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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수업’을 통해 성장하는 교사들

똑똑비주얼스 수업나눔연구회


  우리는 교사로서 언제나 훌륭한 수업, 멋진 수업, 성공한 수업, 그리고 ‘좋은 수업’을 추구한다. 마치 답이 없는 문제를 접했을 때의 막연함처럼 또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그리워하듯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당연하게도 우수 수업사례, 성공한 수업사례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실패를 다 해본 사람만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 현장 교사들은 지금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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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실패 사례가 우리를 더 성장하게 할지 모른다

  교사들이 생각하는 ‘좋은 수업’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어떤 수업이 교사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좋은 수업’인지 구별하는 안목은 모두가 지니고 있다. 이러한 안목은 많은 성공사례들을 접하면서 갖추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처절하게 ‘망한 수업’을 통해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다. 경북지역의 뜻이 있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똑똑비주얼스 수업나눔연구회’에서는 자다가도 수없이 ‘이불킥’할 법한 ‘수업 흑역사 이야기’를 공모전으로 개최하여 선생님들의 생생한 수기를 받아 엮었다. 기존의 우수사례 발굴이나 성공으로 점철된 수업 나눔이 아닌, 진정으로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솔직한 수업 나눔을 통해 선생님들의 진솔한 성찰과 배움의 경험을 가감 없이 나누고자 함이었다.



솔직해서 눈물 나고, 발칙해서 재미나는 수업 이야기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12일까지 3주 동안 진행된 공모전에서는 자유로운 수기 형식으로 선생님들이 부담 없이 자신의 수업과 교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하였다. 연구회에서 자발적으로 주관하여 개최한 공모전에 100여 편의 공모작이 들어온 것은 선생님들이 그동안 얼마나 솔직한 수업 나눔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코로나 시대에 더더욱 털어놓기 힘들었던 교사로서의 고민들을 기존의 형식에서 탈피하여 유쾌하게 공유함으로써 선생님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는 평가다. 특히, 현장의 일반 교사뿐만 아니라 교장, 교감, 전문직 등 교원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도록 하여 선배교사들과 MZ세대 교사 세대 간의 간극을 좁혀줄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선배교사들의 연륜과 경험, MZ세대 선생님들의 변화하는 시대의 교사상과 그 고민들을 동시에 확인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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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가 더 수업을 망쳐보았는가? - 나의 수업 흑역사 오답노트! >


가끔은 아이가 어른보다 낫다 _____ 신수정 _ 상영초 교사


  2학년 미술수업 시간 중 외마디 비명이 정적을 깨뜨렸다.

  “선생님, 사랑이 머리 좀 보세요!” 사랑이라면 나의 아픈 손가락과 같은 아이다. 수업 시간에 늘 집중하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종종 혼나곤 한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려나,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사랑이 쪽을 돌아보았다. 맙소사! 마치 개그 프로의 한 개그맨처럼 사랑이의 바가지 머리가 제멋대로 뭉텅 잘려 있었다. 

한 아이가 박장대소하며 낄낄대었다.

  “저게 뭐야. 진짜 이상해!”

  그렇지 않아도 불그스레하던 사랑이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사랑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꾹 움켜쥔 작은 비닐봉지에는 머리카락이 반은 담겨 있고, 반은 날리고 있었다. 나는 사랑이를 따로 복도에 불러 넌지시 물어보았다. 사랑이는 아버지께서 탈모 진단을 받아 머리카락을 나눠 드리고 싶어 잘랐다고 한다. 어른들이 ‘머리를 심는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아버지께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울먹였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랑이의 마음은 예쁘고 기특하나 다른 아이들이 분명 비웃을 텐데, 상처받지나 않을지 걱정이었다. 비웃는 아이는 어떤 벌칙을 내주어야 할지, 얼마나 분위기를 무섭게 잡아서 아이들이 놀리지 못하도록 할지 고민했다. 

  그때,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나도 동생이 미용실 놀이하다가 머리 잘라서 저렇게 된 적이 있어!”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우수수 이야기했다.

  “나도 그래! 집에서 가위로 장난치다가 훨씬 더 자른 적이 있어!”

