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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형진이
글_ 김서규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선생님께 비판적이고, 친구들을 끌어내리는 아이, 학급에서 중심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갑
질을 시전하는 중이다. 이런 아이는 어떻게 지도하나?


형진문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상담실을 찾아왔다. 
  “선생님, 저희 반에 정말 눈꼴신 애가 있어요. 
  모두 얘 때문에 난리예요. 선생님이 어떻게 해주실 수 있어요?” 하고 호소했다. 그 아이(형진)는 3월 초 교실에 들어오더니 학급훈 액자가 걸린 사물함 위에 자신의 명품 신발을 올려놓고 누구라도 치우면 화를 냈다. 거긴 아무도 물건을 올려놓으려 생각하지 않는 곳이었는데도 말이다. 아이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뭘 좀 아네.’ 하고 하수 취급을 했다. 5월 체육대회 때 담임선생님이 ‘내 카드를 가지고 가서 음료수와 빵 한 개씩 사 먹어라.’ 하셨을 때, 아이들은 선수로 뛰는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 비싼 것을 사고 응원하는 아이들에게는 보통 것을 샀는데, 얘는 다 알면서 아이들 사이의 불문율을 무시하고 선수용 빵과 음료수를 가지고 가면서 ‘왜들 이래? 선생님이 먹으라고 했잖아!’ 했고, 이 사건 때문에 학급 전체의 반감을 샀다. 게다가 형진이는 자기보다 못한 아이를 얕보고 괴롭혔다.
  11월에 아이들은 수능을 치르는 3학년 형들을 위해 돈을 모아서 엿이며 초콜릿을 사려고 할인마트에 갔는데, 아이들이 모은 돈을 지불하려 하자 그 아이는 전화로 엄마를 부르더니 현금은 자신이 가지고 대금은 엄마 카드로 그었다. 상당한 액수의 포인트를 챙긴 셈인데, 나중에 모든 아이들이 그 비열한 행동을 알고 화내자 ‘어차피 너희들이 안 챙길 것 같아서 내가 챙겼는데 뭔 지랄이야.’ 했다. 이 일로 형진이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분필로 형진의 뒤통수를 맞히자 그는 ‘자수해! 안 하면 고발할 거야.’ 했지만 아이들은 모른 체했고, 세 번째 분필이 뒤통수를 맞히자 벌떡 일어나 ‘너희들처럼 가정교육을 못 받은 놈들하고 못 살겠어. 모조리 학교폭력으로 고발해서 학교를 못 다니게 할 거야.’ 하고 집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학급단체톡으로 7명을 지적하면서 빨리 와서 무릎 꿇고 빌지 않으면 학교폭력위원회에 신고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상담실에 온 학생은 이런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다.


형진지도
  상담선생님이 형진을 조롱하고 분필로 모욕했다는 7명을 불렀다. 그 아이들이 와서 말했다. “선생님, 형진이는 정말 독특한 캐릭터예요. 같이 지내기 너무 힘들어요. 저희들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그 애한테 비하면 새 발의 피예요. 저희들도 할 말이 많아요. 참다못해서 그런 거예요. 학교의 벌을 받아도 형진이가 더 많이 받을걸요. 해볼 테면 해 보라지.” 했다. 담임선생님이 와서 말했다. ‘전따라고 아세요? 자신이 학급 전체를 따돌리다가 전체에게 따돌림당한 아이 말이에요. 얘는 고발왕이예요. 중학교 때부터 마음에 안 드는 아이는 흠을 잡아서 학생과에 보내서 처벌을 받게 했어요. 저도 지치네요.’ 
  부모님을 학교로 모셨더니 보통 엄마가 오시는데 놀랍게도 이번에는 아빠가 오셨다. 굳은 얼굴로 “저번에 형진이 상담하실 때 팔을 잡고 강제로 상담실로 몰아넣고 1시간 동안 야단치고 혼내셨다면서요?” 했다. 상담선생님이 “커피를 대접했고 담임선생님이 옆에 계신 가운데 부드럽게 사건만 알아본걸요.” 하자 아빠는 당황하셨다. 상담선생님은 잘 됐다고 생각하고 이제까지 형진이와 관계된 사건들을 말씀드리고 ‘함께 힘을 합쳐서 형진이를 좋은 사람으로 만듭시다.’ 하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아찔한 순간이 왔다. 자칫하면 내 자식이 피해를 당했는데 서로 화해하라니 ‘정신이 나갔소’ 하거나 ‘결국 우리 애가 성질이 더럽다는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선생님도 고발 대상입니다.’ 하면 헛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형진 아빠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형진 엄마와 헤어지고 재산도 잃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일하던 법률 사무소에 딸린 작은 단칸방에서 형진이하고 3년 동안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그 애가 뭘 배웠겠습니까? 법을 이용해서 남을 이기는 어른들의 세계를 먼저 배운 것 같네요. 저도 아이에게 ‘일류가 되어라.’, ‘때릴망정 맞고 다니지 말라.’ 했고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게 아이에게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전 얼마 전 재혼을 했습니다. 얘한테도 엄마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이제부터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게 해야겠어요.” 아빠는 돌아갔고, 다음날 서로 신고한 사건들은 다 사라졌다. 
  그 후 형진이는 상담을 받으면서 배려, 사랑, 겸손, 고운 말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눈빛이 부드럽고 볼이 장밋빛으로 변했다. 우연히 비가 많이 내리던 날 형진이를 만났더니 우산을 두 개 들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전 비 내리는 날은 우산을 두 개 들고 다니기로 했어요. 우산 없이 다니는 아이들이 있으면 주려고요.’ 상담선생님이 가만히 바라보노라니 그는 싱긋 웃으며 친구에게 우산을 쥐여 주고 같이 나갔다. 두 개의 우산이 참 정겨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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