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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익천 아동문학가 - 동시동화나무의숲 가꾸는 동화작가

글 _ 편집실

  문학의 힘은 곧 치유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아동문학이라는 장르에서는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산수국과 때죽나무, 편백과 동백 등 자연을 잉태한 숲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숲을 일러 치유의 공간이라 칭한다. 경남 고성에 있는 무량산 자락에 가면, 이러한 치유의 공간과 만날 수 있다. 

  (사)동시동화나무의숲이다. 지난 50여 년을 아동문학가로 살아온 배익천 동화작가가 2004년부터 문우들과 더불어 가꾸어가는 ‘아동문학인의 숲’이다. 2010년에는 ‘열린아동문학관’도 새로 열었다. ‘아동문학의 힘’은 가능한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 그 마음이 곧 ‘자연’이라고 말하는 배익천 동화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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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 6월. 해마다 6월 첫째 주말이면, 전국에서 활동하는 아동문학가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경남 고성군 대가면에 자리한, (사)동시동화나무의숲(이하 동동숲)이다. 이날엔 아동문학전문지 계간 ≪열린아동문학≫에서 동시와 동화 부문을 대상으로 ‘열린아동문학상’을 시상한다. 열두 번째인 올해, 동시 부문은 전병호 시인, 동화 부문은  정영혜 작가가 각각 수상했다. 11명의 아동문학인 편집위원과 함께 이 시상을 주관하는 이가 ≪열린아동문학≫ 편집인 및 편집주간을 맡은 배익천(73) 동화작가다. 


  동동숲은 무량산 자락에 8만5,950㎡로 조성되었다. 2004년 배 작가의 오랜 지우인 홍종관 발행인과 의기투합하면서다. 전국의 동시·동화작가들에게 자신의 이름표가 달린 나무 한 그루씩을 선물하자는 프로젝트를 계획한 것. 진달래길, 글샘오솔길 등 다채롭게 명명된 동동숲의 조붓한 산길에는 현재 232그루의 아동문학인 나무가 쑥쑥 자라고 있다. 편백과 동백, 맥문동이 수놓을 약 1.5㎞의 산책로 곁에는 3,300㎡의 수국원이 보랏빛 자태를 한창 뽐내는 중이다. 열린아동문학관 앞의 보리수나무에서는 빨간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간다. 또 문학관 앞 입구에는 아동문학인들이 집필실로 사용할 수 있는 ‘자정향실’이 운치 있는 모습으로 들어서 있다.


아동문학인들의 천년을 꿈꾸는 숲, 동동숲에서 지난 6월 9일 배익천 작가와 만나 아동문학가의 삶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배익천 작가와의 일문일답.


Q.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동화 부문 <달무리>라는 작품으로 등단하셨어요. 문학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아동문학, 그중에서도 동화를 쓰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어요?

  중학교 때부터 문예 담당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시를 썼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전북대학교 신문사가 주최한 전국 고교생 문예 현상모집에서는 수필 <겨울 아이들>을 썼었고요. 그때 천이두·이보영 교수님 추천으로 최고상을 받았지요. 이후 교육대학에 입학하면서 아동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어요. 당시 두 분 교수님으로부터 제 글이 아이들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는 칭찬을 듣곤 했어요. 저의 생애 첫 동화 부문 당선작은 대학교 2학년 때, 대학신문사에 응모한 <노래하는 병>이었지요. 


Q. 지금까지 단행본으로 40여 권의 책을 발간하셨어요. 작가님의 ‘동화문학’ 세계에 대해 들려주세요.

  동화는 씨앗을 심어주는 문학이지요. 요즘은 어린이가 읽는 모든 이야기글을 동화라고 하지만 저는 불만이에요. 어린이들 일상의 이야기를 쓴 것은 생활동화, 소년소설입니다. ‘동화’는 다분히 판타지 요소가 있으면서 여운이 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동화는 읽은 글이 마음속에 안개처럼, 는개(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 조금더 가는비)처럼 스며들어 그 후의 일상에서 새롭게 움트는 씨앗입니다. 예컨대 책 속의 주인공 마음이, 대사 하나가 독자의 일상 어디쯤에서 되살아나 악을 물리치거나, 남을 배려하거나, 정의로워지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금방 재미있게 읽는 작품보다는 감동적이거나 다시 읽고 싶은, 언젠가 움틀 수 있는 씨앗 하나를 묻어두는 동화를 즐겨 써 왔고, 앞으로도 쓰려고 하지요.


50여 년간 아동문학가의 길을 걸어온  배익천 작가는 항상 원고지에 글을  써오고 있다.50여 년간 아동문학가의 길을 걸어온 배익천 작가는 항상 원고지에 글을 써오고 있다.



Q. ‘아동문학의 힘’은 무엇인지요?

  글의 힘은 ‘외침’과 ‘보듬음’이에요. 외침은 자칫 잘못 해석하면 선동이 될 수 있지만, ‘보듬음’은 ‘선한 자연’이지요. ‘아동문학의 힘’은 가능한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에요. 그 마음이 곧 ‘자연’이고요. 

