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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풍덩 빠진 아이들과 책 읽어주는 선생님의 동행 - 박기정 부산 용수초등학교 교사

글 _ 김혜진 객원기자


  부산 용수초등학교 박기정 교사는 책 속에 풍덩 빠져 아이들과 함께하는 독서 활용 교육에 매진 중이다. 책 속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주인공들의 꿈과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행복한 교사로 교직 생활 34년째를 넘기고 있는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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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용수초등학교(교장 이영옥) 2층, 중앙 복도에는 ‘생각이 자라는 책벌레숲’이 들어서 있다. 바로 독서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두 차례 교사와 학생들이 둘러앉아 책을 읽는다. 교사가 직접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학생이 친구들을 위해 책을 읽는 ‘북리더’가 된다. 용수초의 이 ‘북리더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주인공은 교무부장이자 2학년 4반 담임인 박기정 교사다. 올해로 교직 부임 34년째, 박 교사는 교직 초임 시절부터 학생들의 재능이 다채롭게 발현될 수 있는 교육법에 대해 줄곧 고민해 왔다. 학습지도 영역에서 꾸준히 연구 활동을 해 온 박 교사는 수업연구대회에서도 수차례 입상한 바 있다. 또 용수초 부임 이전에도 교육과정부장, 방과후교육부장 등 15년 가까이 부장을 맡으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창의적인 교육과정의 설계와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매일 아침을 여는 ‘10분 독서’ 활동

  “요즘은 저학년 아이들도 휴대전화를 매개로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시대에요.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의 정보에 쉽게 노출되다 보니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죠. 이와는 대조적으로 교사와 학생이 함께하는 독서 활동은 아이들에게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배움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면서 그 잠재력을 천천히 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죠. 아이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꽃으로 성장하고 여물어가기까지, 그 밑거름이 되는 건 바로 독서라는 굳은 믿음이 생기면서부터 아이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독서 활용 교육을 전개해 나아가기로 목표를 세웠었죠.”


  저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만큼,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듯,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스며드는 독서 활용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는 박기정 교사의 설명이다. 용수초에서 매일 아침 이뤄지는 ‘10분 독서’ 활동 또한 박 교사의 독서교육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프로그램이다. 박 교사가 담임을 맡은 2학년 4반의 경우 좀 더 특색 있게 운영이 되곤 한다. 요일별로 날마다 다른 주제로 독서 활동을 운영하는 식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날마다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는 토론과 여러 체험활동을 하는 동안 아이들의 사고력과 의사소통역량은 점차 향상되어 가기 때문이다.


  “전임 학교에서부터 15년째 부장을 맡다 보니 주로 1~2학년 담임을 맡았었어요. 아이들이 저학년이다 보니 독서 활동도 단순히 책 읽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전과 사후 활동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죠. 이번 학기만 해도 월요일은 ‘내 기분 어때?’, 화요일은 ‘참, 다행이야!’, 수요일은 ‘꼬.꼬.무’, 목요일은 ‘말놀이 잔치’, 금요일은 ‘이야기 요정’ 등 일주일 동안 다양한 책을 읽고 여러 활동을 수행하면서 아이들은 점차 학교생활과 배움에서도 자신감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죠.”


  여러 가지 다양한 독서 활동을 통해 기본교과인 국어와 수학은 물론 다른 교과에서도 문제해결력이 향상됨은 물론 친구들과 토론할 때도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 자기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게 되더란다.



“설안타 선수는 ‘조금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진행하는 ‘북리더 활동’의 경우, 북리더를 맡은 학생들은 미리미리 책을 읽어오면서 목소리의 높낮이, 띄어읽기 등 발성과 호흡까지도 세밀하게 구사하는 정도가 되었어요. 친구들에게 책을 다 읽어주고 난 후에는 기억에 남는 장면을 팬터마임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하는데, 친구들이 빨리 알아채고 정답을 맞히게 되면, 북리더 학생은 독서 활동에 대한 보람과 자부심을 그만큼 더 느낄 수 있게 되더라고요.”


