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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정치화’가 걱정되신다고요?


글  조영선 영등포여자고등학교 교사



교사가 바라본 만18세 선거권과 선거교육

  선관위가 학교 내 모의선거 금지 결정을 내리면서 선거연령이 하향되어 첫 선거를 앞둔 고3 학생들의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학교 앞에서 선거운동원들이 명함을 돌리고 그것 때문에 학교 안팎이 지저분해질까 봐 걱정이지만, 오히려 걱정해야 할 것은 그 명함에 홍보된 내용 이외에 학생들의 선택에 필요한 근거에 대해 학교에서 토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공약들은 다 국회의원이 할 수는 있는 일이야?”,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 때도 똑같은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이 공약들이 나의 현재 삶과는 무슨 관련이 있지?”, “정당은 다른데 공약은 똑같네. 왜 경쟁하는 거야?” 등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각 정당이 지금까지 정치를 해왔던 역사나 무슨 법을 만들어왔는지 후보들에게 직접 묻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선관위의 가이드라인이 교사와 학생을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마도 선관위가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내린 배경에는 교사의 영향력에 대한 학교 안팎의 우려 때문일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아도 교사가 평소에 사회문제와 관련하여 하는 말과 뉘앙스를 통해 학생들이 교사의 지지 정당을 추측하고, 자신의 투표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실제 학생들이 평소에 존경할만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자신의 선택에 참고할 수 있다. 아니면 반대로 교사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서 학생들이 그 교사가 지지하는 정당은 절대 찍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럴 가능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실제 청소년이 아닌 사람들도 평소에 정치에 관심을 가질만한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면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의 선택을 참고하거나 가장 불신하는 사람과 반대되는 선택을 한다. 

  오히려 학교에서의 문제는 이러한 대화가 금지된다는 데 있다. 뉘앙스를 풍기는 것 외에 구체적으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근거와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인간의 정치적 선택은 다양한 맥락을 포함한다. 원외 정당을 지지하지만 사표가 되는 것이 싫어 원내 정당을 선택하기도 하고, 지지하는 정당은 아니지만 특정 활동을 했던 후보의 이력이 맘에 들어 지지의사를 표명하기도 한다. 또는 어떤 정책을 처음으로 내놨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이번에 학생인권법을 당론으로 정책화하는 정당에 투표할 생각이다. 그 정당이 평소에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유권자들이 처음으로 참여하는 선거에서 선거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주체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법이 제21대 국회에 만들어지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맥락에서 국민의 선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당을 견제하면서도 야당에게 몰표를 몰아주지 않는 국민들의 절묘한 선택’ 등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교실의 정치화는 각자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대화하는 것일 수 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무엇이고, 이것이 정치와 어떤 연관이 되어있는지에 대해 깨닫는 과정일 수 있는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은 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영향을 받고, 그러한 영향에 반발한 학생들이 ‘강압이었다’고 교사를 고발할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있는 것 같다. 학생들에게 교사의 영향을 눈앞에서 되받아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면 교사의 영향력은 토론과정에서 조율될 수 있다. 만약 내가 학생들에게 학생인권법을 정책으로 내놓는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말했을 때, 학생들이 “선생님, 그런 말씀 하시기 전에 선생님이 학생인권을 먼저 존중해 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이 대화는 교사의 삶과 지지하는 정치에 대한 일치의 문제로 논점이 바뀔 것이다. 또는 학생들이 “그 정당이 ○○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아십니까?”라고 말한다면 한 정당이 사안에 따라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자기 삶의 우선 순위에 따라 정치적 결정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토론할 수 있다. 

  이렇듯 교실의 정치화는 각자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대화하는 것일 수 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무엇이고, 이것이 정치와 어떤 연관이 되어있는지에 대해 깨닫는 과정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규제 중심의 선거교육 때문에 모두 침묵하고 “선생님, 우리 학교에서 이런 얘기 해도 돼요?”라고 자기 검열하는 것이다. 아니면 이런 얘기조차 못 하는 학생들은 조용히 교육청에 신고할 수도 있다. 표현의 자유를 통해 견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은 드러나지 않는 신고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표현일 테니 말이다. 

  또, 학생들이 잘못된 정보로 정치적 판단을 하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학생들이 왜 SNS와 동영상 채널을 통해서만 정치를 접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학교 안에서 제대로 토론하고 논쟁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하듯 인터넷을 떠도는 정보는 일방적이다. 일방적인 만큼 팩트체크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보가 만들어지거나 퍼지는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만약 이것이 정말로 걱정된다면 학교 안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팩트체크 교육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적 사안에 대해 교사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것이 금지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질문이 생겨도 교사에게 물어볼 수 없다. 혹시 질문이 들어와도 교사들은 “정치적인 것은 묻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유일하게 친절한 답변과 나름의 논리적 전개로 정치의식을 구축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SNS와 여러 인터넷 사이트, 그리고 동영상 채널 등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정치적 대화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편향된 소스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청소년의 목소리에 정치적 힘을 부여해야

  후보자들이 학교를 휘젓고 다닐까 봐 걱정된다면 학생들이 직접 후보들을 초청하여 정당 연설회를 열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아마 바쁜 일정에서 청소년 유권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올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지 않을 테지만, 학생들은 박제화된 명함 뒤에 숨어있는 후보들의 민낯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기존에 정치인들이 제출한 공약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들의 삶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법을 만들고, 그것을 공약으로 받을지 말지에 대한 토론회를 열 수도 있다. 그러면 기존의 정당 중에 누구를 고를까가 아니라 학생들이 만드는 정책을 국회에 반영하는 과정이 정치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또, 현직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학교 시설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는 등의 의정활동에 대해 눈여겨보면서 지역 사회에 정치인들이 미치는 영향도 알게 될 것이다. 학생들은 그 누구보다도 어떤 것이 옳은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 판단에 따라 학생들의 표정은 귀신같이 달라진다. 만18세로 선거연령을 하향한 것은 학생들의 이러한 생각을 침묵이 아닌 정치적 행위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학생들의 목소리에 힘을 부여한 것이다.

  학생들이 권리를 누리는 데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교육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유권자로서의 힘을 행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교과서 안의 민주시민교육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힘을 대신해서 국민을 위한 국가를 만드는 데 힘쓴다고 가르치지만, 누구의 말대로 현실에서의 시민은 4년에 한번만 주인이 되는 노예와 같다. 

  학생들이 정치에 휘둘리는 게 싫다면 학생들이 정치적인 힘을 휘두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정치가 더럽게 느껴진다면 학생들과 함께 바꾸자고 해야 한다. ‘학교 밖의 더러운 정치vs정치 없는 학교’라는 구도가 당사자들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보고 느낀 이들이 바로 청소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일궈낸 제도적 변화인 선거연령 하향을 다시 무력화시키지 않으려면 이런 제도적 변화에 힘입어 학교에서 대자보 붙이기, 정치토론회 또는 집회의 개최 등 학생들의 정치 표현의 자유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 운영위원회의 학생참여나 학생회 법제화 등 일상적으로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정치적인 힘을 부여해야 한다. 이것이 만18세 선거권의 시대, 민주시민교육이 가야할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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