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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영 부산 해강초등학교 교사 “사랑은 대물림입니다”

글_ 한주희 기자

 23년 전 제자들과 함께 교 단에 심은 매화나무가 올해 도 꽃을 피웠다. 퇴임 전 해 강초등학교로 다시 부임한 김 교사는 감회가 새롭다.

 

 

  누군가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일이라고 했던가. 교단에 서서 사랑을 실천했다고 한다면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김일영 부산 해강초등학교 교사는 자택을 공부방으로 열어 위기 아이들을 돌보고, 24시간 365일 제자 전용 ‘SOS콜’을 10년 넘게 운영 중이다. 한 아이 한 아이를 제대로 보기 위한 그의 여정은 고단하지만 충만한 행복을 선사한다. 

 

결국, 사랑이 답이더라.
  올해로 39년째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온 선생님의 한 마디가 묵직하다. 수십 수백 명의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그가 깨달은 변하지 않는 하나의 진실. 긴 세월 수없이 많은 고민과 인내를 견디고 얻은 값진 교훈이다.
  “사랑은 되물림(되갚음)이 아니라 대물림입니다. 한 아이의 인생은 교사의 노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아이 스스로 깨닫고 성장하며 아름답게 성숙해 나가는 일이지요.”  
  김일영 부산 해강초등학교 교사가 걸어온 길은 대물림하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65일 제자를 위한 ‘SOS콜’ 운영
  “얘들아, 언제나 팔팔하다구 하나공쌤께로 콜!”
  김 교사의 휴대전화는 일명 ‘SOS콜’로 불린다. 24시간 365일 평생 애프터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제자들에게 특별 이용권을 준다.

"한 아이라도 놓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제 삶이 조금 더 고단해 진다고 해도 얼마나 좋을까요.
재능, 시간, 공간 등 최소한 1/10은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꼭 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

학기 초에는 아이들이 자신 의 꿈을 그려 교실 뒤 게시 판에 붙인다.


  말 못 할 일이 생겼을 때 어느 때고 연락할 수 있도록 외우기 쉽게 한 문장으로 만들어 학기 초마다 안내하고 있다. 2008년 처음 개통한 이후 올해로 11년째다. 
  “쉰한 살이 된 첫 제자부터 올해 열세 살인 막내까지 이용합니다(웃음). 위급한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꼭 있어야 하지요. 한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일이 없도록 아이 곁에서 도와주고 싶었어요. 자살 징후를 보이던 아이가 자살을 극복하고, 왕따로 괴로워하던 아이가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참 기뻤지요.”
  어느 날엔 새벽 1시에 SOS콜로 문자가 왔다. ‘선생님, 저 사고 쳤어요.’
    알고 보니 고등학생이 된 제자가 용돈이 궁한 나머지 불법도박 사이트에 가입해 수백만 원의 돈을 탕진하고, 친구에게 빚까지 지자 늦은 밤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이다. 우선 아이를 진정시킨 그는 학교에 강의 왔던 청예단(청소년폭력예방) 사이버팀장의 도움을 받아 하룻밤 새 사이트에서 아이를 탈퇴시키고, 부모의 협조를 구해 사건을 잘 마무리했다. 아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면, 불법도박보다 더 위급한 상황에 빠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김 교사는 힘주어 말한다. 

 

 

