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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얼이 깃든 천안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김경수 포토그래퍼

 

  터가 운다. 절절한 외침이 땅 곳곳에 깃들어 있는 도시, 천안이 안부를 물어온다. 여행길에 오르니 입가에 맴도는 구절이 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김소월 시인의 시, <초혼>이다. 도로를 달리는 내내 왜 이 시가 입을 떠나지 않았는지, 천안에 이르러서야 그 사연이 귀를 타고 들어온다.

 유관순 열사 생가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 세워진 동상

 

 

유관순 열사 생가와 추모각 사적지 
  천안에 들어서자 만세를 부르는 소녀의 캐릭터가 여행객을 맞는다.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이 소녀의 이름은 유관순이다. 천안을 대표하는 인물인 유관순 열사를 형상화한 ‘횃불 낭자’와 ‘나랑이’를 따라 유관순 열사 사적지로 향한다. 이 사적지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하여 나라의 독립을 외치다 순국하신 애국지사들의 뜻을 기리고자 만든 곳으로 유관순 열사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2003년 4월 1일에 개관했다. 한적한 도로를 달려 열사의 거리에 닿는다. 유관순, 이동녕, 김시민, 홍대용 등의 일대기와 독립 만세를 불러야 했던 시린 역사를 읽으며 시간의 병풍을 지나온다. 길손을 맞는 추모각을 옆에 두고 유관순 열사 동상 앞에 고개를 숙인다. 책에서, 영화에서, 그림에서 수도 없이 봐온 열사인데, 동상을 마주하고 있자니 정체 모를 감정이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채 형체를 갖추지 못한 애국이라는 단어가 혀끝에 걸린다. 아우내 독립 만세의 외침을 고스란히 담아낸 기념관을 거쳐 추모각으로 간다. 먼저 다녀간 이들이 남겨둔 국화와 향로에서 번져 나온 연기가 눈을 채워온다. 향을 꽂고 2019년이 평안한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가슴에 새긴다. 묘지 이장 과정 중 주검이 소실된 유관순 열사 넋을 달래기 위해 만든 초혼묘를 거쳐온다. 죽음마저 온전치 못하게 만든 무참한 역사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천천히 숨을 토해내며 길을 이어간다. 발은 아우내 장터에서의 거사를 알린 기념하기 위해 만든 봉화지에 닿아 있다. 봉화지에서 검디검은 밤을 밝혔을 누런 횃불을 본다. 빛 한점 없는 암담한 시절이 차마 꺼트리지 못했던 불씨가 가슴에 불을 지펴 온다. 그들의 죽음이 아깝지 않을 오늘을 꾸려가리라, 소명을 다하는 삶을 만들어가리라는 외침이 내 속을 파고든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 내부

 

 독립기념관 전시 내부

 

 

국내 최대 규모의 독립기념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동양에서 가장 큰 기와집인 겨레의 집이 있는 독립기념관이다. 독립기념관은 1982년의 일본의 역사 왜곡을 기점으로 건립을 시작, 국민 성금 모금과 역사 자료 기증 등을 통해 1987년 8월 15일 개관했다. 겨레의 탑과 백련못 너머에 고려 수덕사 대웅전을 본 따 만든 겨레의 집이 있다. 그 뒤로는 7개의 전시실과 솔숲 쉼터, 추모의 자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독립기념관 전시관은 겨레의 뿌리, 겨레의 시련, 나라 지키기, 겨레의 함성, 나라 되찾기, 새 나라 세우기, 함께하는 독립운동이라는 제목을 달고 한국의 장구한 역사를 담아낸다. 섬세한 손길이 돋보이는 선사시대 유물을 거쳐 고문 도구와 수탈 기록으로 채워진 겨레의 시련 관을 지나온다. 의병운동, 애국계몽운동, 국채보상운동 등 곳곳에서 일어난 나라를 되찾으려는 흔적을 눈으로 삼키고 가슴으로 곱씹는다. 독립을 외치는 함성과 총성과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뜨거운 눈물을 본다. 만주와 연해주, 미주 등에서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들의 못박인 발과 거칠어진 손.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독립을 부르짖고 손등이 부르트도록 만세를 염원했던 이들의 간절함이 나를 먹먹하게 한다. 내 안위를 넘어 나라의 내일을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기괴한 범죄가 성행하고 무질서가 횡횡한 시대 속 내 역할을 고심해 본 적이 있었던가.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기꺼이 목을 내준 이들의 마음이 세상에 무관심해진 나를, 치열하게 현실을 대면하지 않는 나를, 오늘 하루를 돌아보지 못하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전시실을 나와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 공원을 지나온다. 독립을 기념해야 하고 부재를 전시하는 뼈아픈 역사를 마주하며 무관심과 애국이라는 글자를 가슴에 새긴다.

