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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다혼디배움학교 ‘납읍초등학교’ 마을이 품은 학교, ‘온 마을이 교실’
글_ 이순이 본지 편집장




납읍초(교장 신금이)는 제주형 자율학교인 아이좋은학교(2009~2014)를 6년간 운영했으며 2015년부터는 다혼디배움학교로 지정되어 4년째 제주형 혁신교육을 이끌고 있다. 다혼디는 ‘다함께’를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다혼디배움학교는 다함께 배움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납읍초는 수업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 마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 주민, 교육에 뜻을 모아 학교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준 마을협동조합이 공존하는 마을이 품은 학교, ‘온 마을이 교실’인 그런 학교다.

. 6학년 선배가 들려주는 동화책에 풍덩 빠진 1학년 아이들

전교생이 책 속에 풍덩 빠졌던 ‘책 축제의 날’ 
  제주 납읍초 1학년 교실,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의 시선이 6학년 양고은 학생이 들려주는 한 권의 책에 꽂혔다. 책장을 넘기던 고은 학생이 “기분이 어때?”라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건네듯 책을 읽는다. 소심하게 움츠려 있는 침팬지가 여러 상황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 앤서니 브라운의 『기분을 말해봐』라는 책이다. 장난감이 다 싫을 만큼 재미없다가 폴짝폴짝 뛰고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망울로 뭐든지 궁금하다는 주인공의 여러 감정이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책을 바라보는 납읍초 1학년 아이들과 꼭 닮아 있다.  
  아이들은 ‘즐거워’ ‘졸려’ ‘기뻐’ ‘힘들어’ 등 각자 느끼는 기분을 에코백에 담았다. 선배들은 무엇을 표현해야 할지 난감해 하는 동생들에게 기분을 묻고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이야기를 들어주며 솔직한 감정 표현을 이끌어낸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책 속의 주인공을 클레이로 표현하는 활동이 한창이다. 『정글식당』을 읽었다는 정연지(2학년) 학생은 “정글을 없애고 그 위에 식당을 지었는데, 식당에 풀들이 나기 시작하면서 정글식당이 되었다.”며 “표지 속 토끼의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토끼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전교생이 책 속에 ‘풍덩’ 빠졌던 10월 26일은 납읍초 ‘책 축제의 날’. 올해 3년째 운영하는 책 축제는 6학년이 행사를 기획하고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조금 특별한 행사다. 에코백 만들기, 책 읽고 클레이로 주인공 만들기, 페이스페인팅, 독서골든벨 등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했고, 학생들이 모든 진행을 맡았다. 진수민(6학년) 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동생들에게 읽어줄 책을 선정하는 일에서부터 학년별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할지 친구들과 많은 회의를 거쳐 결정했다.”며 “행사를 준비하면서 보람도 많았고 특히 친구들과 협동심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만든 에코백을 들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하는 교육공동체
  납읍초는 제주형 자율학교인 아이좋은학교(2009~2014)를 6년간 운영했으며 2015년부터는 다혼디배움학교로 지정되어 4년째 제주형 혁신교육을 이끌고 있다. 다혼디는 ‘다함께’를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다혼디배움학교는 다함께 배움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책 축제처럼 학생들의 자발성이 돋보이는 학생 중심 교육활동은 ‘함께 성장하며 제 빛깔을 찾아가는 교육공동체’를 지향하는 학교의 소중한 결실이기도 하다. 
  신금이 교장은 “아이들이 밝고 거침이 없는 편”이라며 “교육공동체의 소통을 중시하면서 교사들의 전문성을 키워온 노력의 결실”이라고 설 명한다. 교사, 학생, 학부모 다모임을 통해 소통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선생님들은 ‘늘배움 동아리’를 통해 끊임없이 교원의 전문성을 연마하고 있다. 
  납읍초가 다혼디배움학교를 운영하면서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수업혁신’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교육적 성과보다는 교육의 본질인 ‘배움’에 한 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학생을 바라보는 관점도 ‘가르침의 대상’에서 ‘함께하는 동반자’로 바뀌었다. 수업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학생들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교육과정에 담아냈다. 마지막엔 함께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연구했다. 교학상장의 의미를 일깨우는 대목이다. 
  학교는 담임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 학년 선생님들이 모여 수업연구를 정기적으로 해오고 있다. 
  차지연(연구부장) 교사는 “늘배움 동아리를 통해서 전 학년 교사들이 모여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데 따른 문제점이나 고민을 해소하고 있다.”며 “수업을 개선하기 위해 계획단계에서부터 협의하고, 참관 후에는 개선해야 할 점까지 이야기를 나눈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며 점차 학생 중심의 교육활동이 확대되고 있다.
신금이 교장은 “제주도 특성상 다혼디배움학교는 소규모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며 “애월읍에 7개의 다혼디배움학교가 있는데, 연합하여 학교 밖 동학년 모임, 학교 밖 연구부장 협의회 등을 운영, 의견을 교환하며 지역특성을 살린 교육을 해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책 축제의 날 ‘독서골든벨’

배움이 즐거운 아이들. 만나는 아이들마다 웃음꽃이 피었다. 

