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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

글_ 이혁규 청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학생들의 장래 희망 직업 1순위가 교사이다. 10년이 넘도록 이런 경향이 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자를 기준으로 매우 우수한 인력이 교사양성대학을 지망한다. 교사 부족 현상에 시달리는 선진국의 많은 나라와 너무 다른 상황이다.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할 만하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입장은 못 된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어느 사범대학을 방문했더니 1층이 모두 임용고사 준비실이었다. 밤새워 공부하는 열기가 느껴졌다. 이런 풍경화가 종합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명료하다. 중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경쟁적인 입시 문화를 견뎌내야 비로소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수한 인력이 힘겨운 경쟁을 통해서 교사가 되는 현실은 일견 한국 교사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증표로 보인다. 적어도 한국의 학교에서는 교사가 실력이 없어서 잘못 가르칠 가능성은 외국에 비해서 현저히 낮다.


  그러나 이런 밝은 면 뒤에는 함께 고민해야 할 위태로움도 존재한다. 교사들은 대부분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던 사람들이다. 그 때문에 공부가 어렵고 학교에 부적응하는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위험성이 크다. 좋은 대학 합격을 지상 목표로 생각하는 중·고등학교 문화 속에서 차별적인 혜택을 더 많이 받았을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깊은 성찰이 없으면 정의롭지 못한 학교의 관습을 당연시할 수 있다. 대학 교육 못지않게 사교육 스타 강사나 노량진 입시 학원의 세례를 받고 교사가 되는 것도 문제이다. 새로운 사회가 요구하는 학생 참여형 수업에 노출되고 이를 훈련할 기회가 부족하다. 그런가 하면 자신은 가장 안정적인 직업군에 속해 있으면서 21세기의 변화무쌍한 사회 속을 항해할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연배가 있는 교사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배우지 않았던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는 능력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필자는 오늘날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자신이 배운 대로 가르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교육학자 하그리브스도 “자신이 배우지 않았던 방식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21세기 교사에게 필요한 전문성 요소로 열거한 바가 있다. 이 추상적인 언명에 필자 나름으로 구체성의 옷을 입히자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의 교사는 우등생에게 더 친절한 학교를 넘어서서 모든 학생들이 존중받고 온전한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학교를 창조해야 한다. EBS 문제와 다섯 개의 좁은 선택지에 가두는 교육을 넘어서 자유롭게 상상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창의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교육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온통 위험하니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 한다며 공포를 설파하는 대신에 학생들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모험을 감행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도록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배운 대로 가르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의 밑바탕에는 끊임없는 학습 능력이 전제되어 있다. 21세기 교사의 존재론적 본질은 가르침의 탁월성이 아니라 배움의 진정성과 지속성에 있다. 이전에 배운 것이 새로운 학습을 방해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문제시되는 역사의 현 시점에서 개별 교사는 매일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배움은 당연히 동료 교사들과 함께 가꾸는 실천 공동체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 한국의 교사 문화가 고립적이고 개인주의적임은 여러 연구가 지적해 온 바이다. 다행히 지난 10여 년 동안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학교 혁신의 물결로 인해서 동료성이 서서히 구축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낙관하기는 이르다. 이질성과 다원성이 강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교사 공동체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지를 자문해 본다. 오직 한 가지 답만 떠오른다.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배우겠다는 동기를 공유하는 것! 그것만이 오늘날 교사 공동체를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공통성의 토대가 아닐까 한다.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 좋은 사회 사유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교사는 좁은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 좋은 사회를 사유해야 한다. 교사의 실천은 좋은 사회에 대한 전망, 상상, 책무성과 분리될 수 없다. 인간 존중, 평등, 배려, 사회정의, 공공성 등은 교사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적 가치이다. 교사는 자신의 교육적 실천이 이런 가치에 튼튼한 닻을 내리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필자는 교사의 사회적 책무를 생각할 때마다 교사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헌법 제 31조가 생각난다. 왜 많고 많은 직업 중에 교원의 지위가 헌법 사항일까? 교사들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양성하는 공적 책무를 안고 있는 신성한(?) 직업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 점에서 교권을 온전히 세우는 것은 옛 스승의 향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교사로서 공적 책무성을 자신의 교육 실천과 끊임없이 결합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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