 독립기념관 전경

 

독립기념관 전시실 내 무명독립군상

 

 

통일을 염원하며 세운 사찰, 각원사
  사지를 굳게 하는 먹먹함이 명치에 걸려있다. 따사롭기만 하던 봄바람이 쓸쓸하고 적막하게 느껴진다. 곧바로 걷는데도 한쪽 다리를 저는 것 같은 불균형이 나를 휘감아 온다. 반만년 역사라는 시간의 터를 잊고 산 것에 대한 반성 때문이리라. 무거운 마음으로 발을 옮긴다. 다음 여정은 각원사다. 각원사는 태조산에 있는 절로 경주 불국사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절이다. 이곳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설립한 곳으로 높이 15미터, 무게 60톤의 거대한 ‘남북통일기원 청동대불’로 유명하다. 34개의 주춧돌과 100여만 재의 목재가 들어간 대웅보전과 203개의 계단, 20톤에 달하는 태양의 성종 외에도 안정된 구조로 배치된 설법전, 천불전, 산신전, 칠성전, 관음전, 경해원 등이 태조산에 멋을 더해주고 있다.
  108번뇌, 관세음보살의 32화신, 아미타불의 48소원, 12인연과 3보를 더해 나온 숫자인 203계단을 오른다. 계단이 더해질수록 허리는 굽고 숨소리는 거칠어진다. 볼이 발그레 달아올랐을 즈음 청동불상을 만난다. 곱디고운 빛깔의 푸른 불상이 지긋한 눈길로 길손을 내려다보고 있다. 반쯤 내려감은 듯 보이는 눈에 담겨 있는 시간을 본다. 세파를 만나 처절하게 무너지고 이내 일어서서는 기꺼이 또 시련을 마주해나가는 것, 그리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속을 깎고 비워나가는 과정이 곧 삶이라는 깨우침을 얻는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후 대웅전과 천불전, 산신전을 돌아 나온다. 해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갈 곳이 남은 여행자는 마지막 종착지를 향해 발길을 서두른다.

 각원사 남북통일기원 청동대불

 


한국 우편의 역사를 담은 우정박물관
  마지막으로 이른 곳은 우정박물관이다. 우정박물관은 한국의 우편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으로 홍영식 선생의 우정총국 설립을 시작으로 근대의 우정 문화를 거쳐 오늘날까지의 우편의 발자취와 사료를 전시해 두고 있다. 이곳은 우정의 역사와 우체국 업무를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집배원 복장과 우체통 변천사, 세계 각국의 우체통 등으로 이색적인 볼거리도 제공한다. 우편열차를 개조한 전시실을 나와 밀레니엄 우체통 앞에 이른다. 천안이 가슴에 남긴 독립의 의미를 되새기며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
  우정박물관을 나와 역으로 간다. 국가의 독립을 염원하는 수많은 이들의 얼이 깃들어 있는 땅, 천안. 기차에 오르며 무고한 이들이 목숨을 담보로 찾아준 독립과 자유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게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동반하고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 해야 한다. 자유와 평화는 전 인류의 요구라 할 것이다.’는 한용운 선생의 글귀를 되새긴다. 천안에 스민 얼의 여운이 깊고 그윽하게 기찻길을 울려온다.

우정박물관 시대별 우체통(위)과 속달우편가방(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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