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멋스럽게 조각된 도시, 양주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김경수 포토그래퍼



[가나 아트파크]

 

가을은 자코메티다. 자코메티는 사색이다. 바야흐로 자코 메티와 사색이 함께 찾아드는 계절이다. 매미 소리도 잦아들고 더위도 한풀 꺾인 것이 계절은 어느새 다른 옷을 준비하고 있다. 여름내 스며든 햇살이 농담을 달리하는 때, 반추된 빛이 발길을 붙드는 시간, 속 이야기가 넌지시 노크를 건네오는 계절. 2019년 가을 여행의 첫 친구는 양주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조각이 되어 빚어지고 있는 곳, 양주로 간다.



옛것들의 향수를 간직한 청암민속박물관


  자전거 여행객들을 눈에 담으며 양주시 장흥면으로 향한다. 청암민속박물관, 장욱진 미술관, 송암스페이스센터, 가나 아트파크, 자생수목원 등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장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있다. 이곳은 미술관과 박물관은 물론 창작 미술 스튜디오도 자리 잡고 있어 적지 않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첫 여행지는 청암민속박물관이다. 이곳은 옛것들의 향수를 간직하고자 민속용품과 야생화로 조성한 곳이다. 건담 조형물로 장식한 멋스러운 버스터미널을 지나 아기자기한 카페를 지나온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풀과 나무로 둘러싸인 박물관이 나온다. 줄지어 걸린 70년대 교복이 눈을 채워온다. 나무그림자로 채색된 터널을 지나와 기찻길에 이른다. 소박하게 꾸민 다방과 장흥과 평양을 오가는 기차와 녹슨 종. 박물관 숲은 깊어지고 시간은 그새 옛날로 돌아가 있다. 낡은 의자에 앉아도 보고 종소리도 울려보고 그네에서 발도 굴려보며, 상상할 수 있었지만 닿을 수는 없었던 시간으로 들어간다. 흙냄새가 눅진하게 번져오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나비가 하늘거리고, 지붕 위 젖소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발은 청계 다리를 지나 출구에 이르러 있다. 사진 한 장을 남기며 생각한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 흔적을 간직해 주는 일은 시간을 조각하는 것과 같다고. 지난 시간은 흘러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추억으로 새겨지는 것이라고.


[청암민속박물관]


인간·자연·예술이 공존하는 가나 아트파크


  가나 아트파크로 가는 길, 창작 미술 스튜디오 777 전시회가 길동무가 되어준다. 짧은 관람을 곱씹으며 가나 아트파크로 들어선다. 2016년 설립 10주년을 맞은 가나 아트파크는 미술관, 조각공원, 어린이 미술관, 어린이 체험관, 공연장, 장흥 제1, 2 아틀리에로 구성되어 있다. 가나 아트파크는 1984년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인 토탈미술관에서 출발, 2005년 조각공원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공존하는 예술복합공간’을 지향하는 가나 아트파크는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함은 물론, 시민들을 위한 예술 교육, 전시 공간 대여 등을 해오고 있다.

  어린이 미술관에서 백남준,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을 눈에 담고 나와 조지 시걸의 조각작품 ‘우연한 만남’을 만난다. 갈림길에서 선 여행객에게 꼭 필요했던 한 마디, ‘ONE WAY’를 가슴에 담는다. 여행에서 받은 값진 선물을 품고 천천히 블루스페이스, 레드 스페이스, 옐로 스페이스, 어린이 체험관을 지나온다. 푸른 잔디를 배경으로 놓여 있는 조각품들을 보며 우치다 사게루, 반 시게루, 장 미셀 빌모트가 설계한 건물을 눈에 담는다. 건물, 조각, 산이 만드는 풍경이 멋스레 어우러지는 것이 가슴이 울린다. 바람의 손을 잡고 마크 퀸, 문신, 한진섭, 류인 등의 작가들이 빚어둔 작품들의 이야기를 귀에 담는다. 차가운데 따뜻하고 딱딱한데 부드럽다. 이 조합을 무엇이라 규정하면 좋을까. 조합 불가능한 것들을 조합되게 하고 조각을 더없이 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에 ‘인간의 손’이라는, ‘온기’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가나 어린이 미술관]


[조지 시걸의 조각작품 '우연한 만남']



화가 장욱진을 만나는 곳,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여행의 묘미는 생각지 못한 길동무를 만난다는 것일 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청련사를 마주한다. 절에 들러 목을 축인다. 천천히 사찰을 돌아 나오며 불상 앞에 선다. 얼마 전 이별을 고한 친구들을 위해 손을 모아본다. 평온하기를, 편히 잠들기를. 장욱진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의 권율장군묘를 지나며 아득히 먼 옛날을 그린다. 그 사이 발은 장욱진미술관에 이르러 있다.

  장욱진미술관은 까마귀를 그리는 화가, 붓으로 집을 짓는 작가, 가족의 서사를 평면에 담아내는 예술가 장욱진의 작품 230점을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전시해 두고 있다. 푸른 언덕 위의 하얀 집, 그 앞을 지키는 어린 왕자와 저 멀리 문지기처럼 서서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커다란 조각상.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은 산. 건축이 이토록 회화적일 수 있을까. 이것을 예술이라 이름하지 않으면 무엇을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건축, 조각, 언덕이 만들어낸 조화에 탄식을 터트리며 미술관으로 들어선다. 빛이 쏟아지는 흰 벽을 배경으로 ‘집’을 재해석해 둔 작품들을 눈에 담는다. 재현의 재현, 서사의 서사. 화가 장욱진을 중심에 둔 동시대 작가들의 재기발랄 하고 진지한 해석이 공간으로서의 ‘집’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인간이 거주하지 않는 곳은 건물에 불과하다. 인간의 온기가 머물기에 건물은 비로소 집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마음을 내려둘 집을 잃었기에 외로운 것이다. 건물을 잃어서가 아니라.

  1층 전시실에서 2층으로 향하며 누군가 속을 내려둘 수 있는 집 같은 존재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2층에 이르러 장욱진 화백의 작품을 만난다. 덕소, 명륜동, 수안보, 용인. 작가가 머물렀던 곳곳의 풍경과 가족들을 향한 작가의 시선이 속삭임이 되어 귀를 지나간다. 스침의 여운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빛이 되어 가슴에 이른다. 온 마음을 다해 무엇인가를 마주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말없이 속을 울리게 하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송암스페이스센터, 양주 하늘이 한눈에


  미술관을 나와 이른 곳은 송암스페이스센터다. 이곳은 계명산 형제봉에 위치한 천문대로 2007년에 완공되었다.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송암스페이스센터는 케이블카가 선사하는 풍경은 물론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풍경과 나사(NASA)를 체험할 수 있는 챌린저 러닝 센터, 천공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천문대까지 갖춘 지상의 하늘이다. 둥글고 투명한 원형 하늘에서 양주를 내려다본다. 케이블카와 미술관과 지나온 길과 양주에서의 시간이 하나의 형상이 되어 눈을 채워온다. 오늘 하루가 양주라는 도시가 빚어내는 조각작품이 되어 안긴다. 이대로 여행을 끝내기가 아쉬워 장흥자생수목원에 들른다. 있는 그대로의 수목을 보존해 온 자연생태수목원에 들러 숨을 고른다. 고독할 때는 조각을 봐야겠다, 삶이란 더하는 무엇이 아닌 덜어내는 무엇임을 기억해야겠다는 깨우침이 어깨를 두드려온다.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