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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 ‘학교’

글_ 황덕자 광주어룡초등학교장

 

획일적 구조의 획일적 건축물 ‘학교’
학교 공간이 달라지니 학교 문화가 달라졌다
학교시설 환경 개선, 공간에 마음을 담자

1. 2. 3.  광주어룡초 4층에 마련된 ‘꿈·끼 동아리 공간’ 이곳에서 아이들은 각종 경연대회를 비롯해, 댄스연습, 독서토론 등 다양한 동아리활동을 한다.

 


  ‘창의적인 공간이 창의적인 사람을 만든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간의 의미는 단순한 시설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 공간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활동을 하며, 또 어떤 문화가 그 속에 있는지를 모두 포함한 공간의 의미일 것이다.
  방학을 맞아 통영을 다녀왔다. 언덕 위 찻집에서 내려다 본 도시 풍경은 아름다웠다. ‘저기 저 곳은 학교다.’ 학교 건물은 누구나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동안 학교는 학생들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공간구조를 가져왔다. 시대가 변하고 교육과정이 변하고 학생들의 의식구조와 생활태도가 바뀌었지만 교육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가 없었다. 이제 학교 공간은 학생들의 삶의 공간으로 변화해야 한다. 우리 교육은 이미 학습과 쉼, 그리고 놀이가 어우러지는 미래지향적 교육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넓은 복도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어룡초등학교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공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교 주변에는 문화 시설이나 놀이 공간이 전혀 없이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다. 현재는 전체 38학급에 900여 명의 학생과 90여 명의 교직원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어룡초는 열린교육 바람이 한참 불던 2004년에 개교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학교에 비해 교실과 복도의 넓이가 1.5배나 넓게 지어졌다. 복도와 복도가 만나는 곳에는 교실 한 칸 크기의 큰 공간이 층층마다 5곳
  어룡초에 부임하고 1년 동안, 이렇게 넓은 공간이나 복도에서 어떤 교육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노는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생활지도 베테랑 선생님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이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넓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학교 공간 활용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4학년 학생들이 ‘행복한 어룡동 만들기 프로젝트’ 라는 주제로 프로젝트 수업을 했다. 행복한 어룡동을 만들기 위해 광산구청장님을 모시고, 구청에서 해야 할 일을 제안하는 수업이었다. ‘사유지를 사서 휴식할 수 있는 공원을 만들어 주세요.’, ‘학교에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세요.’, ‘저녁에 길이 어두우니 가로등을 밝게 해 주세요.’ 등등. 이 수업이 계기가 되어 광산구청의 연계로 서울에 있는 벤처기부회사인 c-program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었다. 6개월간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학교 공간 사용자들이 공간 사용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관찰하기(공간사용자 관찰하기)-상상하기(인사이트 투어)-만들기(프로토타입)-시공의 4단계로 진행된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 첫 단계는 ‘관찰하기’였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고 가장 많이 바뀌게 되었다. 학교에서 학생이나 교직원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학생이 학생을, 학생이 선생님을, 선생님이 학생을 한 달 정도 관찰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그룹으로 보였다. 활동적으로 노는 남자아이들, 정적으로 앉아서 노는 아이들, 몰려다니며 화장실에서 군것질하며 수다를 떠는 여자아이들 등등.
  다음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가슴(마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무던히도 추었던 겨울, 넓고 차가운 복도바닥에 앉아서 핸드폰 게임을 하며 방과 후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어떤 아이는 창가 너머 삭막한 공장지붕을 바라보며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학습의 공간이면서 삶의 공간, 힐링의 공간이어야 했는데, 아이들을 위해 학교는 아무것도 배려하지 않고 있었다.

 

공간을 아이들에게 돌려주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찾아보았다. 차가운 복도에 앉아 방과 후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강당에 높이 쌓아둔 매트를 가져다 복도 한쪽에 깔아 놓아보았다. 아이들이 그쪽으로 몰려와서 눕기도 하고, 누워서 책을 읽기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었다. 창가에 기대어 사색하는 아이를 위해서는 창고에 쌓아둔 컴퓨터 책상과 의자를 꺼내어 햇빛 드는 창가에 배치하고 예쁜 꽃도 놓아주었다. 활동적인 남자아이들을 위해서는 개교할 때 사서 비닐도 채 벗기지 않고 새것 상태로 창고에 그대로 방치해둔 탁구대를 꺼내어 넓은 빈 공간에 놓아주었다. 학교 이곳저곳을 이렇게 아이들에게 돌려주었다.
  아이들을 위해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많이 있었다. 그랬더니 학교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노는 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 너무도 행복해했다. 그래서 느낀 것이 ‘학교 공간 사업이 꼭 시설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학교 공간에는 따뜻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고 싶고, 더 머물고 싶은 곳 ‘학교’
  학교는 ‘오고 싶고, 더 머물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
  학교 어딘가에는 아이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 곳에 가면 친구들이 있고, 하고 싶은 무엇이 있고, 그곳에 가면 내가 몰입할 수 있는 뭔가 ‘꺼리’가 있는 곳. ‘그런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
  그래서 지난해에는 아이들과 함께 4층 공간에 ‘꿈·끼 동아리 공간’을 만들었다. 댄스 연습, 독서 토론, 보드게임, 메이커 공간 등 다양한 동아리부서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이곳에서 학생회 주관으로 매일 중간놀이 시간에 ‘장기 자랑 경연대회’를 열었다. 매일 3~4팀이 장기 자랑 발표를 하고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그런 곳이 되었다. 학교 공간이 바뀌니까 학교 문화도 달라져 갔다.
학교 공간 재구성 사업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아이들이 학교 공간 속에서 주체적인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지금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교실 공간’에 주목하며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는 곳이 교실이기 때문에 교실 활용과 교실 배치도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왜 모든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서만 공부해야 하는지?’,
‘왜 교실 정면만 바라보고 수업해야 하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고, 교실 공간의 주인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잘 해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4. 5.  “교실을 아이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교실 활용과 교실 배치도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

 


공간 혁신은 또 다른 이름의 ‘교육 혁신’ 
  우리 아이들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이 ‘학교’이다.
  그래서 학교는 ‘오고 싶고, 더 머무르고 싶은 곳’이어야 하며, 집처럼 안락하면서도 쉼이 있는 힐링의 공간이어야 한다. 학교 공간의 변화는 학교 문화를 바꾸고 다양한 수업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 혁신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교육부와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추진하는 학교시설 환경 개선 사업은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일선 학교에서는 학교 공간 재구성 사업을 단순히 물리적 시설이나 공간 개선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교육가족들과 머리를 맞대고 학교, 교실 공간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부터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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