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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 국립대의 위상과 역할


글_ 김상동 경북대 총장


‘지역의 거점 국립대가 제 역할을 하여야
지자체가 다시 한 번 도약한다’


  국립대란 전국의 대학 가운데 교직원 인건비 등 대학운영관련 정부의 재정지원이 법적으로 보장되는 대학을 말한다. 그중 거점 국립대학은 국가와 지역을 위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여 국가의 혁신적인 발전을 수행하는 전초적인 기지 역할을 담당한다. 거점 국립대학교는 73년 전 설립된 국립대학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국가와 지역을 위해 교육기관은 끊임없이 사회의 혁신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학업과 과거합격이 주목적인 성균관이나 향교와 기능이 달랐던 조선시대의 서원도 혁신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유네스코에 의해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서원은 유학의 성현들을 모시고 향촌질서를 정하는 역할도 있었지만, 지역민을 계도하는 교육기능과 종합학문연구와 지역과 국가의 발전 기능을 담당하는 융합연구소로서의 기능도 있었다. 현재의 거점 국립대학의 모습과 닮아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조선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수도권 쏠림현상, 균형 발전 위한 극복 과제


  지난 9월 마침내 수도권 인구가 대한민국 전체인구의 50%를 돌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가의 모든 분야의 인재들과 기반들이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 아니 정착되고 있다. ‘인 서울’이라는 말로 수험생들의 모든 시선이 수도권에 위치한 대학에 쏠리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지방에 위치한 대학을 졸업하거나 졸업 예정인 학생들 역시 수도권으로 취업을 희망한다. 취업뿐만 아니다. 창업이나 공부를 위해서도 수도권으로 거주를 옮긴다. 대한민국의 수도권이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구비된 곳이다. 이런 수도권에 대한 비정상적인 쏠림현상은 대한민국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이다. 거점 국립대학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시급해 보인다.

  국가의 선도적 발전과 인간 삶의 향상은 모든 국가의 목표이다. 따라서 국가의 중요한 학문연구와 인재양성을 책임지고 있는 대학의 목표 역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교육부와 거점 국립대학은 세계를 앞서가는 전략을 깊이 생각하며 혁신적인 인재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전략을 수행하는 방법이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했다. 교육부 역시 LINC+ 사업, BK+ 사업 등 다양한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국립대학과 긴밀한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거점 국립대학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사회적 요구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주요 원인이 있다고 본다.


교육기관 역할 넘어 지역 산업 활성화 견인


  대학은 초중등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고등 교육과정을 제공해, 사회 각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배출한다.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고령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평생교육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대학의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라는 역할은 그저 지금까지 인류가 전해온 지식과 정보의 전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정의 핵심에는 현시대의 요구를 반영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눈과 이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는 국가 산업은 물론 미래 기술을 주도할 수 있는 기술개발로 연결되어야 하며, 지역의 산업 발전과도 끈끈하게 연관을 맺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과정에 현재 산업과 미래 기술개발에 대한 내용을 담고, 그 방법에 혁신과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해야 하는 거점 국립대학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혁신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교육방법은 교육 운영의 주체가 되는 교수 개인의 경험과 역량이 바탕이 되어 나타난다. 이제 국립대학, 특히 거점 국립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넘어서는 새로운 기능과 임무가 필요하다. 교육부는 국가 인재 양성을 위해 거점 국립대학에 이에 걸맞은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국가의 주요 대학이 지역 산업 활성화를 이끌고 국가 발전을 견인할 수 있도록 대학이 진행하는 연구와 그 결과, 그리고 이를 통해 산업화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가 발전을 이끄는 대학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앞서가는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인재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거점 국립대학을 연구중심대학으로···


  인재양성과 원천기술 연구는 다양한 전공에 바탕을 둔 융합연구와 그 연구를 기본으로 하는 혁신교육토양을 갖춘 거점 국립대학의 자원에 달려 있다. 대학은 가장 창의성 있는 연령대의 학생을 교육시키고 연구방법을 깨우쳐 줄 수 있다. 지역산업체의 생산성 향상과 미래 기술의 선점이 지역균형발전에 요체가 된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인재의 지역 정주 여건의 향상과 이로 인한 거점 국립대학과 지자체, 그리고 산업체의 유기적 협력체계 구축을 먼 미래의 일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라 본다. 이런 선순환 구조의 구축과 원천기술연구에 대한 국외 의존을 탈피하기 위해 거점 국립대학의 연구기능을 강화하고, 정부출연연구소를 거점 국립대학과 공동운영하는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 연구기술 경쟁에서 우리가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국립대학을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으로 역할을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고등교육법에 거점 국립대학의 강의 시수 경감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거점 국립대학의 역할을 연구중심대학으로 탈바꿈 시키는 법제화는 필연적으로 주요선진국의 명문대학과 연구 분야에서의 격차를 점차적으로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소규모 강의를 대폭 늘려야 한다. 소규모 강의는 교수와 학생의 접점을 획기적으로 늘려 학생들의 사고력과 표현력이 크게 증진될 것이다. 학생들의 수업만족도 향상은 물론 지역 산업체의 요구를 교육현장에 반영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부수적으로 학생들에게 다채로운 강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물론 학문후속세대라 불리는 강사들에게 보다 많은 강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연구기술 분권의 주체로서 거점 국립대학의 역할 정립은
지역대학들을 선도하고 지역산업체의 기술적 고민을 해결하고,
훌륭한 지역 인재 양성에 도움이 될 것이고,
나아가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완성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거점 국립대-출연연-지자체 유기적으로 연결


