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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쌤과 산골 학교 아이들의 좌충우돌 한 해 살이

웅크리고 들여다보는 그것


글_ 탁동철 강원 조산초등학교 교사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 만나는 아이들과 지내는 게 안 쉽지만, 올해는 유난히 헤맨다. 까닭은 내가 나이 든 선생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올해 만난 6학년 남자들의 세계가 나와 많이 다르다는 것. 나는 현실 세계가 중요한데, 아이들은 사이버 세계가 중요하다. 나는 아이들이 핸드폰 세상에서 헤쳐 나와 두 손 두 팔 훨훨 활개 치길 바라지만, 아이들은 고개 숙이고 두 손 꼭 모아 쥐고 핸드폰 화면 속으로 웅크리기를 원한다. 금요일 오후 수업 마칠 즈음이면 아이들이 들뜬 얼굴로 떠벌인다.

  “크크크 토요일 일요일 밖에 안 나갈 거임. 계속 게임만 할 거임.”

  1학기 때는 핸드폰 문제로 학생회의 자리에서 공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때 일을 기록한 글 한 편.

  3, 4, 5, 6학년이 한자리에 모여 6학년 저격 부족 회의를 시작한다.

  “6학년이 핸드폰 해요.”

  “6학년이 게임하고 야동 봐요.”

  6학년, 치명타 999.

  방어, 6학년이 말합니다.


  “이제 초등학생 얼마 안 남았는데 핸드폰 하게 그냥 놔두세요. 자유롭게. 프리덤.”

  그러나 두 번째 공격, 5학년이 말합니다.


  “그러면 초등학생 얼마 안 남았으니까 6학년은 담배랑 술 먹어도 된다는 겁니까?”

  “6학년이면 동생들한테 모범을 보여야 되는 것 아닙니까?”

  6학년 기절, 켁. (6.4 영한)


  회의 내내 쩔쩔 당하는 녀석들을 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게임을 해? 야동을 봐? 어째서 그게 아니라는 변명조차 제대로 못 한단 말이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동생들을 향해 고개 숙여 말했다. “담임인 제 잘못입니다. 이제부터 6학년은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핸드폰 끄게 하겠습니다!”

  반 아이들과 나 사이는 더욱 서먹해졌다. 내가 아침에 교실 문 열고 들어서면 손에 꼭 쥐고 있던 뭔가를 후닥닥 감췄다. 아예 수업 시간 될 때까지 교문 밖 어딘가에 숨어있기도 했다.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부담이 되는 몸인가, 날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점점 지나면서 아이들은 내가 미적지근 우유부단 쉬운 사람이란 걸 알아차렸고, 약한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말갛게 뜬 두 눈을 깜빡거리며 “음악 좀 들어도 돼요?” 이러는데 그 예쁜 눈을 보며 어찌 차가운 말을 내뱉을 수 있겠나. 머뭇거리는 틈을 타서 음악 듣고 게임하고. 애틋한 목소리로 “검색 좀 할 게 있는데요.” 이러면 또 흔들리는 수밖에 없고. 축구는 귀찮고, 뜀박질도 싫고, 몸은 날마다 불어나고, 닫힌 공간에 박히기를 좋아하고.

  다시 회의를 열었다. 핸드폰한테 자유를 달라, 어느 하루를 정해서 맘껏 하기,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이라면 생각해볼 수도 있다 했고, 아이들은 2주에 한 번은 되어야 한다고 우겼다. 서로 반반씩 손해 보는 거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사인한 문서를 보관함에 넣었다. 녀석들은 ‘개이득’이라며 입이 귀에 걸렸다. 순진하기는. 나야말로 손해 아니다. 어차피 슬금슬금 하던 핸드폰, 하루에 10분씩 눈치 핸드폰 시간 곱하기 22일이면 220분. 이 정도면 전담 시간 뺀 나머지를 핸드폰 시간으로 허용해도 손해 아니다. 거기다가 녀석들은 결코 이 규칙을 지켜내지 못하리란 예상. 누군가는 정해진 시간을 넘겨 보관함에 넣을 테고, 누군가는 점심시간에 몰래 손에 쥐기도 할 테고, 그러면 ‘핸드폰의 날’은 22일 뒤가 아니라 40일 뒤, 50일 뒤로 무한정 밀려날 것이다, 이게 내 계산.

  당장 처지가 바뀌었다. 나는 아이들한테 핸드폰을 권했다. 규칙을 어기는 게 나한테 유리했고, 아이들은 그 반대였다. 사흘 뒤 핸드폰을 17초 늦게 보관함에 넣은 아이가 생겼다.

  “고마워.”

  ‘핸드폰의 날’은 25일 뒤로 밀려났다. 아이들이 저들끼리 대책 회의를 열어 핸드폰에서 손 떼는 시간을 앞당겼다. 정해진 시간 5분 전에 미리 보관함에 넣자고. 쉬는 시간에 내가 윤서한테 다가가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윤서야, 게임해. 심심하잖아.”

  윤서가 싫다고 한다. 내가 주머니에서 핸드폰 장려금 500원을 꺼내 건네며 다시 권했다.

  “쉿, 보는 사람 없어. 비밀 지킬게.”

  윤서가 딱 잘라 긋는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들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

  “…….”


  “하지만 저에게 만 원을 주신다면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습니다.”


  그건 너무 비싸다. 적당한 때를 노려서 아이스크림 한 개 값 정도로 다시 협상을 볼 예정이다. 크크크. 결국 ‘핸드폰의 날’이란 건 상상 속에만 있는 날이 되는 것이다.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달력을 한 장 넘겨서 하나 둘 셋 넷……. 규칙을 정한 날로부터 22일하고 사흘. 그날은 오고 말았다.

  “불꽃 독수리!”

  “크크크큭.”

  “아아악 윽윽윽. 야, 나 살려 봐. 짤짤이한테 죽었어.”


  교실 한가득 나를 불행하게 하는 웃음꽃이 피고 말았다. 처음이니까 내가 일부러 허술하게 봐준 탓이다. 아이들은 다음번 핸드폰의 날을 기대하지만, 그날은 결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날이다. 사실, 내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크크크.

  “얘들아, 게임을 해야 머리가 좋아진대.”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만 보지 말고 손에 뭐라도 쥐란 말이야.”

  “요즘 뜨는 음악이 뭐더라?”

  “…….”



필자는 1968년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같은 마을에서 살며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전교생이 39명인 조산초등학교 산골 아이들과 산과 바다를 누비며 작지만 확실한 교육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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