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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구멍에도 볕이 드는 해

글_ 강응천 도서출판 문사철 대표(역사저술가)


재앙을 미리 감지하는 쥐처럼 항상 조심하고 부지런히 일하면,
경자년은 “쥐구멍에도 볕이 드는” 상서로운 해가 될 것이다.



  쥐는 인간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은 동물이다. 병균을 옮기고 음식을 훔치며 이간질을 한다. “나라에는 도둑이 있고 집안에는 쥐가 있다.”라는 속담이 있는가 하면 ‘양상군자(梁上君子)’라는 사자성어도 있다. 양상군자란 들보 위에 숨어 있는 도둑을 뜻하므로 쥐를 가리킨다. 서양에서도 쥐를 뜻하는 영어 ‘rat’는 비겁한 자, 배신자, 스파이, 경찰 끄나풀 따위의 부정적인 뜻으로 널리 쓰인다. 이처럼 혐오스러운 동물로 여겨지다 보니 손톱을 깎아서 함부로 버리면 쥐가 주워 먹고 그 손톱 주인으로 둔갑한다는 금기도 전한다.

  그러나 쥐가 항상 부정적인 이미지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20년은 경자년(庚子年)인데 경은 흰색에 해당한다고 한다. 흰쥐는 애완용으로 사랑받고 있으니 쥐의 해라고 지레 꺼림칙할 필요는 없다. 이솝우화에는 사자를 구하는 고마운 생쥐 이야기도 나오고, 고양이 톰을 골탕 먹이는 제리 역시 결코 밉지 않은 쥐다.

  전통 시대에 쥐가 가진 긍정적 이미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다산성이다. 쥐는 12지신 가운데 으뜸으로 ‘자(子)’로 표기된다. 이 글자는 자식, 새끼를 의미한다. 쥐는 종에 따라 다르지만 1년에 3~4회, 1회당 6~9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이미 3000만 년 전 처음 등장한 쥐는 오늘날 220속 1800여 종에 달하는 다양성을 자랑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류의 1/3은 쥐라고 한다.

  다산성과 연관된 쥐의 또 다른 긍정적 이미지는 근면성이다. 쥐띠 해에 나는 사람은 부지런하다는 속설도 있다. 자식을 많이 낳으니까 부지런해야 하고 부지런한 만큼 저장해 놓은 재물도 많다. 한 설화에 따르면 옛날에 한 도둑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코에서 팥알만 한 생쥐가 기어 나왔다. 바느질하던 아내가 잣대와 다리미질 판으로 생쥐에게 길을 터 주었다. 그랬더니 생쥐는 남편이 몰래 감추어둔 황금더미 속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쥐가 이처럼 부(富)를 상징하게 된 것과 관련된 창세 설화도 있다. 함경도에 전하는 <창세가>라는 무가에는 미륵과 쥐가 등장한다. 미륵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쥐에게 물과 불의 근원을 물었다. 쥐가 그것을 알려주면 무엇을 주겠느냐고 묻자 미륵은 이 세상의 모든 쌀뒤주를 차지할 권리를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물과 불을 사용할 수 있었고 쥐는 인간의 쌀을 제 것처럼 챙기게 되었다.


다산성·근면성·부를 상징하는 쥐

  쥐는 이처럼 부지런하고 재물을 잘 모으기 때문에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곤궁할 일이 없다고 한다. 물론 그런 속설만 믿고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무슨 재난을 당할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쥐는 인생에 잠복해 있는 재앙을 경계하는 뜻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해인사 법당 앞 돌기둥에는 올라가는 흰쥐와 내려가는 검은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코끼리에 쫓겨 달아나다가 우물 안쪽으로 뻗은 나무뿌리에 매달렸다. 코끼리는 위에서 으르렁거리는데 아래에서는 용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벌까지 날아와 그 사람을 마구 쏘아대는데, 흰쥐와 검은쥐가 나타나 나무뿌리를 갉아 먹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 용, 벌 따위는 인생의 온갖 위기를 상징하고, 흰쥐와 검은쥐는 낮과 밤, 즉 거침없이 흐르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처럼 유수 같이 흐르는 시간을 상징하는 흰쥐와 검은쥐는 유명 사찰에서 파는 지혜동자상과 자비동자상에도 등장한다. 자비동자상은 무릎과 어깨에 흰쥐와 검은쥐를 올려놓은 채 잠들어 있고, 지혜동자상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경전을 보고 있다. 흰쥐와 검은쥐는 경전이 놓인 상의 위아래에서 지혜동자상을 쳐다보고 있다. 시간은 항상 당신 곁에서 흐르고 있으니 자비동자처럼 잠들지 말고 지혜동자처럼 깨어 있으라는 뜻이 두 동자상에 깃들어 있다.

  쥐는 시간을 경계할 뿐 아니라 실제적인 위험을 미리 알아차릴 줄 아는 동물이다. 옛날에는 집안에 쥐가 보이지 않으면 불길한 조짐으로 여겨 집 안팎을 단속했다. 쥐, 뱀이 지진이나 화산 폭발을 미리 감지한다는 현대 과학의 연구와 일맥상통하는 습속이다. 해마다 정월에 처음 맞이하는 쥐날을 상자일(上子日)이라 한다. 이날은 모든 것을 경계하고 근신하는 금기의 날로 여겨져 왔다. 재앙을 미리 감지하는 쥐처럼 항상 조심하고 부지런히 일하면, 경자년은 “쥐구멍에도 볕이 드는” 상서로운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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