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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쌤과 산골 학교 아이들의 좌충우돌 한 해 살이 새 학교 첫 날

글_ 탁동철 강원 조산초등학교 교사 

 

                               


  “올해는 생선 안 사도 됩니다.”
  큰소리 쳐놓고 집을 나서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새로 만날 아이들을 떠올린다. 바닷가 마을 아이들이니 파도처럼 거칠겠지. 뭐라 인사말을 건넬까. 모르는 게 많으니 잘 알려달라고 해야지. 구멍 숭숭 뚫린 선생, 한없이 허술한 선생이 되자.
  작년까지 지내던 면소재지 농촌 학교에서는 닭 키우고 개 산책 시키고 논두렁을 걸었다. 올해는 파도치는 학교니까 개나 닭은 못 키울 테고. 낚시를 해야겠다. 학교 담 너머가 바다고, 바다가 넓으니까 물고기가 많겠지. 오늘 아이들 만나면 낚시부터 가르쳐 달라 졸라야지. 장난말로 생선 안 사도 된다고 했지만, 잡을 생각 없다. 그냥 넋 놓고 서서 바라보는 걸로 충분해.
  바다니까 별이 아름답겠다. 밤에는 아이들이랑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별을 봐야지. 반짝반짝 억만년 먼 하늘에서 오는 별 밑에서 소리도 질러보고 술래잡기도 하고.

 

  바닷가 따라 해파랑 자전거 길이 이어졌지. 올해는 6학년 담임을 맡았으니 수학여행을 가겠네. 자전거로 가자. 자전거 수학여행. 동해안 해안선 따라 아래로 아래로. 부산까지 얼마나 걸릴까. 핸드폰으로 검색 해보니 양양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324km로 나온다. 천천히 달려도 열흘이면 가겠다. 트럭 한 대 불러서 쌀 싣고 냄비 싣고 텐트 싣고 우리 자전거 뒤를 따르라 하고. 해 질 무렵이면 자전거에서 내려 텐트 치고 고기 잡아 국 끓이고 밥 지어 저녁 먹고 노래하고 하루 지낸 이야기 하고 잠자고, 다음날 아침 해 뜨면 다시 출발. 내 머리 속에 엉덩이 실룩실룩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자전거가 달린다.

  핸드폰이 울렸다. 먼저 학교에 있는 3학년 남자아이다. 이 녀석도 오늘부터는 4학년이겠구나.
  “탁샘, 지금 어디예요?”
  “버스 안인데…….”
  “왜 안 와요?”
  “…….”
  “내년엔 와요.”
  “…….”
  “잘 지내세요.”
  배신자 소리 안 해서 고맙다. 작년 12월에 강당에서 탁구를 치는데 3학년 남자아이가 왔다. 저도 시켜줘요, 해서 같이 탁구를 쳤다. 아이는 탁구가 서툴렀다. 내가 공을 느리게 높게 넘겨주어야 겨우 받아치는 정도였다. 똑딱똑딱 넘기다가 공 줍다가 다시 치다가 이러는 중에 아이가 대결을 신청했다. 
  “탁샘, 시합해요. 제가 이기면 내년에 우리 학교 더 있기. 알았지요?”
  자기 맘대로 정한 약속이지만 상관없다. 공을 겨우 맞히는 실력한테 내가 질리는 없으니까. 몇 번을 해도 내가 이겼다. 그런데 아이가 조건을 바꾸었다. 나보고 한 쪽 눈을 감고 치라 한다. 뭐 한 쪽 눈이 아니라, 한 쪽 눈에 한 쪽 팔에 한 쪽 발만 갖고 해도 달라질 것 없지. 나는 오른쪽 눈을 감았다. 얼마든지 이길 것 같았다. 그런데 지고 말았다. 거리 조정이 안 돼서 계속 헛손질을 했다. 아이는 만세를 불렀다.

  “약속 안 지키면 배신. 알았지요?”
  녀석이 주먹을 치켜들며 배신하면 가만 안 두겠다 했다.
  “나도 그러고는 싶지만…….”
  한숨을 푹 쉬는데 아이가 복도 저쪽으로 쿵쾅쿵쾅 달려갔다. 자기가 해결해주겠단다. 곧 다시 오며 “교장샘도 안 된대요.” 한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켜요.”
  녀석은 내내 다른 아이들한테 떠벌리고 다녔다. 탁샘 내년에 이 학교에 더 있는다 했다고. 나는 눈치 보며 녀석을 슬슬 피해 다녔다.
그리 서운하게 헤어졌으면서도 해가 바뀌니 마음이 바뀌는구나. 이렇게 새 학교 가는 길이 붕붕 설레는 걸 보면 내가 간사하고 배신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어쩌겠나. 한 학교에 4년이면 끝인 것을. 

 

  작년 학교에서는 계절 마다 사람들 초청해서 마을 음악회를 했다. 올해는 좀 다른 음악회를 해봐야지. 날마다 마주치는 자리마다 순간마다 느낌을 붙잡아 시를 쓰고, 시에 곡을 붙여 노래 만들고, 노래 연습 악기 연습해서 우리들끼리 공연하고, 가끔 사람들 앞에 내보이고. 공연장은 맘대로. 나무 밑에서도 하고 마을 골목길에서도 하고 읍내 시장에서도 하고. 기타, 멜로디언, 키보드 따위 싣고 다니려면 손수레가 있어야겠군. 손수레에 악기 싣고 다니는 공연. 이걸 뭐라고 할까. 손수레 음악회? 리어카 버스킹?
내가 뭘뭘 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지는 말아야지. 먼저 꺼내면 진다. 아이들은 말 꺼낸 어른한테 모든 걸 맡겨버린 채 팔짱 끼고 보고만 있을 거다. 내 말은 감추자. 별 의욕도 없는 얼굴로 아이들한테 물어봐야지. “자전거 탈 줄 알아? 손수레 운전 할 줄 알아?” 이렇게.
버스에서 내려 교문을 들어선다. 벌릴락 말락 빠져나오는 목련 꽃봉오리 만나고, 노란 산수유꽃 만나고, 소나무 가지에서 우는 박새 두 마리 만나고, 그리고 교실로 들어섰다.