  저는 숲에 살면서 자연이 곧 교과서이고, 사전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고 있어요. 자연은, 숲은 모든 걸 다 가르쳐줘요. 그래서 아동문학의 힘은 어린이에게는 앞을 보고 헤쳐 나가는 지혜를, 노인에게는 뒤를 돌아보며 모자랐던 부분을 마무리할 여유를 주는, 그런 기능을 한다고 믿고 있어요. 


Q. 동화작가로서 집필 작업뿐 아니라 ≪어린이문예≫, ≪열린아동문학≫ 등 아동문예지 발간 작업도 꾸준하게 이어오고 계신데, 아동문학가로서 무엇보다 큰 보람과 성취를 느끼시겠어요.

  맞아요. 43년, 생의 절반 이상을 책 만들면서 살았어요. 《어린이문예》는 퇴직 후에도 14년간 편집을 맡았다가 지난해 후배 동시인에게 주간 자리를 물려주었어요. 《어린이문예》는 부산·경남지역 아동문학가들에게 고르게 발표의 장을 만들어 준 것이 보람이었지요. 《열린아동문학》은 ‘가장 나답게’ 잡지를 만들어 보는 것이에요. 필진들이 청탁을 받으면 생애 최고의 작품을 써 보겠다는 마음을 갖게 하고, 그들에게 최대한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지요. 아동문학가들이 《열린아동문학》에는 꼭 글이 실리길 소망하고 ‘열린아동문학상’을 반드시 받아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종이책이 사라질 때까지 《열린아동문학》이 발간되고, 이 책이 존재함으로써 ‘동동숲’이 천년을 꿈꾸는 숲이 되게 하는 것이고요.


Q. 동화가 어린이들뿐만이 아니라, 노인까지 공유할 수 있는 문학이길 꿈꾼다고도 하셨는데, 꿈이 어느 정도 구현되셨는지요?

  최근에 쓴 작품들은 대체로 노인과 죽음을 염두에 둔 글이지요. 저 나름대로는 ‘노인문학’이란 이름으로요. 사람이 늙으면 다시 어린이가 된다는 말이 있지요? 바꾸어 말하면, 어린이나 노인은 같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점점 노인 인구가 많아지는 요즘, 노인들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자는 의도도 있고요.


Q. 아동문학가, 동화작가가 되기 위해 학생들은 어떤 역량을 키워가야 할까요? 아동문학가 지망생들에게 조언 좀 해주세요.

  ‘동화작가’는 젊은이들이 당장 뛰어들어야 하는 분야가 아니라 꿈꾸어야 할 분야 같아요. 그 이유는 글재주보다는 삶의 깊이와 인생의 참맛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유명 시인과 소설가가 말년에는 동화를 써줬으면 좋겠어요. 톨스토이가 그랬고, 이청준이 그랬듯이요.

  저는 고향이 경북 영양인데요,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것을 참 고맙게 생각해요. 그곳에서 본 자연이 제 동화의 원천이니까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 그러니까 식물이나 동물, 심지어 돌이나 나무막대기 같은 무생물까지도 저마다 삶이 있지요. 그들의 삶과 인간의 삶을 씨줄과 날줄 삼아 엮으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동화가 되지요. 

  ‘호연지기’란 사자성어가 있어요. ‘천지간에 가득 차 있는 넓고 큰 기운’이라고 풀이하는데, 바꾸어 말하면 자연 속에 가득 차 있는 넓고 큰 기운이지요. 항상 자연을 가까이하고, 그것의 이치를 깨달으면 깊이 있는 동화를 쓸 수 있지요.


Q. 아동문학가로서 50여 년이신데요, 앞으로 어떤 또 다른 꿈을 꾸고 계시나요?

  이제까지 숲에서 강의한 강의료는 대부분 재단에 기부하고, 언젠가 사후에 내 책의 모든 판권도 기부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명문화해야겠네요. 단, 《열린아동문학》과 ‘열린아동문학상’이 계속 발행되고 시상되는 조건으로요. 이제 나이도 70이 넘었습니다. 어린 동백을 심으면서 그 나무가 꽃 피울 때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고 욕심도 부려봅니다. 

  앞으로 10년입니다. 그 10년이 제대로 주어진다면, 이 숲을 소재로 한 멋진 단편을 쓰고,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이제까지 쓴 단편 중에서 간추려 크고 작은 책으로 만들어 우리 동동숲에서만 파는 ‘영원한 책’을 만들어 그 책과 함께 이 숲에서 영원해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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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BOX : 아동문학가로 등단하려면…

  아동문학 작가의 등단은 신문사에서 매년 개최하는 신춘문예 공모를 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일간지 외에도 월간지 및 계간 등 각종 문예지에 동화나 동시를 써서 등단, 작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동문학 글을 쓰고, 직접 자비로 책을 펴낸 뒤 작가로서 활동을 이어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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