 애월협동조합 ‘이음’ 해금교실과 도서관


마을의 자산, 금산공원은 우리의 놀이터
  한편, 학교를 둘러싼 자원은 학생들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단층짜리 교사(僑舍)를 등지고 운동장을 향해 서면, 웅장한 숲이 펼쳐진다. 숲이 아름다워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금산공원이다. 이 공원은 마을에서 조성한 만여 평의 인공림으로 식물의 종류도 많고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납읍초는 이곳에서 ECHO 교육을 교육과정에 반영, 환경을 주제로 한 교과연계 수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우리 마을 탐구활동을 통해 금산공원의 식물을 배우기도 한다. 금산공원에서 시화전을 열고, 산책하며 자연의 향기에 흠뻑 취하는 경험은 이곳 학생들만의 특권이다. 산책하다 만나는 학생들의 시화는 뜻밖의 선물이다. 

‘실비가 새끼를 낳다니 / 아히히! 너무 귀엽다 / 밥을 먹잖아 / 나랑 얘기하는 것 같은 망아지 / 이름은 뭘로 할까? / 아 실아!’ (망아지/ 3학년 이나원 작품) 

  갓 태어난 망아지를 관찰하며 쓴 시를 읊자니 저절로 미소가 차오른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학생 중심의 우수한 교육활동이 맞물리면서 한 때 분교장으로 격하되었던 학교가 지금은 꾸준한 학생 수 증가로 이어져 현재 138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학생 수가 증가한데는 마을의 힘도 크게 작용했다. 신 교장은 “138명 중 납읍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18명으로 나머지는 제주 이주 열풍으로 정착한 경우와 마을 주민들이 조성한 공동주택의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마을에 학교가 있어야 마을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마을 주민들이 모금을 통해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 ‘금산학교마을’을 건설한 것. 3차례에 걸쳐 공동주택을 완성했으며 55가구가 거주 중이다. 공동주택은 다자녀가구에 우선권이 있으며,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어 학교를 살리는데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현재 76명의 학생이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학교 밖의 또 다른 교실 ‘애월협동조합’
  그밖에도 마을 주민들은 애월협동조합 ‘이음’을 조성해 학생들의 다양성 교육을 지원하고 나섰다. 안재홍 대표는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좀 더 다양해져야 하는데, 공교육 틀 안에서는 단기간에 변화를 이뤄내기 어렵기에 대안으로 마을교육협동조합을 생각하게 됐다.”며 “이음을 아이들에게는 놀이터, 어른에게는 소통과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설명한다.   
  이음의 첫 활동은 지난해 여름방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면철거 작업으로 여름방학 기간에 납읍초의 방과후 활동이 전면 중단되었다. 학교교육이 전부였던 아이들이기에 학교 측에서 이음에 바이올린과 플롯 수업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던 것. 제대로 된 공간을 갖추지 못했던 이음은 납읍리사무소의 공간을 빌려 첫 수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제주지역균형발전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단층 건물을 마련했고, 이후 70여 명의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2층에 도서관을 갖추게 되었다. 
  학교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오후 3시가 되면 하나둘 책을 읽으러 이음으로 몰려든다. 4시부터는 1층에서 요일별로 방송댄스, 뮤지컬, 가야금, 해금, 바둑, 연극놀이가 진행된다. 늦은 저녁에는 학부모를 위한 기타교실과 마을 주민을 위한 요가수업도 병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우쿨렐레 수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학교와 이음은 보이지 않는 끈처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이음에서 해오던 활동이 완성되면 학교에서는 무대를 만들어 발표회를 연다. 신금이 교장은 “이음에서는 학교에서 개설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을 개설해 우리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이음에 우쿨렐레반이 만들어지면 현재 가르칠 재원이 부족해 학교에서 잠자는 우쿨렐레 20대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이음과 긴밀하게 상호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한다.
  수업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 마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 주민, 교육에 뜻을 모아 학교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준 애월협동조합이 있는 납읍초등학교. 마을이 품은 학교, ‘온 마을이 교실’이라는 이야기는 이런 때 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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