노란 잠바 입은 아이가 교사 책상 밑에서 얼른 기어 나온다. 담임이 여선생인 줄 알고 숨어서 놀래주려다가 당황한 모양이다. 겨우 넷이 앉아서 “남자는 무서운데.” 수군거린다. 6학년 전체가 다섯인데 한 명은 가족 여행 가서 아직 안 왔다고 한다.
해보겠다 마음먹은 일이 많은데 학생은 다섯. 한 쪽 눈 감아도 되겠다. 이십 몇 년을 선생 노릇 했지만 이렇게 적은 아이들과 만나는 건 처음이다. 전에는 아이들이 적으면 두 학년이나 세 학년이 한 교실에서 공부했다. 내가 처음 발령 받은 삼척 어느 분교에서는 3복식 수업이라는 걸 했다. 4학년 일곱, 5학년 여섯, 6학년 여섯 명을 한 교실에서 가르쳤다. 지금은 그때 3복식을 했던 교실의 한 학년 숫자보다 적은 것이다.
내가 서운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안경 쓴 남자아이가 말한다. 자기네도 1학년 2학년 때는 열두 명이었는데 한 명 한 명 계속 읍내 학교로 전학을 가서 지금은 남자만 다섯이 남은 거라고.

 

“우리랑 지내다보면 한 명이 열 명처럼 느껴질 거예요. 애들이 말을 안 들어서.”
그 말이 썩 반갑다. 애들은 말 안 듣는 게 당연. 말할 자유가 있으면 안 들을 자유도 있는 것. 분필을 손에 쥐고 아이들한테 물었다. 
“너네 손수레 운전할 줄 알아?”
“.....”
“올해 꼭 해보고 싶은 거는?”
아이들이 어찌나 말을 잘 듣는지, 묻는 대로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었고, 또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말과 몸짓으로 보여주었다. 
‘야영, 타임캡슐 묻기, 컴퓨터 코딩, 떡볶이, 빵 만들기, 감자튀김, 낚시, 등산, 힙합, 연극….’
내가 다시 물었다.
“글자는 쓸 줄 알아?”
셋은 쓸 수 있다 하고, 한 아이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저는 못 쓰는데. 뚫어뻥, 이런 거 어려운데.” 한다.
“뚤허뻥도 되고 뚜러빵도 돼. 틀리면 더 멋있고 예술이잖아.”
쪽지를 한 장씩 내주고 아무렇게나 써보라 했다. 오늘 아침 눈뜨고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오기까지 보거나 듣거나 생각한 것, 아무 거나.
“시간은 딱 1분 30초. 준비, 시작!”

 

 

 아이들이 급하게 글자를 썼다.   
  아침에 눈이 뜨자 먹구름이 가득. 문을 열자 새로운 기분이 든다. 선생님이 누구신지 애들은 잘 있는지. 오늘 개학인 것이 실감이 안 간다. 봄비가 내 마음을 적신다. (태준)
  오늘 아침에 일어나 차를 타러 가다가 멍멍 강아지 소리가 났다. 그리고 소나무들이 흔들흔들 거리며 좋은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또 애들을 만났는데 5학년 애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귀여웠다. (성원)
  오늘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씻고 차를 타고 학교에 오면서 유도 생각만 하였다. 그리고 오면서 모르는 사람 집 개 두 마리를 보고서 학교에 떨리는 마음으로 왔다. (현빈)
  머리 감고 밥을 먹고 이불을 다 넣고 좀 놀다가 바로 학교를 가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입학식을 해서 좋았다. 그리고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서 좋았다. 하지만 방학이 끝났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영한)
  아이들이 써낸 글자를 읽으며 잘 된 곳, 느낌이 있는 곳을 찾아냈다.
  “태준이는 뒷말을 생략해서 그림처럼 되었고…….”
  “성원이는 남의 마음을 읽어주는 힘이 있고…….”
  “현빈이는 한 가지 생각을 끝까지 붙잡고 가서 좋아…….
  “영한이는 리듬이 있고…….”

 

  글자 쓴 종이를 서로 바꾸어서 다른 사람 글 중 마음에 드는 한 줄에 밑줄을 긋고, 밑줄 그은 문장을 칠판에 적어보라 했다.
  - 문을 열자 새로운 기분이 든다
  - 학교에 오면
  - 흔들흔들 거리며
  - 방학이 끝났다는 게 너무 아쉽다
  자기가 적은 한 줄을 천천히 읽거나 빨리 읽고, 박자를 정하고, 어디 음을 높이거나 낮추어서 노래로 만들었다. 그리고 문장 차례를 다시 정해서 하나로 합쳤다.
  “방~학이 끝났다는 게 너무 아쉽다, 문~을 열자 새로운~ 기분이 든다, 학교에 오면~, 흔들흔들 거~린다.”
  두 번 세 번 부르니 그럴 듯한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 중독성이 있어요.” 하며 인터넷에 올리자 한다. 아무렇게나 만든 노래 흥얼거리며 첫 만남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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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68년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같은 마을에서 살며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1992년 삼척 도경분교에 발령 받은 이래 작은 학교에서 줄곧 근무해 온 그는 20여 년 동안 아이들과 산과 계곡을 누비고, 모를 심어 가꾸고, 밤낚시를 다니며 작지만 확실한 교육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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