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신환희 수어통역사 - 농인의 고유언어 ‘한국수어’로 정보를 알리는 사람들

글 _ 편집실


  수어는 손과 미세한 얼굴표정, 몸의 움직임 등에 의해 표현되고, 시각으로 수용되는 시각언어다. 손의 모양, 위치, 몸의 방향, 움직임, 눈의 감김의 정도, 입술이 벌어지는 정도, 볼에 바람이 들어가는 정도 등에 따라서도 의미가 다르게 전달된다. 2016년 2월,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한국수어’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법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한국어와는 다른, 독자적인 어휘와 문법체계를 지닌 한국수어. 올해로 15년 경력의 신환희 수어통역사를 만나 한국수어, 그리고 수어통역사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사 이미지


  2016년 2월,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한국수어(手語·수화언어)는 또 하나의 국어로 공인되었다.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聾人)의 고유한 언어임을 공식화한 것이다.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을 계기로 정부는 2017년 9월 ‘제1차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을 마련했다. 한국수어 능력향상 및 보급, 관련 제도의 안정적 운영기반 마련, 한국수어 사용환경 개선을 위한 기반 구축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2019년부터는 수어 구사 능력을 평가하는 ‘한국수어능력 검정시험’ 제도도 새로 도입됐다. 


  2019년부터는 정부의 주요 정책발표나 재난 상황 브리핑에 수어통역사가 동석하여 수어 통역을 제공해 오고 있다. 수어통역사는 농인과 청인(聽人)의 의사소통 상황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계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올 1월에는 「한국수화언어법」 일부 조항(제16조 3항)이 신설되면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부의 중요 정책발표 시 수어 통역 제공을 법적으로 명시하였다. 


  수어통역사의 활동 초기에는 주로 일상생활 및 사회복지 차원의 범주에 제한돼 있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점차 전문직업인으로서 다양한 영역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어왔다. 국내의 경우 수어통역사 자격을 취득하면 교육, 의료, 법률, 미디어, 직업(취업 알선 등), 의식(종교, 결혼식 등 각종 행사), 민원, 수화통역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다. 현재 전국 광역시도에는 수어교육원이 개설돼 있으며, 시군구에 200여 개의 수화통역센터가 운영 중이다.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신환희 수어통역사는 2020년 4월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교육부, 행전안전부 등 코로나19 상황 브리핑 및 정부 부처의 브리핑에 참여해 왔다. 


다음은 신환희 통역사와의 일문일답.


수어통역사가 된 계기는?

  대학교 4학년 때 교양수업에서 처음 접했던 수어가 인연이 됐다. 교양수업 담당 교수님이 교회의 농인부서 목사님이셔서 수업 과제로 교회에 가서 농인들을 만나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농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이때 수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니며 수어를 배웠다. 교회에서 간단한 통역과 종종 주변 지인들의 일상생활 통역을 하였다. 대학 졸업 후 1년 반 동안 온전히 수어에만 몰입하여 열심히 준비한 끝에 2007년 통역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15년 동안 여러 학회, 세미나 등에서 통역을 맡기도 하고, 나사렛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강의 통역도 한다. 또 교회에서 통역도 맡고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브리핑을 통역 중인 신환희 수어통역사(교육부TV 화면 캡처)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브리핑을 통역 중인 신환희 수어통역사(교육부TV 화면 캡처)



정부의 브리핑 방송통역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

  2020년 4월부터 코로나19 브리핑에 참여하면서 교육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등 브리핑 통역을 해왔다. 코로나19 브리핑 방송 이후로 수어통역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그 이전에는 수어통역사가 브리퍼 바로 옆에 서서 통역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재난 상황을 농인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큰 변화의 계기가 된 것 같다.


지난 1월 「한국수화언어법」 일부 조항이 개정되어 수어통역사의 미디어에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는데?

  정부의 중요 정책발표를 브리핑할 때 수어의 실시간 동시통역을 법제화한 건 매우 반가운 이슈다. 하지만 농인들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보 접근을 위해서는 여전히 미진한 측면이 있다. 현재로서는 수어통역의 방송 편성비율이 5% 정도에 머물러 있다. 이 비율을 좀 더 끌어 올려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전 프로그램의 수어 통역이 실현되어야 한다. 어린이들이 주로 보는 애니메이션의 수어방송 편성이 심야 시간대에 배치되어 있다. 그 프로그램을 즐기는 농아동이 있다면, 잠자는 아이를 깨워서 시청하게 해야 한다. 