 김 교사는 12년째 6학년 담 임을 맡고 있다. 올해 담임 반인 6학년 6반 아이들

10년 동안 자택 내 주말공부방을 열다
  학교 돌봄만으로 부족한 아이들은 집으로 불러 모았다. 거실 한 켠을 내어 ‘하나공센터’란 문패도 내걸었다. 김 교사의 이름인 ‘일영’을 따 ‘하나공’이라 이름 붙인 일종의 주말 공부방이다. 아이들은 금, 토, 일요일마다 이곳을 드나들며 보충학습을 하고, 김 교사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며 간식과 밥을 준비했다. 처음엔 한두 명인 아이들이 나중에 점차 늘어 십여 명이 되고, 학원에 가기 어려운 중학교 제자들까지 모여들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렇게 2017년까지 꼬박 10년 동안 수많은 아이들이 이곳에서 다양한 꿈을 키우며 대학에 진학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제자들을 위해서는 10년 전부터 겨울스키캠프도 운영 중이다. 매년 8명씩 9인승 자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4박 5일간 스키캠프와 서울 관광을 겸해 겨울문화체험을 다닌다. 이식한 국제자산신탁 상무는 자택으로 아이들을 직접 초대하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 소중한 인연이다.  
   “아버지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며 부모님이 이혼하고, 가정의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방임되던 아이가 있었어요. 수학 16점을 받았는데도, 부모님 누구 하나 아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죠. 어느 날 아이가 묻더군요. ‘선생님, 저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런 아이들을 제대로 보고, 한 아이라도 놓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제 삶이 조금 더 고단해진다고 해도 얼마나 좋을까요. 재능, 시간, 공간 등 최소한 1/10은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꼭 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내기 교사들을 위해서는 하나공연구소 문을 열었다.
  20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 책장 뒤 1인 침대 하나를 두고 교직에 입문한 교사들의 연구와 동아리를 지원했다. 밤새워 함께 교육 생각을 나누던 이들이 이제 어엿한 연구단체로 성장함에 따라 2001년부터 사비를 털어 10여 년간 운영했던 연구소의 문은 더 큰 성장과 함께 자연스레 닫혔다.
  “겨자씨 하나 뿌렸을 뿐인데…”라는 그는 10년 전 감히 흉내도 못 낼 일들을 하면서 홀로서기에 성장한 후배 교사들이 뿌듯할 뿐이다.

 김 교사는 학부모와 1:1 상담을 100% 진행한다. 상담 자리를 미리 정갈하게 하고 차를 다려 학부모를 맞는다.

 

 선배들이 심은 매화나무에 장수풍뎅이똥 거름을 주고 있다. 두런두런 전하는 옛 이야 기에 아이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기피하는 6학년 담임만 12년째
  그는 올해‘도’ 6학년 담임이다. 사춘기에 들어서는 아이들이 힘들어 기피하는 6학년만 12년째 맡고 있다. 오히려 “6학년 담임을 안 줄까 걱정”이라는 그는 아이들이 인생을 설계하는 출발선에 함께 서고 싶다고 했다. 
  “한때는 최연소 관리자라는 말에 솔깃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아이를 제대로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승진을 위한 부장점수 만기 7년 중 6개월을 남겨두고 스스로에게 올무를 매기 위해 교무부장 사표(?)를 냈어요. 지금껏 후회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생애 첫 터닝포인트 시기에 아이들을 날마다 흔들어 깨워주고 싶습니다.”
  그는 연초마다 문제아(?)들의 담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 아이들은 묵은 상처를 지니고 온 아이들이 많다. ‘모두가 네 탓이라고!’ 하는 말로 상처를 입은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나눠 대물림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곁에서 돕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의 장점을 찾는 일부터 시작한다. 평소 다중지능이론을 깊이 새기며 모든 아이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아이의 단점조차 강점으로 살피고 있다. 주의력결핍장애(ADHD)를 가진 한 아이는 친구와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급식용 배식차가 들어올 때 높은 턱 때문에 여럿이 들어 올려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들고 왔다. 아이 몰래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왔고, 아이는 ‘발명 영재’로 불리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어머니를 잃고 기죽은 아이가 가창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고 학예회 무대에 올린 일,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지만 도예에 소질이 있는 걸 알고 전시회를 열어 준 일 등은 모두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한 덕분이다. 지난 38년간 단 한 번의 결근도 없었다는 건 지난해 대한민국 공무원상으로 받은 대통령 표창보다, 스승의 날 교육부 장관상 수상보다 더 값진 일이다.
  “제 인생 최고의 은사님이 계십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난 이학정 선생님은 어려운 제 형편을 남몰래 도와주시고,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지요. 그 사랑을 보답할 길이 없어 지금은 제자들에게 그 사랑을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김 교사는 학기 초마다 ‘내 인생의 목적지’를 주제로 수업을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 는 나눔의 삶을 이야기 하며, 교실 내 재능기부도 독려한다.

 

 

은사의 사랑 다시 제자에게 대물림
  김 교사는 미혼모의 딸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이 파산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껌팔이, 신문팔이, 고무공장 등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를 말없이 지지해 준 이가 당시 담임선생님이었다. 괜스레 친구를 데려와 껌을 사주기도 하고, 남은 빵을 이웃과 친구와 나누라며 부끄럽지 않게 챙겨주기도 했다. 지금껏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던 이 일을 이젠 제자들에게 들려주며 더 큰 희망을 품게 하는 밑거름으로 삼고 있다.
  “첫 제자가 올해 쉰한 살이 됐습니다. 지난 38년간 매년 스승의 날을 함께 보내며 때로는 인생의 멘토로 때로는 친구로 함께해 오고 있지요. 이 아이들과 함께 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선생님은 언제나 13세였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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