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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전문가 이창길 개항로 프로젝트 대표 - 발길 끊긴 개항로, ‘사람’을 담은 도시로 되살아나다

글 _ 양지선 기자


  시간이 흐르면 무엇이든 낡아지기 마련이다. 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도시가 그 빛을 잃고 낙후되기도 한다. 도시재생전문가는 이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진 도시를 다시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으로, 또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한다. 이창길 개항로 프로젝트 대표는 제 역할이 끝난 건물들만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인천 개항로에 다시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 ‘핫 플레이스’로 다시 뜨고 있다는 개항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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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이미지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다. 기사 이미지



  손님이 찾지 않아 문을 닫은 산부인과 건물은 SNS에서 인기 있는 카페가 되고, 방치된 낡은 건물로 가득 찼던 거리에 현대적인 감성의 맛집들이 속속 들어섰다. 인천 중구에 있는 개항로 얘기다. 개항로는 본래 개항의 역사가 시작된 시기부터 100년이 넘도록 번화한 인천의 중심지였지만, 개발에 밀려 쇠락한 도시에는 사람들이 점점 떠나기 시작해 최근에는 몇몇 노포만 남게 됐다. 낙후된 도시에 다시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건 2017년 시작된 개항로 프로젝트가 계기였다. 이창길 대표는 팀원들과 함께 개항로에 카페, 맥줏집, 음식점 등 15개의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오래된 건물을 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그 속의 내용만 가장 최신의 것으로 채웠다. 덕분에 조용하던 도시에 새로운 활기가 넘치게 됐다. 


  민간 주도의 도시재생은 쉽지 않다. 특히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이창길 대표는 상권이 없던 시절 텅 빈 거리의 건물들을 매입했다. 지역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방법이었다. 개항로 프로젝트를 통해 15개의 가게가 문을 연 이후, 4년간 50개 팀이 새롭게 들어섰다. 상권의 형성이었다.


  초·중·고를 모두 인천에서 나온 이창길 대표는 역사를 가진 개항로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씩 쇠퇴해가는 도시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 그는 직접 도시를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트렌디한 것,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특징은 바로 노포와의 협업이다. 일거리를 잃은 장인들, 그들이 살아야 도시도 살아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쫄면을 만든 제면소와 협업해 국수집을 열고, 인천에서만 먹을 수 있는 ‘개항로 맥주’의 글씨체는 60년 이상 목간판을 제작해온 어르신에게 부탁했다. 


  ‘도시재생’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라고 얘기한 이창길 대표는 “옛것을 지키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건 참 매력 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24시간 내내 개항로 프로젝트와 관련된 생각을 이어간다는 그에게 도시재생은 직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하나,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소개한다면?_________

제 역할이 끝난 건물들이 많은 인천 개항로에 2021년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집어넣는 활동을 하고 있다.

  초·중·고를 모두 인천에서 나왔는데, 그 당시 개항로는 명동보다 더 번화한 곳이었다. 극장도 무려 19곳이나 있을 정도였다. 그랬던 곳이 낙후돼버린 모습을 보니 새롭게 살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인천이란 도시는 런던, 뉴욕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런던과 뉴욕은 산업혁명 이후 산업화·도시화가 이뤄지고 도시가 잘 재생됐다. 방치된 발전소와 공장은 이제 전 세계인이 찾는 유명 갤러리, 카페로 변신했다.  인천도 미래에는 더 멋진 도시가 될 거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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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찾지 않아  문을 닫은 산부인과  건물이 SNS에서  인기 있는 카페로  변신했다.(사진 1,2) 손님이 찾지 않아 문을 닫은 산부인과 건물이 SNS에서 인기 있는 카페로 변신했다.



둘, 개항로를 살리기 위한 전략은 무엇이었나?_________

  사람들이 개항로에 호기심으로 한 번은 와도, 여러 번 방문할 것 같진 않았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도 베낄 수도 없는, 이곳만의 고유한 가치가 필요했다. 그게 시간과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개항로에는 노포가 많다. 급성장한 도시에서 노포는 사라지지만, 상권이 쇠락한 이곳에는 40년 이상 된 노포가 60곳 이상 남아있다. 이것이 바로 자원이었다. 지역적 자원을 지키면서,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베낄 수 없는 강점이 생긴 거다.