  그렇게 만담회가 열렸다. 머리카락과 관련된 온갖 무용담들로 교실은 부풀어 올랐다. 서로 누가 더 머리를 많이 잘랐는지, 머리 자르는 놀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야기했다. 이쯤 되자, 처음에 사랑이를 보고 웃었던 아이도 머쓱한지 머리를 긁었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사랑이 옆으로 가서 사과하고는 자른 머리가 보이지 않게 감춰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교실 곳곳에서 머리카락이 속출했다. 모든 아이들이 자기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 것이다. 잔머리가 지난번부터 거슬려서 자르고 싶었다는 둥, 귀 옆으로 머리를 조금 자르고 싶다는 둥 하면서. 별안간에 머리를 뭉텅 자르는 것이 유행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우리 반 아이들은 약간씩 머리를 모두 잘랐다. 모두가 함께 자르니, 오히려 머리가 반쯤 잘려 나간 상태가 더 정상적으로 보였다. 사랑이의 얼굴이 다시 햇살처럼 빛났다. 집에 가서 혼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말했다.

  “머리카락은 또 나는데요, 뭘.”




증인신문 _____ 전용수 _ 도산초 교감


“선생님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2년 차 신규교사의 장학지도 수업 공개에서 준비한 연극 수업. 준비한 연극 대본 그 어디에도 증인은 없었다. 사냥꾼에 쫓기는 사슴 이야기에 대관절 내가 증인이라니...

  ‘선샘요, 얼른 나오소.’ 

  재촉하는 녀석들 등쌀에 당황스러운 가운데 준비된 의자에 얼떨결에 앉고 말았다. 수업 참관을 하고 계시던 담당 장학사님, 교장, 교감선생님도  어리둥절해 지도안을 뒤적이고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이 곁눈질에 다 보였다.

  “증인은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까?”

  ‘이 녀석들 어디서 본 거는 있어 가지고... 진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희들은 모두 죽었어. 장학지도를 위해 몇 날 며칠을 구석구석 청소에 수업 준비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렇게 망치다니...’

  “네.” 화나고 어이없는 가운데 수업반성회를 생각하니 식은땀이 다 날 지경임에도 대답을 이어갔다. 그렇게 몇 가지 질문들을 하더니 느닷없이 생뚱맞은 질문을 하였다.

  “증인은 지난번 급식 도중 갑자기 운동장으로 집합을 시킨 적이 있습니까?” 

  이 녀석들이 아주 나를 골탕 먹일 작정을 한 모양이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이판사판이다. 

  “네, 형우가 은영이를 때렸는데 반 친구를, 그것도 여학생을 때린 행동은 잘못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증인은 그날 이후 우리 반이 똘똘 뭉치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그랬구나! 어쩐지 그때부터 다툼도 사라졌고 내가 야단을 치려 하면 서로 변호해주며 모두들 잘 지내더라니. 그러고는 정말이지 뜻밖의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나요?”

  이건 또 뭔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얼마나 사랑하냐니? 진짜 난감하기 그지없는 질문이었다. 작년 9월에 초임교사로 발령을 받게 되어 2년 차지만 사실상 처음으로 맡게 된 제자들이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야 당연했지만, 그렇다고 맞다고 대답하기는 왠지 너무 부끄러웠다. 붉어진 얼굴 때문에 속마음을 들킬까 봐 조바심이 일었다. 이럴 땐 뭐니 뭐니 해도 36계가 최고다.





망(亡: 망할 망)한 수업을 돌아보고, 망(望: 바랄 망)한 수업을 향해 나아가자!

  돌아보면 아쉬웠던 교실 이야기, 의도와는 다르게 엉뚱하게 전개되어 더 감동적인 우리들의 수업 이야기, 예상치 못했던 학급살이와 생활지도 사례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교육가족들은 저마다 큰 변화를 겪었다. 멈춰버린 수업 나눔도 마찬가지이다. ‘수업 흑역사 이야기 공모전’과 같은 색다른 현장의 시도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상 수업을 나눔하고 ‘좋은 수업’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수업 성찰의 문화를 정착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최고의 수업보다 최선의 수업을 향한 선생님들의 고민과 노력이 널리 공유되며 더 넓고 깊은 새로운 수업 나눔의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실패에서 찾는 성장의 기회! 모든 선생님들이 주인공이다. 



똑똑비주얼스 수업나눔연구회1

1 선생님들의 교실 문과 마음의 문을 똑똑 열어 함께 수업을 나누고자 모인 비주얼로 승부하는 경북 초등교원 연구회로 10명의 교원이 활동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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