  대학의 연구 결과가 지역 산업과 직접적이고 효율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거점 국립대학의 세계적 경쟁력이 지역산업의 세계적 경쟁력 확보로 이어지고 지역혁신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인지하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교육기능만 강조된 거점 국립대학이 지자체와 국가의 산업발전 정책에 수동적 대응을 해 왔고, 또한 실효성 있는 기초연구와 산업화 연구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거점 국립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와 지자체가 서로 유기적인 역할을 해내지 못했기에 이의 개선을 위해 거점 국립대학은 장점이 있는 각 대학의 특성화분야와 매칭이 되는 정부출연연구소를 공동운영하고 지자체와 혁신체제를 구축하여 국가와 지역의 산업발전과 문화 창달을 주도하는 플랫폼대학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공공기관의 이전 정책은 지역혁신플랫폼으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지만 현실화 되지 못했다. 이는 혁신도시 완성에 연구기술개발을 주도할 거점 국립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 및 지자체의 혁신체제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점 국립대학은 풍부한 인적자원에 비해 재원이 부족하고, 지자체는 재원은 있지만 기술개발 분야의 인적자원이 없고, 정부출연연구소는 인적자원과 재원은 있지만 지역 산업체와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으로 인해 산업체기술의 질적 전환에 적극 개입을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 3주체 중 어느 하나도 혁신체제구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연구기술이 산업화로 이어지는 플랫폼대학


  해외의 경우를 살펴보면, 플랫폼대학의 성공적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서 자주 거론되는 북유럽 국가 가운데 하나인 핀란드의 알토대학은 인구대비 세계 1위의 벤처 및 스타트업 창업의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독일의 드레스덴 공대는 주변 10개의 과학기술대학 등과의 상호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막스플랑크 연구소 등과 협력하는 유럽 최고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플랫폼대학으로 위치가 공고하다. 그러나 우리가 눈여겨 볼 사례는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연구소는 그 역할의 변화가 요구되었다. 연구소는 폐쇄가 아닌 미국 주립대학교 혁신 플랫폼으로 역할을 전환했다. 그 결과 지난 세월 오랫동안 캘리포니아 버클리대가 위탁운영 받아 타 주립대학과의 교수 및 대학원생의 연구협력기지 역할을 수행하였고, 최종적으로 대부분의 미국 주립대를 세계적 명문대 반열에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국립연구소는 그 국가의 목적 거대과학 연구수행을 목표로 하지만 대부분의 세세한 연구는 각 지역에 있는 대학 교수와 박사들에 의해 수행되고 그 결과의 시너지로 연구기술이 산업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북대학교도 플랫폼대학으로서의 역할을 시도하고 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 그리고 지역 기업체들과 함께 역동적인 정책을 시행중이다. 바로 휴스타로 불리는 대경혁신인재양성사업이다. 이 사업은 42개월 760억 원을 투입하는 혁신대학과 혁신아카데미를 주요 골자로 볼 수 있다. 혁신대학은 로봇과 ICT 분야의 대학 3, 4학년 인재양성 지원프로그램이고 혁신아카데미는 대학졸업생의 지역기업취업 기술 준비프로그램이다. 사업은 ‘지역의 거점 국립대가 제 역할을 하여야 지자체가 다시 한 번 도약한다’는 철학에 기인한다. 실질적인 보텀 업 방식의 지역혁신이 대학과 지자체를 중심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소식을 들은 정부에서는 우리의 대경혁신인재양성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정부 매칭펀드 사업으로 채택한다고 한다. 이 사업의 주요 목표는 지역산업의 신기술 개발과 지역 인재의 지역정주와 수도권 인재의 지역을 유도하는 것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지자체-대학 혁신사업 지원은 지역플랫폼대학 구축에 핵심적인 재원이 될 것이다.


연구기술 분권의 주체로서의 거점 국립대학

  연구기술 분권의 주체로서 거점 국립대학의 역할 정립은 지역대학들을 선도하고 지역 산업체의 기술적 고민을 해결하고, 훌륭한 지역 인재 양성에 도움이 될 것이고, 나아가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완성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국가와 지역발전에서 거점 국립대학의 역할은 재차 강조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거점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고등교육체제를 재정립하여, 과거 서원이 그랬듯이 지역 사회의 교육과 문화, 산업발전에 필요한 요람이자 플랫폼, 전진기지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균형된 지역 발전이 가능하고 대한민국의 화려한 부활을 꿈꿀 수 있다.




김상동 경북대 총장은
경북대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교수, 교무부처장, 기획처장을 비롯하여 교육과학기술부 기초기술연구회 신임직 이사,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9년 대한수학회 우수논문상을 수상하였으며, 2004년 과학기술부 세계적선도과학자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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