  지난해 12월 21일 화요일, 2학년 4반 5교시는 동화책 <용기껌 부풀어>를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용기껌 부풀어>는 야구경기 중 껌을 씹으면서 긴장감을 푸는 습관이 있는 설안타 선수를 주인공인 ‘용기’가 따라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줄거리의 동화책. 이날 수업 도중 박 교사는 아이들에게 재밌는 질문 하나를 던졌다. 


“경기 중에 껌을 씹는 설안타 선수에 대해 우리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경기하는 동안 긴장감이 풀렸다면, 그 팀은 승리할 가능성이 커졌으니 ‘매우 잘했다.’”는 의견부터 “껌을 삼킬 수도 있어서 선수의 건강이 염려되므로 ‘매우 잘못했다.’”는 의견까지. 아이들은 각자 품고 있는 생각들을 친구들과 함께 공유해 나갔다. 친구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에는, 자기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수정하는 학생도 있었다. 수업 중 기자가 만난 주세현 학생은 “경기하는 중에 긴장이 풀려서 용기가 더 생길 수도 있지만, 설안타 선수가 혹시라도 잘못하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어서 저는 ‘조금 잘못했다’를 선택했다.”라며 소신껏 의견을 들려줬다.


  “<용기껌 부풀어>는 12월 한 달 동안 온작품 읽기로 수업을 운영했어요. 책을 읽은 후에는 실제로 풍선껌으로 누가 더 풍선을 잘 부는지 재밌는 대회도 진행했고요. 지는 걸 한사코 싫어하는 한 아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풍선을 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죠. 이 풍선껌 불기 대회는 학급 소통방 공지를 통해 가정에서 부모님과 형제 등 가족 구성원 대회로도 진행해 보기도 했고요. 이처럼 독서 후 이뤄지는 다양한 활동들은 아이들의 창의력은 물론 가족 간, 세대 간 의사소통능력 등을 향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기도 합니다.”


박기정 교사는 책 속에 풍덩 빠진 2학년 4반 아이들과 함께 온작품 읽기 등 독서  활용 교육을 하며 책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박기정 교사는 책 속에 풍덩 빠진 2학년 4반 아이들과 함께 온작품 읽기 등 독서 활용 교육을 하며 책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나는 행복한 교사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다시 강화되면서 바깥 활동이 줄어든 만큼 학생들에게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독서 활동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는 박기정 교사. 코로나19 장기화로 용수초에서 알차게 운영되던 독서프로그램 하나가 중단된 상태라며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함께하는 ‘북토크 동아리 활동’이다. 북토크 동아리 활동은 2017년 교사독서모임으로 처음 시작되면서 2018년에는 학생독서모임, 2019년에는 학부모까지 참여하는 독서모임으로 확장됐었다.


  “북토크 동아리 활동은 교사와 학부모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인문학을 사랑하고,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객체이자 교육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삶의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공유하곤 했었어요. 종종 북아트 만들기나 낭송회 등을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으로도 진행됐고요.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부터는 오프라인 독서 모임은 아예 운영할 수 없게 되었느니 무척 안타까웠죠.”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듯,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스며드는 독서 활용  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박기정 교사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듯,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스며드는 독서 활용 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박기정 교사



  앞으로 남은 교직 생활 동안 이제껏 아이들과 함께해 왔던 여러 활동을 엮어서 ‘박기정의 인생노트’를 꼭 작성하고 싶다는 그는 아이들로부터 “늘 노력하는 선생님, 학생들의 입장을 위해 행동하는 선생님, 학생들의 꿈을 응원해 주는 선생님”으로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단다.


  “학기 중 매일 방과 후에 5~10분 정도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누군가의 애정 어린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시기의 우리 아이들, 특히 선생님의 따스한 응원이라는 조그마한 꽃씨가 싹을 틔워, 나중에는 더 큰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을 거라는 우리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저는 요즘 굳게 믿고 있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위해 매일 아침 교실 문을 들어설 때마다 ‘나는 행복한 교사야’라며 마음속 깊이 되뇌곤 한다는 박기정 교사. 정년까지 앞으로 남은 5년, 교직 생활을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해서도 한창 골몰하는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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