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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소비자들, “나는 소비로 세상을 바꾼다”

글 _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요즘 소비자들은 문제 있는 제품과 브랜드에 불매운동 등 적극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의견과 가치를 표출하고 있다. 제품에 대한 불만이나 기만적 할인 등에 대한 대응을 넘어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과 횡포, 가격 담합, 허위과장 광고, 이익에만 급급하고 사회적 역할을 하지 않는 기업 등에 대해서도 소비자들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기업, 고객과 동행하지 않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외면받은 사례가 넘쳐나고 있다. 


  최근 불매운동 사례를 살펴보면, A 제약회사의 ‘성차별 면접 논란’으로 불매운동이 벌어진 사건이 있었다. “여자들은 군대 안 가니 남자보다 월급 적게 받는 것에 동의하냐”는 질문을 받은 여성 지원자가 회사 측에 진정성 있는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일이 벌어졌고, 온라인에선 해당 기업의 상품들을 공유하며 불매하는 행동이 취해진 것이다. 


  앞서 2019년에는 당시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가 한국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취하면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매우 거세게 이어졌다. 온라인상에서는 일본 기업 목록이 배포되었고, 현재까지도 ‘노재팬’ 불매운동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부로 규정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직함이 ‘미쓰비시 일본 법률 연구 교수’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미쓰비시에 대한 불매운동 움직임도 있었다. 


  역사 왜곡 드라마의 폐지도 큰 이슈였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즉각 방영 중지를 요청한다는 청원이 올라왔고, 게시 이틀 만에 약 20여만 명의 동의를 얻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동북공정으로 소비자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이 드라마 2회분 방영 내용이 문제가 됐다. 충녕대군이 서양 구마 사제를 대접하는 장면에서 월병, 피단(삭힌 오리알), 중국식 만두가 등장했고, 중국풍 의상을 입은 장면이 논란이 되었다. 태종과 양녕대군, 충녕대군에 대한 묘사도 실제 기록과 거리가 있는 역사 왜곡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소비자들은 이 드라마 관련 광고 기업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시작하자는 움직임을 보였고, 광고주들과 지방자치단체 등도 제작 지원을 철회하자 결국 드라마는 방영 2회 만에 폐지되었다.


온라인에서 시작되는 불매운동

  요즘 대부분의 불매운동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 서로 소통하는 공간을 통해 시작된다. 온라인상에서 소비자들의 공분과 질타가 한데 모여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불매운동을 이끌고 있다. 단순히 불매운동을 넘어 집단 손해배상 소송과 시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사소한 불만이 공론화를 이끌고 다소 과격한 형태로 사태가 확산되는 것이 무조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소비자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다수다. 최근 기업들도 소비자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고 있으며, 좀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성 및 발전의 기회로 삼고 있다.


  더 나아가 요즘 기업의 환경, 사회적 책임, 그리고 투명한 지배구조(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연금기금 같은 거대 투자자들까지 ESG 경영을 요구하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앞으로 투자를 결정할 때 ESG를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겠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행동 결과 기업은 환경이나 인권, 노동에 대한 위반 사항이 없도록 노력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시장참여 행동은 ‘사 주기 운동’으로도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아직은 구매운동보다 불매운동이 소비자 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변화의 움직임은 뚜렷하다.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자는 운동이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서울 홍대의 한 치킨집에서 시작된 ‘돈쭐(돈으로 혼쭐낸다는 뜻의 신조어, 좋은 일을 한 가게의 물건을 팔아주는 것)’ 행렬이 SNS와 유튜브를 통해 연쇄적으로 확산된 바 있다. 어린 형제에게 무료로 치킨을 제공한 가게에 대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가치 소비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선행을 공유한 것이다. ‘돈쭐을 내주고 싶다’며 120마리의 치킨을 사서 아동복지 시설에 전달한 소비자, 주문만 하고 치킨은 받지 않겠다는 소비자 등 몰래 선행하는 것이 미덕이던 이전과 달리,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젊은 소비자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선행을 알리고 가치 소비에 나서고 있다. 이외에도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돕고자 화훼농가 살리는 ‘1인 1화분’, 지역 내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한 뒤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착한 소비 릴레이를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의 행동이 기업을 바꾼다

  가치 소비에 열광하는 젊은 소비자들은 차별적인 것과 공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자신의 가치관과 맞는다고 생각하면 가격과 상관없이 소비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매운동으로 의사표시를 한다. 과거 집단적 사고방식이 강조되고, 소신을 밝히는 것이 조심스러웠다면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 정치적·사회적 신념 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비 활동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소신 소비, 가치 소비, 착한 소비가 늘어나면서 제품생산 과정의 윤리성, 제품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이 구매 선택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 착한 기업, 착한 소비, 기업과 사회가 상생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익을 위해 더 높은 가격을 내는 것도 감수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기업들도 이러한 소비자들의 행동, 소비 흐름에 대응하고 있다. 환경이나 빈곤 같은 사회 문제를 제품 판매에 연결해 수익 일부를 기부하는 마케팅 전략도 그 예다. 평소 기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했던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부하는 방식에 호응하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기업이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만들어 내도록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 탄생을 위해 기업의 공식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설득하는 소비자도 많아졌다. 소비자의 정보력과 지식이 기업 내 전문가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보의 비대칭이 사라지고 소비자의 힘이 막강해져 가는 것이다. 일방적인 구매에서 벗어나,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동시에 의견 표출과 견제를 통해 제품과 서비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비자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가치 소비의 철학이 점점 더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느낀 만족과 보람이 미래 그 회사와 브랜드를 소비하는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을 격려하고 혼내주는 소비자, 소비자가 행사하는 권력, 소비자 주권(Consumer Sovereignty)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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