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발달장애아와 박에스더선생님의 음악세계-숫자 계이름·손기호로 음악을 배운다

글 _ 김혜진 객원기자

경기도 고양시 홀트학교 박에스더 교사의 교직은 2008년 인도네시아의 전통악기 앙클룽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특수교육 교사로서 발달장애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음악지도법을 새로 개발했고,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에스더 숫자지휘법’도 새로 특허 등록까지 마쳤다. 2015년 올해의 스승상에 이어 올해 제10회 대한민국 스승상 특수교육 부문상을 수상한 그를 만났다.



박에스더, 홀트학교 교사박에스더, 홀트학교 교사


  햇빛과 물, 바람이 키워내고, 그 자연의 소리를 담아낸 ‘대나무종’ 앙클룽(Angklung). 경기도 고양시 홀트학교(교장 김봉환) 박에스더 교사는 2008년, 이 대나무 악기와 운명처럼 처음 만났다. 자연의 질감 그대로를 구현해 놓은 투박한 외양의 타악기, 그러나 그 속에서 공명하는 떨림은 그 어떤 악기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청아한 소리를 품고 있다.


  “이 인도네시아 전통악기를 처음 접하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이미 유럽에서는 음악치료용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더라고요. 학교에 이 악기를 들이자마자 처음으로 초등부 학급 발달장애 학생들의 음악수업에 바로 적용했죠. 연주법이 특별히 어렵지 않다 보니, 장애가 있는 저학년 아이들도 곧잘 따라와 주었죠.”


  이 시기, 홀트학교에는 박 교사의 지휘 아래 앙클룽 음악동아리가 생겨났다. 이어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등의 예술교육 재능기부자들까지 속속 합류하면서 2012년 4월 이곳에는 ‘예그리나 오케스트라’(예그리나는 순우리말로 ‘사랑하는 우리 사이’라는 뜻)가 새로 창단됐다. 


  “비장애인 학생들도 어려워하는 바이올린, 첼로를 과연 우리 아이들이 해낼 수 있을까? 오케스트라 단원 오디션을 하면서도 일부 학부모님 중에는 창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없지 않았어요. 이러한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우리 아이들도 비장애인처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드리기 위해 그동안 정말 열심히 가르치고, 또 지도했죠.”


홀트학교 아이들의 꿈꾸는 시간

  지난 10년, 박 교사의 삶은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한 날들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시간이 비록 더디게 흐르더라도, 기다려주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아이들이 꿈꾸는 순간은 기적처럼 찾아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지난 10여 년의 시간이었단다. 따라서 그동안 비록 작은 무대일지라도 지역사회에서 공연요청이 오면, 늘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는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았던 박 교사였다. 


  “2014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협연은 저로서도 잊지 못할 순간이었어요. 앙클룽은 특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 특별한 감동을 주는, 마음을 울리는 악기거든요. 그날 다운증후군이었던 초등부 1학년 민이(가명)는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뛰어난 연주 솜씨로 객석의 청중들을 놀라게 했죠.”


  그 이듬해인 2015년 12월, KBS 청소년 공감 콘서트 온드림스쿨 공개방송에서도 박 교사는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을 맞았었다.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정확한 음을 콕 짚어 소리를 내던 정민(가명)이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3년 전 8월, 예그리나 오케스트라는 역사적인 기쁨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홀트학교 국악부 학생들과 협연으로 독도에서 음악회를 연 날이었다. 


  박 교사의 총연출로 열린 이 독도음악회에서 홀트학교 아이들은 ‘홀로 아리랑’, ‘아름다운 나라’, ‘하나된 열정’ 등을 연주하며 잃었던 이 땅의 역사, 광복 73주년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 단원 아이들에게 종종 어떤 공연이 가장 좋았는지 물어보면, 양로원의 할머니들 앞에서 연주했을 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하곤 해요. 무대는 언제나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해요. 아이들에게 이러한 놀이터,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무대를 자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저희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기사 이미지 숫자악보를 적용하면서 학생들이 보기에도 편하고 연주하기도 한층 쉬워졌다. 기사 이미지



