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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얼음’으로서 영어교육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에 따라 정부가 오는 3월 새 학기부터 초등학교 1·2학년의 방과후학교 영어수업을 전면 폐지키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공교육정상화법에 따라 교육과정에 앞선 지나친 선생학습을 막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에서 시행되는 것이지만,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결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영어수업이 금지되면 결국 아이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몰릴 것이고, 이렇게 되면 평범한 서민들은 교육비에 부담이 생길 것이고, 결국 소득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질 것이라는 접근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외국어 교육은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분으로 공교육에서 맡아야 하므로 어려서부터 하는 것이 좋다고 보기 때문이다. 방과후학교가 학원보다 저렴해 경제력이 충분하지 않은 학생에게도 영어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억제를 위한 결정이 오히려 공교육을 악화시키고, 사교육을 심화시킨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제도는 영어교육을 초등학교 3학년부터 도입하고 있으며, 공교육을 벗어난 범위에서는 학령 전 유아에게 조기영어교육이 허용되고 있다. 이렇게 영어교육이 시작되기 전 방과후 교육에 대한 규제를 실시하지 않았던 이유는 공교육기관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배울 수 있게 되어 초등학교 1·2학년에서 영어교육의 공백이 발생하므로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여 영어를 배우고 있는 실정이고, 방과후 영어는 이러한 공백 기간을 어느 정도 메우는 역할을 했던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찬반논쟁을 떠나 세밀한 접근 필요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이전에도 조기영어교육과 관련해서 그동안 많은 논쟁이 있었다. 조기영어교육 찬성론자들은 결정적 시기를 내세워 인지적, 정의적 측면에서 찬성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반면, 조기교육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어린 나이에 영어교육을 받게 되면 아동의 모국어 습득은 물론 정의적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무엇보다 자국의 언어가 아닌 외국의 언어를 조기 도입할 경우, 학생들의 학습 동기나 정체성과 같은 정의적 특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면서, 아직 정서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의 언어를 너무 일찍 배우게 되면 외국어 교육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어 오히려 외국어 학습에 대한 동기가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모국어에 대한 언어정체성이 아직 확고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외국어를 배울 경우, 언어정체성이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원칙적으로 얼마나 많은 국민이 실생활 속에서 외국인과 영어로 의사소통하는가의 여부를 떠나 영어는 단순한 외국어의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어 공교육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면서 영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개인적 차원이나 사회통합 차원에서 중요한 정책방향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교육정상화법에 따른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 금지 정책이 공교육을 악화시키고 사교육을 심화시켜 소득격차에 따른 교육격차를 심화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찬반논쟁을 떠나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언어정체성 형성에 장애 안 돼 이러한 찬반논쟁에도 불구하고 초등 1·2학년 영어 방과 후 수업을 금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모국어에 대한 언어정체성 즉 모국어의 가치와 필요성을 인정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중에도 한국 사람임을 잊지 않는 언어정체성이 손상될 염려가 없다. 영어 방과 후 수업이 일주일에 한 두 시간 진행되고, 교실 밖에서도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모국어에 대한 언어정체성 형성에 장애가 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다음으로 학생들이 영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흥미를 느껴서 공부하고자 하는 자율적 조절 동기를 유지하거나 벌을 회피하고 보상을 받기 위해서 또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 공부하는 통제적 조절 동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어 방과 후 등 1·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수업은 대부분이 놀이와 활동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학생들이 학습동기를 가지고 스스로 학습하거나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이 발달할 수 있으며, 학습에 대한 동기도 높다.


  마지막으로 사교육 수요를 일정정도 흡수하여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노무현 정부는 사교육 절감을 통한 공교육의 정상화에서 교육정책의 해답을 찾음으로써, 한편으로는 학벌주의, 교육의 양극화를 해결하고, 보육과 탁아를 위한 방과수요확대를 학교 방과 후로 흡수하는 정책을 설계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영어교육의 적기가 언제인가하는 교육적 논의와 함께 영어교육이 사교육 시장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다면, 이것을 일정부분 공교육의 틀로 흡수하여 소득격차가 영어격차로 전이되도록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정책적 판단이어야 한다.

 

  영어 사교육 만연… 공교육 흡수해야 초등 1·2학년 영어 방과 후 문제는 단순히 허용이냐, 금지냐 하는 문제를 떠나, 영어 능숙도, 모국어 능숙도, 언어정체성, 영어 및 모국어에 대한 학습 동기, 영어학습에 대한 스트레스 등에서 어떠한 영향을 나타내는지 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심리적인 면도 고려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영어와 관련된 다수의 심리적인 면을 살피면서도 정책을 통해 전환하려고 하는 패러다임의 당위와 현실적 필요를 실감하게 만드는 정책조합(Policy Mix)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 금지는 뜨거운 얼음에 비유할 수 있다. 뜨거운 얼음을 만든다는 것은 정책의 핵심관문을 적확하게 설정하고, 핵심관문을 넘어서기 위해서 심리·정서적인 면을 고려하면서 구체적인 로드맵 작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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