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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의 눈으로 보는 수업-평가-기록

교실 수업 속에서 이뤄지는 평가 학생 성장 관찰·피드백 가능

글_ 강민서 안산 부곡고등학교 교사



01 학생이 성장하는 수업을 상상하다


‘모든 학생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듣고 말하고 글을 쓰는 역량을 재미있게 키워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의 시간이 가장 긴 지점은 역시 성취기준 재구조화 단계이다. 내가 만난 아이들 수준에 맞는 한 학기 수업 목표지점이 어디이며,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과 과정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성장하는 학기가 될 수도 있고 힘든 학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학기 전체를 맥락적으로 이어가면서 학생의 성장을 지향하는 수업, 이를테면 단기간에 최고의 결과를 내는 수업이 아니라 학교에서의 배움이 평생 어떤 것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수업은 교사의 고민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02 피드백 후 성장한 지점을 평가에 반영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글쓰기나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역량도 제각각이다. 자신이 작성한 글에 대해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지속적인 성장의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에는 예민해지고 성장은 나중 일이 된다. 설상가상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를 영상이나 스마트 폰으로 해결하는 아이들은 긴 글을 읽거나 논리적 글쓰기 활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실용국어는 2학년 아이들의 선택과목으로 2019년에는 등급까지 산출해야 하는 과목이었다. 직업 분야에서 직무 수행을 하는데 필요한 실용적인 국어 사용 능력을 기르는 과목으로 ①직업 분야에서의 직무 수행을 위한 국어 사용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②직무 수행에 필요한 다양한 국어 사용 능력을 기르며, ③다양한 직무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태도를 기르는 과목이다. 1학기에 직무 어휘와 어법에 비중을 두었다면 2학기에는 듣기·말하기와 글쓰기를 통한 표현하기에 조금 더 무게를 두었다. 특히 글쓰기는 꾸준하게 반복하는 과정에서 느리게 성장한다.

  1학기 첫 시간에 간단한 글쓰기 평가를 해 보았다. 글쓰기 후 한 명 한 명 피드백하고 공통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오류나 부족한 부분을 중점으로 수업을 진행한 뒤 한 학기가 끝날 즈음 똑같은 활동지로 다시 글쓰기를 해 보았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실망도 컸다. 학기 초에 비해 글쓰기가 많이 좋아졌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2학기 수업을 하면서 피드백을 더 강화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가능하면 수업 중에, 개별적으로, 글쓰기 단계별 구체적인 피드백이 되도록 할 것과 피드백 받은 내용을 개선하고 익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 공간 변화에 관심이 많은 동아리 선생님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민주적 관점으로 학교 공간 읽기’를 1차 주장하는 글쓰기로 정했다. 학생들에게 익숙한 학교 공간을 ‘민주적 관점’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학교를 읽고 문제점을 찾아 개선 방안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였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글쓰기 단계별 방법을 익힌 다음 1차 주장하는 글쓰기를 실시하였다. 1차 글쓰기 이후 개인별 피드백을 한 후 피드백 내용을 중심으로 고쳐 쓰기를 하면서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2차 주장하는 글쓰기는 1차와 주제를 달리하고, 1차 피드백 항목에 대한 개선과 성장의 정도를 2차 글쓰기 평가에 반영하였다<[그림] 참조>.

  ‘피드백 개선 여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어 점수 반영을 최소화하고 개인별 피드백 내용 중 개선된 사항이 하나도 없는 경우에만 최하 점수를 주도록 하였다.

  어떤 형태로든 평가는 학생들에게 부담이다. “선생님, 그냥 한 방에 망하는 것이 나아요!” 하며 평가에 대한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학생도 있다. 과정 중심 평가에서 교사의 피드백은 학생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도움을 주는 동시에 교사의 수업 방향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일이다. 주장하는 글쓰기에서 단계별(개요 작성하기, 문단쓰기, 초고쓰기 등) 과정은 평가에 반영하지는 않았지만, 피드백과 충분한 연습이 평가에 대한 불안을 줄이고 글쓰기 자신감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나 만족도는 1학기 때보다 훨씬 좋았다. 수업 속에서 다뤄진 주제가 학교 공간 개선 사업으로 이어지는 신선한 경험도 했다. ‘홈베이스 온돌마루 설치, 코인 노래방 설치, 운동장 그네 설치, 구령대 폐지’ 등 학생들이 제안한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여 공간을 개선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03 수업의 본질을 고민하는 교사

  2019년 2학기 ‘실용국어’와 ‘독서’ 두 과목을 가르쳤는데, 역시 쉽지 않은 한 해였다. 수업과 평가에 대한 부담도 2배로 늘어났다. 진도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어떤 것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분명 당연한 일임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동료 교사의 협력도 필요하다. ‘하던 대로’에서 ‘정말 이렇게 하는 것이 맞을까’를 고민하고,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필요한 배움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수업의 주도권이 점진적으로 학생에게 이동해 가는 수업, 수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치러지는 평가, 학생 성장을 위한 관찰과 피드백이 가능한 수업은 배움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하다. 또 개별 학생마다 배움의 속도와 방법이 다름을 수용하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상대평가를 통한 석차나 등급을 산출해야 하는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땅히 교육 제도의 변화, 교육 환경의 개선도 따라주어야 하겠지만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어떤 역량을 키워 줄 것인지를 고민하며 자신만의 수업을 상상해야 한다.

  변화는 저항을 동반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오는 어설픔을 껴안으며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성숙은 더디고 실패 구간에서의 불안함은 ‘하던 대로’의 유혹을 불러온다. 그러나 그 불안함의 힘든 구간을 지나야 나도 학생도 성장한다. 학교에서의 배움이 성적과 등급을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난 학년에서 다음 학년으로, 학생의 현재 삶의 공간으로, 학교 밖 생활 속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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