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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현 소보로 대표

‘소리를 보는 기술’로 청각장애인의 소통 창구가 되다


글_ 양지선 기자




[윤지현 소보로 대표]

  “소통이 필요한 모든 곳에 함께 하겠습니다.” 마이크에 대고 말한 음성이 곧바로 태블릿 PC 화면의 글자로 나타난다. 실시간 자막처럼 말하는 대로 받아적는 이 서비스의 이름은 소보로, 풀이하면 소리를 보는 통로다. 들리는 대로 받아적을 뿐 아니라, 앞뒤 맥락을 이해하고 잘못 인식한 단어는 문장의 흐름에 맞게 바꿔주기도 하는 신통한 프로그램이다.

  윤지현 대표는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접하고 처음 소보로의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청각장애인인 작가가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인식하게 됐고, ‘음성을 인식해 문자로 바로 보여주는 서비스’가 만들어진다면 청각장애인들의 불편함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후 포항공대(POSTECH) 창의IT융합공학과 재학 중 ‘창의IT설계’라는 전공 수업을 통해 아이디어가 구체화됐다.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에 감명…
수업 프로젝트로 창업 아이디어 구체화


  “각자 원하는 분야를 정해 4학기 동안 자유롭게 연구하는 수업이었는데, 머릿속에만 있던 아이디어를 실현해볼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사업화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농아인협회와 복지관에 방문해 청각장애인들을 만나고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도움을 많이 얻었어요. 실생활에서 편하게 쓸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서까지 만들게 됐죠.”

  이후 1년간 창업을 준비한 윤 대표는 2017년 말 법인을 설립했고, 이듬해 3월 첫 투자를 받아 두 달 후 정식 서비스를 출시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이제 1년 남짓. 소보로는 그간 공공기관, 학교, 직장 등 총 200여 곳에 도입되는 성과를 이뤘다. 그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은 직장으로, 총 124곳에 이른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무상으로 소보로 서비스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회사는 비용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고, 청각장애인은 회의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바로 참고할 수 있어 유용하다.



청각장애인 학생 수업도우미로 활용 가능


  소보로가 향후 가장 비중을 넓히려는 분야는 ‘교육’이다. “일반 학교에서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수업을 동시에 따라가기에 어려움이 많다. 실시간 자막이 있다면 수업에 참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윤 대표의 설명이다.

  내년에는 전국 교육청과 협력해 실제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러 청각장애인 학생들을 만나며 전해 들었는데, 수업은 물론 교우 관계 등 전반적인 학교생활이 무척 힘들다고 했어요. 만약 어릴 때부터 자막을 통한 소통이 가능했다면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죠. 소보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소보로는 현재 PC용과 태블릿, 두 가지 형태로 출시되고 있다. 태블릿 버전에서는 필담 기능으로 양방향 소통도 가능하다. 윤 대표는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기자처럼 녹취가 필요한 직업군, 혹은 직장에서 회의록 작성 시 등 비장애인들에게도 활용도는 다양하다.”라고 전했다.


만23세 청년 창업가의 도전


  올해 만 스물셋으로 또래보다 조금 일찍,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윤 대표는 창업을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나에게 어떤 역량이 있는지, 또는 부족함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하고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겸허함도 느끼면서 한편으론 하나씩 성과가 생길 때마다 자신감도 생겼죠.”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준 건 팀원들이라며 덤덤히 공을 돌렸다. 현재 CTO, 영업담당자, 디자이너, 개발자 등 학교도, 출신도 서로 다른 9명이 모여 소보로 팀을 이루고 있다.

  평소 괴로움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윤 대표. 그는 창업을 시작하고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청각장애인들로부터 감사 이메일을 받거나 팀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들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10번 중에 8번 힘들더라도 꼭 한두 번은 좋은 일이 있더라고요. 힘든 상태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 속에서 재미있는 순간들을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CTO, 영업담당자, 디자이너, 개발자 등 학교도, 출신도 서로 다른 9명이 모여 소보로 팀을 이루고 있다.]


[소보로는 실시간으로 음성을 인식해 문자로 보여주는 서비스 로, 청각장애인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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