  또 방송화면 하단에 동그란 창으로 송출되는 수어 통역 장면은 청인이 들으면 ‘1’ 정도의 볼륨이라고 보면 된다. 잘 들을 수 있는 청인들처럼, 농인들도 동일한 조건으로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농인 시청자들을 위한 수어통역은 방송사의 편의에 따라 수어를 마치지도 않았는데 통역창이 닫히거나, 통역사의 신체 일부가 가려질 때도 있다. 법에 저촉되지 않으려는 형식적인 제공이 아닌, 농인 시청자들을 위한 진정한 수어통역 제공이 되길 바란다. 


수어 통역 현장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점은?

  수어통역사는 언어적 소질, 즉 한국어와 한국수어를 모두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동시통역일 때는 고도의 집중력과 기억력, 신속한 파악과 직관력 등이 필요하다. 수어통역은 체력 소모가 크고, 초집중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1시간 이상 소요될 때는 15~20분마다 대기하고 있던 동료와 교대하게 된다. 


  또 다른 언어의 통역과 마찬가지로 수어 통역도 통역내용 관련 사전 배경 지식이 매우 중요하다. 작년 말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누리호 발사조사위원회 최종 조사결과 발표’ 브리핑 때 수어통역을 했다. 통역 전날 늦은 오후에 보도자료를 받았는데, 로켓 발사체의 비행경로, 산화제탱크, 헬륨탱크, 연료통, 인공위성 관련 과학기술 용어들이 모두 생소했다. 통역하려면 이런 어휘를 바로 눈앞에서 영상을 보듯 시각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누리호 발사체가 분리되는 영상’ 및 각 단어에 해당하는 관련 실제 이미지 및 영상자료를 최대한 찾아보았다. 그 이후 수어법에 맞게 표현을 정하고, 밤잠을 설치며 말을 듣고 빠르고 자연스럽게 수어가 나오도록 연습하고 갔다. 보통 농인도 한국 사람이니 한국어를 대충 손으로 표현하는 것을 통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물체의 크기, 모양, 속도, 위치, 방향을 각각 수어에 맞는 눈, 코, 입의 모양 등 수어법에 맞게 번역하여 표현해야 한다. 


수어통역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나와 농인이 눈을 마주보며 서로 통역에 몰입하고 청인과 농인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청인이 느끼는 것을, 그곳에 있는 농인도 함께 느끼게 될 때다. 학교에서 강의 통역을 하면서, 자주 목격하던 순간이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도 수어통역, 문자통역 서비스의 존재조차 모르던 내성적인 신입생이 수어를 배우면서 표정부터 밝아지기 시작한다. 학교 안팎으로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친구들과 교류를 통해 자신감이 넘치며 사교적인 학생으로 변해간다. 그 변화하는 성장 과정에서 수어통역사로서 함께 할 수 있어 보람과 감사를 느낀다. 


농인들을 위해 제도적으로 개선을 바라는 사항이 더 있다면?

  농인 구성원을 둔 가정의 경우, 청인 부모 밑에서의 농인 자녀, 농인 부모 밑에서의 청인 자녀일 확률은 보통 90%가 넘는다. 농인 부모 대 농인 자녀인 가족 구성원은 10% 정도다. 농문화의 정체성이 온전히 정립·계승되지 못하고 농인이 청인화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럴 경우, 농아동의 청인 부모가 기대하는 선택지는 대개 인공와우 수술, 혹은 보청기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여기에 수화언어라는 새로운 선택지도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이제는 청인들도 농인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농문화를 배우고 기본적인 수어 정도는 익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어통역사의 직업인으로서의 미래전망은?

  현재 한국수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고, 앞으로 농인이 수어로 청인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한다면 수어통역사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통역 분야도 전문적으로 더 세분화되어 전문직으로서 지금보다 더욱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

TIP BOX


한국수어 통역 관련 자격증 취득


기사 이미지

•자격증 시험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시행되면서 정부는 2017년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을 수립, 한국수어능력검정시험 제도를 도입했으며, 2019년부터 한국생산성본부에서 ‘한국수어교육능력 검정시험’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국가공인 민간자격증으로 (사)한국농아인협회 주관의 ‘수어통역사 자격시험’이 시행되고 있다. 

[참고] 국립국어원·한국생산성본부 누리집, (사)한국농아인협회 누리집


•관련학과

나사렛대학교(학부-수어통역교육 전공/재활복지대학원_석사-수어교원학)와 한국복지대학교(한국수어교원과) 강남대학교 대학원(석사-수화언어통번역학과), 총신대학교 대학원(사회복지_한국수어교원 전공)에 수어 관련학과가 개설돼 있다.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