  개항로라는 지역성과 브랜딩을 살린 ‘개항로 맥주’도 야심차게 준비했다. 개항로 맥주의 글씨체는 60년 이상 한 자리에서 목간판을 만드신 전원공예사 사장님의 작품이다. 한 달에 400개씩 목간판을 만드시던 분인데, 이제는 한 달에 한 건 정도 일이 들어온다고 하신다. 맥주 포스터 모델은 페인트 가게 사장님이다. 원래 개항로에서 영화 간판을 그렸던 분인데, 2002년을 마지막으로 직업이 사라졌다. 의도치 않게 노포 어르신들이 지역재생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이제 단순히 상생의 차원을 넘어 그분들도 개항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응원해주신다. 



셋, 도시재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_________

  한국에서 경영학부를 졸업하고, 영국의 노팅엄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사회학 석사를 하며 유학 생활을 했다. 그때 만난 영국 친구들과 동네를 거닐다 보면 ‘저 집은 몇백 년 된 집이다’ ‘우리 할머니가 살던 곳이다’ 얘기하던 게 멋있고 부러웠다. 왜 우리나라엔 그런 오래된 역사를 지닌 건물을 찾기 힘들까? 무조건 새것이 좋다고 하지 않나. 


  부모님이 인천분이신데, 은퇴 후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가셨다. 거기 있던 귤 창고를 부수고 집으로 개조했다. 따지고 보면 그게 첫 시작이었다. 이후 제주도에서 150년 된 집을 리모델링하고, 독채 펜션 모델을 만들었다. 부산에서는 100년이 넘은 병원 건물을 카페로 만들기도 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역사를 지키면서 그 속에서 요즘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게 매력 있다고 생각했다.


넷,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_________

  인천 출신들에게는 서울로 가야 성공한다는 압박감이 있다(웃음). 나이를 먹고 보니 이제야 인천의 매력이 보이는 거다. 개항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SNS 메시지로 인천이 고향인 분들의 격려와 응원을 많이 받는데, 한 대학생의 메시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남자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개항로에 놀러 오게 됐는데, 남자친구가 너무 좋아해서 처음으로 고향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는 거다. 그때 참 보람을 많이 느꼈다. 앞으로 인천이 고향인 친구들에게 꼭 서울에 가지 않아도 잘나가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다섯, 도시재생전문가에게 필요한 역량은?_________

관찰력이 필요한데, 도시보다 사람을 더 잘 관찰해야 한다. 도시는 껍데기일 뿐이다. 현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뭘 즐겨 하는지 살펴야 한다. 도시재생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래된 도시를 보수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 안에 사람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넣는 것이 핵심이다. 개항로에도 유명한 산부인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해 버려진 건물이 됐다. 이곳을 개조해 카페로 꾸미니 사람들이 다시 찾기 시작했다.

도시재생의 안 좋은 예 중 하나가 벽화다. 뜬금없이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아무 고민 없이 이제껏 해온 대로 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나.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그 외형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 새로운 사람들을 끌기 위한 것 등 결국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다.



마지막, 도시재생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_________

전국에 있는 모든 도시들은 시간이 흐르면 전부 재생이 필요하게 된다. 관련 직업 전망도 무척 밝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의 수준은 높아졌고, 안목과 취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창의력이 굉장히 필요한 일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콘텐츠에 대한 끊임없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개항로에서도 앞으로 지역의 색깔이 가득 묻어나는 미식투어와 편집숍, 호텔 등을 준비하고 있다. 24시간 내내 이뤄지는 모든 생각과 경험을 도시재생과 연결 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많이 읽고, 여러 도시로 여행도 많이 다녀봐야 한다. 청소년들에게는 <밀레니얼의 반격>이란 책을 추천하고 싶다. 요즘 트렌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왜 로컬이 주목받고 있는지 등을 쉽고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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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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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1 _______준비 과정

  도시재생전문가는 도시계획과 건축공학에 관한 지식을 함께 배워야 하는 직업으로 대학의 도시계획학과, 도시공학과, 도시행정학과, 건축학과, 건축공학과, 토목공학과 등에 진학하면 유리하다. 주요 대학의 산학협력단이나 지방정부에서 만든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도 도시재생대학과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대학의 평생학습교육원에서는 도시재생전문가 양성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관련 국가 자격으로 도시계획기사/기술사, 건축기사, 건축사, 공인 민간 자격으로 농어촌개발 컨설턴트 등이 있다. 


TIP. 2  _______적성 및 흥미

  기존의 도시 공간을 새로운 모습으로 디자인하려면 공간을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각 도시의 특성과 공간적 위치를 고려하여 새롭고 편리한 도시를 계획하고 제시할 수 있으려면 창의력과 공간지각력이 필요하다. 도시의 지형과 건축물, 도시계획 관련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깊게 탐구하는 과정을 즐기는 성향이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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