오선 악보의 장벽을 넘은, 숫자악보

  학창시절, 박 교사는 음악대학에 진학하여 피아노 전공을 꿈꾸었었다. 그런데 가족 구성원 중 청각장애인의 애환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특수교육학 전공으로 선회하게 되었단다. 2008년, 박 교사는 음악동아리 앙클룽반을 지도하면서 발달장애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음악 지도법 연구에 더욱 매진했다. 그 첫 번째 성과가 ‘숫자악보’다. ‘도, 레, 미, 파, 솔, 라…’ 대신에 ‘1, 2, 3, 4, 5, 6…’처럼 숫자로 계이름을 표기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가 창단되고 바이올린, 첼로 등을 지도하는 재능기부 선생님들도 가장 힘겨워했던 부분이 학생들이 오선 악보 읽기를 어려워한다는 사실이었어요. 학생들이 보기에도 편하고, 연주하기에도 한층 더 쉬워진 숫자악보를 적용하면서 이 난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되었지요.”


  이때 박 교사는 초등부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곡들을 숫자악보로 일일이 변환하는 작업에 매달렸고, 이 곡들은 후에 <숫자 악보집>으로 발간됐다. 박 교사는 또 ‘에스더 숫자지휘’법도 구안하여 현재 오케스트라 지휘에 활용하고 있다. 이 또한 발달장애 학생들이 악기를 좀 더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숫자 손기호’로 숫자악보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박 교사는 2017년 이 ‘에스더 숫자지휘’법의 특허출원을 마쳤다.


  이러한 음악 지도법은 박 교사가 2013년 특수교육 부문 국정교과서 집필 과정에 참여하면서 초등부 3~4학년 음악 교과서에도 수록됐다. 박 교사는 또 2015 개정교육과정 음악과 시안 연구진으로도 활동했다. 2019년에는 그동안의 음악교육 연구 활동을 엮어 <숫자악보와 숫자지휘를 적용한 발달장애학생 음악교육의 실제>라는 책으로 출간해 세상에 선보였다.



숫자악보와 숫자지휘를 적용한 발달장애학생을 위한 음악지도서숫자악보와 숫자지휘를 적용한 발달장애학생을 위한 음악지도서



음악, 마음을 일으켜주는 고마운 친구 같은 존재

  박에스더 교사는 지난 5월에 진행된 제10회 ‘대한민국 스승상’ 시상에서 특수교육 부문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 2015년 ‘올해의 스승상’에 이은 수상의 영예였다. 박 교사는 “이 수상만큼은 홀트학교에서 문화예술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많은 선생님, 외부에서 참여하고 계시는 예술강사, 그리고 재능기부자들도 함께 받아야 하는 귀한 상”이라면서 이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예그리나 오케스트라는 안타깝게도 지난해 함께 모여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일 년에 최소 20여 곡 이상 합주를 해왔었는데,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죠. 올해 2학기부터는 오케스트라 합주실 공간에 가림막 설치 등 리모델링을 단행해서 아이들의 합주 연습시간을 좀 더 확보해 나갈 계획이에요. 또 학기 중에는 교실 인원의 재배치 등을 통해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방과 후 수업들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운영해 나갈 예정입니다.”


  ‘음악은 넘어진 마음을 일으켜주는 고마운 친구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박에스더 교사. 그를 매료시켰던, 자연의 소리를 품은 악기 앙클룽, 또 지난 10여 년을 바쁘게 달려온 예그리나 오케스트라와 함께, 홀트학교 아이들에게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음악의 가치들을 계속해서 보듬고, 나누어줄 계획이란다. 




자연의 소리를 담아낸 대나무종 앙클룽을 활용한 음악치료를 해오고 있는 박에스더 교사. 앙클룽 연주법이 어렵지 않아 장애가 있는 저학년 아이들도 곧잘 따라한다자연의 소리를 담아낸 대나무종 앙클룽을 활용한 음악치료를 해오고 있는 박에스더 교사.앙클룽 연주법이 어렵지 않아 장애가 있는 저학년 아이들도 곧잘 따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