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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류, 포노 사피엔스를 위한 교육

글  고병헌 성공회대학교 교육대학원장



  ‘우리 교육이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가’라는 질문에 입시제도를 근본 원인으로 꼽는 사람이 참 많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안정적인 통제 상태에 있지도 않고 집단 감염 위험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도 고3의 등교를 결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 대학 입시이니 크게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입시에 치중된 지식전달 위주의 획일적 교육은 결과로서의 문제이지 우리가 경험하고 목격해온 수많은 교육 문제의 근본 원인이 아니다. 우리 교육의 근본 문제는 ‘무(無)철학’과 ‘교육적 상상력’의 부재로 인해 지금과 다른 교육을 생각해내는 힘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2020년 1학기를 비대면 온라인 원격수업을 진행하면서 많은 대학에서 사달이 난 중간시험 부정행위 사건은 이런 주장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음을 잘 증명해줬다. 언론을 통해 고발된 부정행위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온라인으로 시험을 보면서 검색을 했다든지 학생들이 모여서 함께 상의하면서 시험을 봤다는 것인데,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필요한 전문 지식을 암기하지 않고 몰래 검색하면서, 혹은 다른 친구들과 상의하면서 시험을 치르는 행위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부정행위여야 하는 영역이 있다. 의학과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의학과 학생들이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다는 건 개인 차원에서의 도덕성 문제로 그치지 않고 미래에 불특정 다수의 생명과 직접적 관련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부정행위는 처음부터 엄중히 대응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대학의 다른 많은 학문 영역의 경우는 어떤가?


스마트폰을 ‘신체’로 쓰는 세대

  사람에 따라선, 지금 시대를 설명하면서 인공지능에 더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스마트폰 활용능력에 더 주목하기도 한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풀이하면 ‘스마트폰을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쓰면서 삶의 방식을 재정의한 신인류’란 뜻이다. 포노 사피엔스는 외우기보다는 검색을 하고, 전화 통화 대신 SNS가 훨씬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다. 소소한 일상도 스마트폰으로 공유하고 진지한 상담도 스마트폰으로 한다. 그런데 이런 포노 사피엔스 대학생들에게 자기 ‘신체’를 사용하지 말고 시험을 보라고? 내가 보기엔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1’인 대학교수가 자기가 가르치는 신인류의 정체성을 간파할 안목을 갖지 못한 채 ‘시대 역행적 시험’을 출제한 것이 중간시험 부정행위 사건의 본질이다. 그런데 같은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 수준의 언론이 이번 사태의 원인을 학생들의 부정행위로 보도하는 ‘시대착오적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사회적 문제로 커진 것이다. 사실 언론은 자유롭게 검색하고, 모여서 토론도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각자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얹어서 자기 고유의 이야기를 하게 하는 시험 출제를 상상하지 못한 대학의 책임을 오히려 지적했어야 맞다. 학생들은 포노 사피엔스니까 말이다. 그러면 이런 포노 사피엔스에게는 어떤 교육이 필요한 것일까?
이 질문과 관련하여,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제롬 케이건(Jerome Kagan) 석좌교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는 플라스틱에 만성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야기될 수 있는 건강상의 문제가 있음에도 플라스틱 컵, 접시, 용기, 랩 등의 과도한 사용에 대한 전면적 규제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대부분은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거기에 대중의 정서가 보태져야 법적 행동이 이루어진다. 간접흡연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커지자 결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건물 내부에서의 흡연을 금지했다. 간접흡연의 위험을 말해 주는 증거가 (플라스틱을 제조할 때 사용되는) 비스페놀 A의 유해성을 말해 주는 증거보다 설득력이 떨어지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증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으며 이럴 때는 대중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 사실, 이성, 직관, 그리고 공동체의 정서가 합쳐져야 비로소 대다수 사회구성원이 행동에 나설 설득력 있는 이유로 받아들일 만한 신념이 결정되는 것이다.” 2


질문하는 힘’, 그리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사유하는 힘’은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민력의 핵심이다.


