을 지원하는 시스템의 경우, 인공지능(AI) 기반의 맞춤식 적응형 학습이 가능하도록 고도화한다면 진로교육의 지렛대 효과는 더욱 증폭될 수 있을 것이다.


03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로교육의 내실화 차원에서도 과제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중·고등학교에 치중해 온 진로교육의 무게 추를 초등학교 단위로 이동하는 일은 대표적이다. 생애기초능력으로서 진로교육의 배양은 진로인식이 싹트는 초등학교시기부터 발달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초등학교 단계에서 진로탐색 및 설계를 보다 전문적으로 담당할 전담교원의 확보 등 관련 정책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또한, 진로수업이나 상담, 체험활동을 보다 체계화, 입체화할 필요성도 적지 않다. 특히, 학생의 자기주도성과 실천적 탐색을 중요시하는 진로교육이 학교 교육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서도 재확인된 만큼, 진로교육이 학교의 변화를 이끌 촉매제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새롭게 정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04 그간의 정책적 노력으로 형성된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와의 진로교육 협력관계를 학교 교육의 자산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비전과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체험학습 허브로 기능하는 지역 진로체험지원센터(이하 지역 센터)의 역할과도 관련이 크다. 지역 센터를 통해 구축된 지역사회 자원 네트워크 및 프로그램은 비단 진로교육의 맥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이미 자유학기제 사업에서 지역 센터의 학습 플랫폼으로서 기능할 수 있음이 확인된 바 있다. 그리고 이제 고교학점제 정책이나 방과후학교 사업,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등에서도 기반 인프라로서 지역 센터의 발전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이들 지역단위에서의 협력적 관계를 통해 진로교육의 지역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주도의 인재 양성 및 교육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비전 수립이 요구된다. 


05 진로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 대상의 진로교육이 새롭게 중요해졌다는 점도 지적될 필요가 있다. 다문화 및 탈북 가정 학생, 저소득층이나 학교 밖 청소년 등 취약계층 대상의 진로교육 필요성은 진로교육이 확대되면서 부각된 측면이 있다. 진로교육이 본격화되기 이전에는 이들 취약계층에게 과연 진로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다문화가정 학생이나 학교 밖 청소년 등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체계는 진로교육의 확장 이전부터 다양하게 구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해당 청소년들의 지원체계에 종사하는 현장 관계자들은 해당 청소년 지도에서 겪는 애로사항 중의 하나로 진로지도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사각지대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진로선택과 설계는 누구보다도 더 절박하다는 것이다. 진로교육이 마땅히 눈을 돌려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할 영역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학교 변화의 촉진자로서 진로교육의 방향 제시

  교육부는 연초 밝힌 업무계획에서 교육개혁의 방향과 세부 내용으로서 개별 맞춤형 교육(학생맞춤),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돌봄(가정맞춤), 지역을 살리는 교육(지역맞춤), 인재 양성에 신속히 대응하는 교육(산업맞춤)의 4대 개혁 분야를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같은 4대 개혁 분야의 핵심 의제가 이번 진로교육 활성화 방안과 깊게 연계되어 있음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진로교육은 기본적 속성이 개인의 진로를 지원하는 맞춤형 교육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진로교육은 향후 ‘개별 맞춤형 교육’의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지역사회 협력체계를 위해 구축된 지역 센터는 교육부의 국가 책임 및 지역 주도 교육 패러다임 전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진로교육이 그동안 디지털 전환 등 사회적 변화와 학교 교육의 가교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라 할 것이다. 요컨대, 이번 진로교육 활성화 방안은 학교 변화의 촉진자로서 진로교육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과 기능을 바탕으로, 진로교육이 향후 5년간 나아갈 방향과 전략과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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