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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인간의 삶과 교육에 들어오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책임연구원

  1998년 9월, 새천년을 앞두고 미국의 <라이프>지는 1001년부터 현재까지 지난 천 년 동안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100개의 사건과 100명의 인물을 선정해 특별호를 발행했다. 구텐베르크의 성경 인쇄가 1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2위로 다분히 서구중심적 시각이었지만 천 년의 인간 역사를 돌아보는 역사적 성찰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100대 사건의 면면을 보면 루터의 종교개혁, 미국독립선언, 프랑스대혁명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함께 인쇄술, 증기기관, 화약, 전화, TV, 트랜지스터, 페니실린 발명 등 위대한 발명들 그리고 지동설, 진화론, 만유인력, 유전법칙, DNA 등 위대한 과학적 발견들이 망라돼 있다. 인류 역사에서 과학기술의 비중이 압도적임을 실감할 수 있다. 가장 영향력이 컸던 100명의 인물에서도 1위 에디슨, 4위 갈릴레이, 6위 뉴턴, 8위 파스퇴르 등 과학기술자가 많았고, 10위권 내 무려 6명이 과학기술인이었다. 


  2014년 과학방송 YTN 사이언스의 다큐멘터리에서는 미래를 바꿀 5대 첨단기술로 웨어러블 디바이스, 인공지능, 무인화기술, 3D 프린터, 시뮬레이션 등을 꼽았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국 이후 인공지능은 단연 변화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라이프>지가 100대 사건을 선정할 당시만 해도 인공지능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만약 지금 다시 선정한다면 분명 최상위권에 랭크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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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기자, 인공지능 앵커가 도입되는 시대

  최근 들어 인공지능은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분야도 전방위적이다. 2016년 말 가천대길병원 등 대형병원들은 데이터 기반으로 암 진단을 해주는 IBM의 인공지능 왓슨을 도입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때 연합뉴스는 AI 로봇기자 ‘올림픽봇’을 운영했다. 매 경기가 끝난 후 국제올림픽위원회 공식 플랫폼으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기사를 작성하고 웹 사이트에 속보를 올리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2초였다. 2020년 11월에는 MBN이 국내 최초로 딥러닝 기술을 장착한 인공지능 앵커를 도입해 AI 방송시대를 열었다. 인공지능 앵커는 감정 부분은 좀 어색했지만, 발음이나 목소리 톤은 실제 사람 앵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송 스태프나 사람 앵커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도 인공지능 앵커는 언제든 속보를 전해줄 수 있다. 


  어느새 ‘포노 사피엔스’가 돼버린 우리는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쥐고 다닌다. 만능기기 스마트폰에도 인공지능이 내장돼 있다. 음성을 인식해 필요한 정보를 검색해주고 메일도 보내주며 일정관리도 해준다. 각 가정에 보급된 인공지능 스피커는 오늘의 날씨도 알려주고 선호하는 취향의 음악도 찾아주고 집안의 가전제품도 제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쯤 되면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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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두뇌의 연장, 생각의 확장 매개체

  캐나다의 문명비평가 맥루언은 미디어는 인간 감각의 ‘연장(prolongation)’이라 설명했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인간 감각은 유한하므로 그 감각을 연장하기 위해 만든 기술적 산물이 미디어라는 것이다. 맥루언에 의하면, 망원경, 현미경은 눈의 연장이고 전화는 귀와 입의 연장이며 텔레비전은 눈과 귀의 연장이다. 과학기술로 개발된 매개체 덕분에 인간은 감각을 확장하고 능력을 증폭할 수 있었다. 커뮤니케이션이나 방송에 이용되는 매개체만 미디어인 건 아니다. 인간이 감각과 능력을 확장하여 사용하는 기술적 도구들은 모두 미디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인간 두뇌의 연장이며 인간의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매개체다. 알파고는 기발한 바둑 묘수를 찾아내고 무한한 경우의 수를 빠르게 계산해주는 미디어고, 에듀테크 AI는 인간의 학습능력을 확장해주는 미디어라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은 산업, 경제, 금융, 방송, 통신 등 사회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교육 분야도 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민간교육기업들은 인공지능 학습 코칭, 빅 데이터 기반 학습관리시스템 등 AI를 교육에 접목한 에듀테크 서비스 상품을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로 비대면 교육, 재택학습이 확산되면서 공교육에서도 인공지능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인공지능은 교수학습 방법, 교육과정, 학습관리 및 평가시스템 등 모든 면에서 교육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인공지능이 교육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학생들은 인공지능 튜터의 도움으로 개인맞춤형 학습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개인별 학습이력관리나 자기주도 학습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인공지능은 유용한 학습 자료를 척척 알아서 찾아줄 것이고, 공부하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언제든 막힘없이 가르쳐 줄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의 부작용과 위험도 있겠지만 인공지능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인공지능을 비롯해 과학기술의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해서 과학기술을 버리고 거꾸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가령 계산기를 한번 생각해보자. 교육적 관점에서 계산기는 인간의 산술능력을 방해하는 비교육적 도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계산기 사용은 오늘날 더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려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이나 시험 시간에 자유롭게 계산기를 사용한다. 프랑스는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수학강대국이지만 학생들의 계산기 사용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한다. 누구도 계산기가 인간의 수리연산 능력 개발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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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도입한 미래 교육에 대해 논의할 때 

  제주도에 가면 게임회사 넥슨이 운영하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 어딘가에 “나는 컴퓨터가 두려운 게 아니라 컴퓨터 없는 세상이 두렵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명암을 이야기하면서 과학기술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과학기술이 없는 암흑세상이다. 첨단과학기술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자동차,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이 없는 세상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인공지능이 훌륭한 교수학습도구가 되는 미래에는 인공지능 없는 교육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오히려 인공지능을 배우고 활용하는 것이 당연해질 것이다. 이제 교육계는 머리를 맞대고 당장 학교교육에서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가르칠지, 앞으로 인공지능이라는 미디어를 교육에 어떻게 활용할지, 인공지능을 도입한 학교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등 예견되는 제반 이슈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책임연구원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책임연구원

사이언스타임즈 편집인, 과학문화협력단장 등을 역임했으며, 포항공대와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4차 산업혁명시대 문화경제의 힘>, <4차 산업혁명과 인간의 미래>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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