포노 사피엔스에게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

  한마디로, 우리의 건강과 삶의 질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숙한 시민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의미에서 시민의식과 시민문화를 형성할 힘을 길러주는 시민교육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왜냐하면, 포노 사피엔스는 최첨단 과학기술을 신체 일부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신인류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문제는 과학기술이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DNA에 각인되어 있고,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성찰의 호흡도 짧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특성이 포노 사피엔스에게 삶의 태도 변화나 의식 전환을 일으키는 교육을 하는 것을 훨씬 힘들게 만들었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포노 사피엔스를 위한 시민교육이 그만큼 더 절실해졌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포노 사피엔스가 건강하고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앨빈 토플러, 다니엘 핑크와 함께 ‘세계 3대 미래학자’로 손꼽히는 영국의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Richard Watson)은 기계나 기술이 아무리 똑똑해지더라도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공감 능력, 직관, 민감한 식별력, 인격, 인간관계 등이 바로 그런 요소라고 했다. 또, 유명 사립학교에 다니던 자녀들을 자퇴시키고 자기 집 차고를 리모델링 해서 ‘애드 아스트라(Ad Astra: 별을 향해)’라는 학교를 세운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도, 미래 교육은 위급하고 긴박한 상황에서의 윤리적 판단 능력과 함께, 사회적 차원에서의 대안적 가치에 대한 모색과 토론, 합의 능력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애드 아스트라에서 학생들이 토론하는 주제의 한 예다.

  “어느 시골 마을에 공장이 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공장에 취업해 있다. 그러나 이 공장으로 인해 호수는 오염되고 생명체들은 죽어간다. 공장 문을 닫는다면 모든 마을 사람들이 실업자가 된다. 반대로 공장을 계속 가동하면 호수는 파괴되고 생명체는 죽음에 이른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3

  ‘애드 아스트라’는 윤리적 가치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회적 딜레마 상황에서의 판단 능력을 미래사회에 필요한 핵심적인 시민력(市民力)으로 봤다. 또한, 일본 국립정보학연구소 교사이면서 일반 사단법인 ‘교육을 위한 과학연구소’ 대표이사 아라이 노리코(新井紀子) 소장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재를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4’으로 정의했다. 그는 일본 교육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기계나 기술이 대체 못하는 인재를 기르는 법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빅)데이터로 ‘자동화된 추론’을 하며, 그것도 바둑이나 체스처럼 특화된 영역에 국한된 능력이다. 이를 기술적으로는 ‘약한 인공지능’ 혹은 ‘특화형 인공지능’이라고 부른다. 딥러닝 기술을 통해 인공신경망을 발달시키더라도 인공지능은 자동화된 추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세계적인 전문가들은 인간 지능처럼 ‘딥러닝과 신경망의 융합으로 자율적 사고가 가능’한 ‘강한 인공지능’이 현재로서는 공상과학 수준으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라고들 말한다. 그들이 이렇게 진단하는 데는 인간 지성의 자율적 속성이 중요하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동화된 추론을 하는 인공지능과는 달리 ‘질문하는 힘’, 그리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사유하는 힘’은 포노 사피엔스가 건강하고 책임감 있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민력의 핵심이다. 실로, 신인류인 포노 사피엔스를 위한 교육의 중심 내용은 ‘민주시민교육’이어야 한다. 


1  ‘사피엔스’ 단어가 한 번 더 찍힌 오타가 아니다. 초기 호모 사피엔스와 현대인의 뇌 발달 상태를 동일하게 보는 게 무리가 있어서 현대인에겐 ‘사피엔스’라는 단어를 한 번 더 붙여서 초기 호모 사피엔스와 구별하기도 한다.

2  제롬 케이건(Jerome Kagan)(2020).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 On Being Human: Why Mind Matters」(김성훈 역). 서울: 책세상, 135쪽.

3  2017년 11월 15일 <연합뉴스>에서 인용

4  아라이 노리코(新井紀子)(2018).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 AI VS. KYOKASHO GA YOMENAI KODOMOTACHI」(김정환 역). 서울: 해냄,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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