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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3 - 민·관·학이 함께하는 교육협력 거버넌스 구축

글 _ 양병찬 공주대 교수

  한국의 교육자치는 일반행정과 분리된 독립 교육행정기구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광역 교육청의 수장(교육감)은 직접 주민선거1에 의해서 선출되고 있지만, 기초자치단체 차원의 행정 관서인 교육지원청의 책임자인 교육장은 교육감에 의해 임명된다. 이로 인하여 기초자치단체의 교육행정에 관한 자치권한은 대단히 취약하다. 기초자치단체는 ‘교육경비지원’이라는 방식으로 해당 지역의 학교들과 교육지원청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식 정도로 돕는 상황이다. 이러한 독특한 맥락에서 교육청 중심의 교육자치는 한 지역사회에서 완결된 자치를 이루지 못해서 많은 곤란한 상황에 봉착하고 있다. 


교육청·자치단체의 새로운 협력: 혁신교육지구

  최근 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혁신교육지구와 마을교육공동체 등의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다. 이 사업들은 기존의 교육청 중심의 교육자치를 넘어 기초자치단체의 행정 협력과 주민들의 교육에의 주도적 참여를 목적으로 하고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사업들이다. 기초지자체가 지역 교육에의 개입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자치도시’를 자처하며 다양한 민·관·학의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자치 1번지’라고 자칭하면서 민관학정협력체계를 구축해가는 시흥시를 비롯하여, ‘교육재단’을 만들어 교육도시 정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오산시, 주민의 교육회의(‘교육민회’라 부른다)를 만들어 도시의 교육 담론과 마을교육과정 등의 실천을 만들어가고 있는 순천시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교육자치 실천 사례들에 나타나는 행정 단체 차원의 교육자치의 한계를 넘기 위한 주민자치의 교육거버넌스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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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으로 교육과 돌봄은 지역사회의 모든 책임이었다. 그러나 근대학교가 생겨나 학교에 교육의 책임이 옮겨 갔으며,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생겨난 공동체의 붕괴는 학교와 마을을 분리시켰다. 삶과 분리된 학교교육으로 여러 가지 교육문제를 직면하게 되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학교와 지역 연계가 요청되었다. 최근의 움직임으로 기초자치단체와 교육청의 협력을 기반으로 추진되는 혁신교육지구 사업이 있고 이 사업의 내용을 채우는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이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혁신교육지구’ 사업은 학교와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지역교육공동체 구축을 위하여 광역 교육청과 기초지방자치단체가 협약으로 공동 사업을 추진하는 지역(도시)을 지칭한다. 혁신교육지구는 일반행정과 교육행정의 협력을 통해 도시 전체의 교육적 지원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11년 경기도 혁신교육지구 6개 도시에서 시작되어 이후 2013년에 전라남도에서 무지개교육지구를 선정하면서 2015년에는 서울, 인천, 강원, 전북, 충남 등으로, 그리고 현재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190개 지구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은 ①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교육 시스템 구축, ② 지역사회 기반 마을교육공동체 조성, ③ 지역사회와 연계한 교육과정 다양화·특성화, ④ 공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주민의 공교육에 대한 신뢰감 제고 등이다. 초창기 혁신교육지구 사업도 주로 교육경비 활용에 중점을 두었지만, 점차 성숙되면서 일반자치단체와 교육청 간의 교육적 이해를 공유하고, 지역의 교육 인프라를 개발하고,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를 모색하는 교육협력 사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위 사업의 목적 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②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소통하는 지역사회 기반의 ‘마을교육공동체’ 조성으로 주민의 교육 참여를 촉진하는 시도이다. 혁신교육지구가 전국에 확산되어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자치단체와 교육행정 간의 협력의 어려움은 관행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법적 경계로 인한 행·재정의 이원화나 일하는 방식의 차이 등은 두 행정기관을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이러한 관-관 협력의 한계를 넘기 위한 주민자치적 차원의 교육거버넌스를 고민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주민들이 삶의 중요한 과제인 지역의 교육을 주체적으로 관여하고 결정하게 되는 주체적 결정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최근 순천시나 시흥시 등 선진적 지자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협력모델을 구축하여 지역과 협력하는 학교를 일반화하는 동시에 지역 단위 풀뿌리 교육자치 기반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육부도 2020년부터 혁신교육지구 사업을 확산하기 위해 ‘미래형교육자치지구사업’을 공모해서 추가로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은 교육협력센터와 마을교육자치회, 교육부 내부 사업들 간의 연계, 타 중앙 부처의 관련 사업들을 교육사업들과 연계하여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교육협력센터는 기초자치단체와 교육지원청의 협력 사무소로서의 역할을 하는 센터로 사업 전반의 연계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마을교육자치회는 읍면동 단위에서 주민과 학부모, 학교 구성원들의 협력적 의사결정 회의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처럼 법정 단체는 아니지만 학교와 지역의 협력을 위한 논의의 장을 만들어감으로써 실제적인 협력 구조(거버넌스)를 만들어가도록 하고 있다.



교육거버넌스 : 풀뿌리 교육자치 

  교육거버넌스란 민관 주체들이 교육을 함께 고민하고 궁리하면서 학교와 지역교육 전체를 지원하는 여건을 조성하는 움직임이다. 이를 통해서 주민과 당사자들이 삶의 중요한 과제로서 지역의 교육을 주체적으로 관여하고 결정하게 된다. 지금까지 교육거버넌스가 기초지자체(시·군·구)와 교육지원청 간의 협력체계 구축을 강조하였다면 새로운 교육거버넌스는 주민이 주체가 되고 학교와 함께 만들어 가는 풀뿌리 교육거버넌스가 요청된다.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에서 학교와 지역과의 연계의 강화를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이다. 지역과 연계된 학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교육 당사자 주체인 주민과 학부모, 아동, 교사 그리고 행정, 학교와 마을 등의 활발한 교류가 필수적이다.


  최근 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위기 상황에 내몰렸다. 중앙정부에 의해 학교가 문을 닫고 공공서비스가 정지된 상황에서 아이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되었다. 공간 중심, 프로그램 중심으로 작동된 지역사회 안전망은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지역의 교육력을 회복하는 마을교육공동체운동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촘촘한 보호막이 될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순천은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에서 <지역교육력회복실천공동체>라는 느슨한 교육문제 논의구조를 만들어서 민·관·학이 함께 교육 과제를 한 달에 한번 토론하는 ‘정담회(情談會)’라는 교육민회(敎育民會, 비공식적인 의사논의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의 새로운 관계 도모하는 행정협력, 교사와 환경운동가, 마을활동가들의 협동적 교육과정 개발(東江마을교육과정), 지역 교육자원(교육경비 등)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지역의 협의 과정 등으로 이어지면서 주민들이 아동·청소년들의 성장 기반을 만들어가는 교육생태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최근의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교육은 학교에서’라는 학교 완결형 교육을 지역사회 네트워크형 교육구조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은 학교에서 아동·청소년을 공부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주민들이 스스로의 삶과 지역의 발전을 위한 자기 통제(결정)력을 갖는 지역의 배움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지금 전국에 부는 마을교육공동체 바람은 미풍으로 시작했지만, 우리의 교육 결정권과 전체적 교육구조, 패러다임 등 한국 교육과 주민자치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출발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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