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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커스② 학교폭력의 피해자들, 어떻게 어루만져야 할까

글_ 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최근 유명 프로 배구선수들이 학교폭력으로 무기한 출전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것을 시작으로 프로야구, 연예인들까지 구설수에 올랐다. 트라우마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하고 멀리 벗어나는 것이다. 학교폭력의 무서운 점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같은 학교에서 몇 년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악몽을 꾸면서, 매일 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깬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대학을 가서도 위축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된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떨까? 아들과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우울증 치료를 받는 부모들도 있다. 대학이라고 왕따가 없을까? 군대나 직장은 다를까?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회에는 나갈 수 있을까? 혹시나 가해자를 사회에서 다시 마주한다거나, 방송에서 보게 되면 어떨까. 마치 어제 일처럼 되살아나는 고통과 통증, 억울함과 우울감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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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잊으라고 하지 말 것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이미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자.”라는 말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이미 벌어진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어 아이가 다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무의식적으로 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을 꺼리곤 한다. 빨리 지나가 버리길, 아이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를 그저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란 지진이나 재해, 큰 교통사고를 겪은 뒤 끊임없이 그 사건이 떠오르고 재경험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한 번의 사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끊임없이 재발의 두려움, 예기불안에 시달리고, 자신을 때린 가해자와 닮은 사람만 길에서 마주쳐도 악몽이 생생히 되살아 난다. 이토록 큰 고통이 단지 시간만 지난다고 해결이 될까.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회복의 경험’이다. 아픔을 극복할만한 좋은 일, 가족의 지지, 회복의 계기가 있어야 아이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을 잊고 억누를 것이 아니라 해방해야 한다.


  가해자를 떠올리기만 해도 재발하는 두려움, 그때의 절망감과 무력감 등을 단순히 잊어버리려 하면 감정은 내 몸에 독으로 남는다. 의식에서는 잊는다고 해도, 무의식의 레벨에선 기억되고 저장되어 몸과 마음을 경직시키고 마비되게 한다. 표현하고, 소통하며, 마음이 후련해질 때까지 꺼내어 말하게 해야 한다. 억울했다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외로웠다고. 


2. 가족이 첫 번째 상담사가 되어 줄 것

  부모들은 아이가 왕따나 학교폭력을 당하면 당황한다. ‘우리 아이가 대체 왜?’ 어떻게 해줘야 할까 안절부절못한다. 학교에서 상처받고 돌아온 아이는 우선 학교, 친구관계 자체에 두려움을 느낀다. 단순히 가해자뿐 아니라 이를 방관한 친구들에게도 원망과 미움, 섭섭함을 느끼기 때문에 치료 초기에는 가족의 힘이 절실한 상태다. 이럴 때는 무조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줘야 한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가장 큰 상처는 “내가 나약해서, 문제가 있어서 당했다.”라며 자책하는 것이다. 흔히들, ‘학교폭력이나 왕따는 당하는 사람도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이런 선입관과 시선이 피해자들을 더 위축시키고 자존감에 상처를 준다. 따라서 절대로 당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란 사실을 반복적으로 일깨워주고 지나간 일에 대해 자책하지 않도록 부정적인 자기상을 갖지 않게 도와줘야 한다. 가끔 권위적인 부모님들이 의지로 이겨내라거나, 강하게 마음먹고 직면하며 극복할 것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피해자의 마음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실수다. 부모님 세대와 현재의 학교는 전혀 다른 환경이며, 학교폭력은 피해자의 의지가 약해서 벌어진 일이 절대로 아니다. 따라서 부모님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아이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고 행동 하나, 말 한마디를 상담사의 마음으로, 치료자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


3. 실질적인 대책, 지역사회와 국가적 차원의 제도 개선

  2021년 지금의 학교폭력 수준은 가벼운 따돌림 정도가 아니다. 한 예로, 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매주 몇만 원씩을 상납받고, 이를 거부할 경우 쉬는 시간마다 배와 가슴을 때린다고 한다. 얼굴을 때리면 티가 난다는 이유다. 부모님께 거짓말로 용돈을 타내기 힘들어지면 아이들은 중고 사이트에서 사기를 쳐서 상납금을 마련하고, 가해자들은 상납금을 유흥비와 인터넷 도박으로 탕진한다고 한다. 선생님이나 교내 학교폭력위원회가 이런 아이들을 완벽하게 지켜줄 수 있을까?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면 선생님들과 가해자의 학부모들은 사건을 축소하고 빨리 종결지으려 한다. 허울뿐인 사과와 다짐뿐,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 대책은 없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학교폭력위원회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거라 믿지 않는다. 오직 본인의 힘으로 민사소송을 하는 등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피해자를 위한 상담센터 연계, 무료 심리 치료, 법률 상담 제공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피해자도 본인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적극적인 제도 개선안이 필요하며 정부 정책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시군구에 학교폭력 피해자 상담센터를 만들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4. 정신과 상담을 미루지 말 것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상담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를 미루고 방관할 경우,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정신과적 증상도 예방과 초기 치료가 무척 중요하기에 트라우마 치료의 적기인 두 달 안에 병원에서 상담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소량의 약물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어린 자녀에게 정신과 약을 처방하는 것에 반감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실제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들은 안전성이 보장된 약들이며 특히 청소년에겐 의존성과 내성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기에 지나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친구와 선생님,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할 힘든 상처와 고민이 있는 자녀도 있다. 신체적, 정신적 상처는 물론, 최근 들어 빈도가 늘어난 성적 학대나 피해라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필요한 경우 반드시 가까운 상담실을 찾아가 의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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