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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119레오 대표

폐방화복 재활용해 패션잡화로 “소방관 처우개선 위해 수익금 기부”

글_ 양지선 기자


[  이승우 119레오 대표 ]

  지난 2014년, 31세였던 고 김범석 소방관은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암을 선고받은 지 7개월 만에 사망했다. 그는 현장 출동 1,000회를 넘길 정도로 위험한 환경에서 수많은 구조 활동을 펼쳤지만, 업무 환경과 질병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상(공무상 재해보상) 승인을 받지 못했다. 119레오(대표 이승우)는 이처럼 힘든 환경에서 목숨 바쳐 일하는 소방관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서 탄생했다.


  건국대학교 창업동아리 ‘인액터스’에서 시작된 119레오(REO)는 ‘Rescue Each Other’, 즉 서로를 구한다는 뜻이다. 이승우 대표는 “위험에 처한 시민을 구해주는 소방관처럼, 어려움에 처한 소방관들에게 우리도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119레오는 폐소방복을 활용해 가방, 팔찌, 키링 등 패션잡화로 만들고, 그 판매 수익금 일부는 대한민국재향소방동우회를 통해 공상 불승인 소방관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3년 전 이승우 대표를 비롯해 총 3명의 팀원들은 소방관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영웅’이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을 알게 됐다. 장비가 부족해 구조 활동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 또 암 투병 소방관들은 대부분 공상 불승인으로 개인 휴가를 내서 사비로 치료받는다는 것. 특히 고 김범석 소방관의 이야기는 소방관 처우개선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팀원들은 연간 버려지는 소방복 1만 벌을 패션 아이템으로 재탄생시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119레오에서 판매하는 제품들. 전부 폐소방복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이승우 대표는 119레오의 제품을 직접 디자인한다]

창업동아리서 시작, 故김범석 소방관 사연 계기
  폐소방복을 제품화하는 과정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디자인을 전공한 팀원이 없어서 7~8개월간은 상품 디자인에만 매진했다. 제작 과정에서도 방화복에 쓰이는 아라미드 섬유가 특수 소재인 만큼 재단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무작정 동대문을 찾아가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40여 군데 공장을 일일이 컨택했다. 소방복을 하루에 10벌씩 직접 손으로 분해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지만 선한 의도를 가진 119레오 팀에게 많은 이들이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첫 크라우드 펀딩 오픈 이후 2주 만에 4,000만 원이 모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처음에는 사업화할 생각 없이 모든 수익금을 기부하겠다는 마음으로 제작비와 수수료를 제외한 700만 원을 기부했어요. 치료비용 때문에 생활이 어려운 공상 불승인 소방관들의 1차 소송비로 쓰이도록 지원했죠.”


  두 명의 암 투병 소방관에게 기부금이 전달된 후 ‘세상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던 이 대표에게 세상은 오히려 냉혹한 현실을 맛보게 했다. 두 소방관이 소송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연이어 세상을 떠난 것. 허무함과 좌절감이 밀려와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라고 방황하던 순간, 그를 다시 붙잡은 것은 고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의 고맙다는 전화였다. 그는 “소방관들의 상황이 변하기 위해서는 단기 프로젝트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꾸리는 방향으로 마음먹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119레오는 현재 사진 전시회, 소방관과의 토크콘서트 등 문화 행사도 함께하고 있다. 단순히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에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받는 소방관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 대표는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계속 이 일을 이어서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프로젝트 시작 2년만인 지난해 119레오를 법인으로 등록했다.


수익금 50% 기부, 전시회·토크콘서트 등 문화 행사도
  현재 순수익의 50%를 기부하고 있는 119레오는 올해 상반기까지 총 누적 기부액 2,000만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는 해외 진출과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 입점도 목표로 한다. 이 대표는 “개발도상국에서는 방화복이 없어 소방관들이 우비를 입고 화재 현장에 나선다.”라며 “전 세계 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해 제품화하고, 그 수익금으로 개발도상국에 방화복을 공급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건국대 건축학과를 휴학 중인 이 대표는 사업이 안정화된 후 복학할 예정이다. ‘Change the world’,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로 동아리에 지원한 그는 20살 대학생에서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 창업가로 성장했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묵묵하게 그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세상이 바뀌어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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