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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혁명②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글 _ 서덕인 안산광덕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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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유수 같다고 했던가? 초등 교직에 입문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0년 차 경력에 이르렀다. 학교에 교장, 교감 선생님을 비롯하여 고경력의 나이 지긋하신 선배님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와 같은 경력이지만 올해 9월에 10년 경력의 중간급 교사가 되어 보니 나에게는 뜻깊은 시점인 것 같다. 초임 교사로 교과 지도와 생활 지도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교장 선생님께 여러 번 호출을 당해 밤늦게까지 교장실에서 꾸지람도 듣고 남몰래 속상해하며 눈물바람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경력 5년 차까지 매년 임상장학 수업을 할 때면 한 달 전부터 지나친 걱정에 잠을 설친 적도 있었고 실제 수업 날 아이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고 예상했던 대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아 진땀을 뺐던 기억이 새롭다. 



또 지각했느냐의 나의 물음에 그 아이는 욕설을···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내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부분은 교과 지도가 아닌 생활 지도였던 것 같다. 특히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거나 교우관계가 힘든 아이, 교사에게 반항하는 아이와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다. 나는 흔히 9발이라고 하는 9월 2학기 시작에 발령을 받았다. 1학기와 다른 담임이 2학기에 오게 되니 아이들도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기대만큼 내가 부족한 점이 많았던 건지 바람 잘 날이 없는 학급이 되고야 말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반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관리자와 면담을 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그 당시 교감 선생님이 내가 남들이 30년 동안 겪을 일을 6개월 속성반으로 배우고 있다고 하셨을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이라는 어느 시의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지금이라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바보같이 내가 왜 그때 그랬을까? 후회가 막심하다. 특히 예전 우리 반 한 여자아이 A가 뇌리에 오래 남는다. 과학 시간에 이유 없이 과학 교과서를 한 장 한 장 뜯던 모습, 매일 지각을 하며 교실 뒷문을 아무 표정 없이 열고 들어오던 모습, 복도에서 서로 마주칠 때면 피식 비웃음 같은 표정을 짓던 아이. 특히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그 아이는 매일 함께 지각을 하는 친한 친구 B가 있었다. 그 B는 담임인 나에게 반항적이진 않아서 늘 그 아이에게 지각을 하게 된 이유를 물었고 방과 후 남아서 학급규칙에 따라 봉사활동을 하도록 말을 건넸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아이를 함께 불러 또 지각을 했느냐며 조금 언성을 높이고 가보라고 하자 뒤돌아서던 A가 들릴 듯 말 듯 말을 흘렸다. “나에게 관심도 없는 xx가···”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A가 나에게 욕을 했다는 것보다는 내가 그 아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과 반성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나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말 잘 듣는 아이들만 모여 있으면 재미없어~”

  10년 동안 교사로서 가르치면서 선배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될 때가 많다. 한 반 안에서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애들을 더 보고 힘을 내라, 못된 모습은 때로는 못 본 척하고 그러려니 해라는 말씀도 해 주셨다. 평정심을 잃지 말고 착하게 잘하는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라는 말씀일 테다. 그런데 나는 그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나 보다. 나에게 반항하고 비뚤어진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을 때 의도적으로 못 본 척하거나 별일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안일하게 대처하는 일들도 많았음을 반성하고 고백한다. 비록 지금까지 큰 사건 사고는 없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식의 임시변통 대응이었음이 분명하다. 


  ‘경험이 최고의 선생님을 만든다’라는 문장은 나의 좌우명 중에 하나다. 경험이 쌓이면서 보는 시각도 넓어지고 마음의 여유가 쌓이면서 여러 상황에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반에 담임인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제는 본체만체하지 않고 일부러 더 그 학생의 이름을 부르고 더 눈 맞춤을 하고 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 다가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시 구절처럼, 그리고 어린 왕자가 말했던 ‘길들여진다(Tame)’는 것을 이제야 우리 아이들에게 실천하고 있다. 어쩌면 나를 속상하게 하고 나를 슬프게 했던 아이들은 나의 관심이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관심을 더 받고 싶어서 했던 일종의 몸부림은 아니었을지. 학급긍정훈육법(PDC)의 몇 가지 원칙 중에 ‘지적하기 전에 공감하라’라는 문구가 있다. 아이들을 훈계하기 이전에 인간적인 끈(고리)을 만들라는 것이다. 아이들을 꾸짖고 비난하기 전에 진정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는지 나에게 반문해 보고 있다.


  해가 바뀌어 학년 초에 새 담임반을 맡을 때면 반 학생들 이름이 적힌 명단을 동학년 선생님들과 무작위로 뽑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올해 평탄한 아이들이 많은 반을 뽑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모습인 것 같다. 친한 선배 교사의 말씀이 떠오른다. “말 잘 듣는 아이들만 모여 있으면 재미없어~”. 

  겨우내 움츠렸던 매화 꽃망울이 기지개를 켜는 늦은 밤에 봄바람이 내 귓전에 살포시 전하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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