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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의 명소 당진에서 마음을 씻다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김경수 사진작가


하늘이 먼저 가을을 알려오는 구월 초입, 바람을 따라 고개가 돌아간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 이 계절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곳곳이 명소인 한국이 행복한 고민을 선사한다. 손짓하는 길동무가 이토록 많으니 무작정 떠나보는 것도 좋으리라. 언덕을 지나온 바람의 손을 잡고 들어온 곳, 당진이다.

 

합덕성당


  한국의 산티아고라는 버그네 순례길이 갈 길 바쁜 여행객의 발을 붙든다. 두 발로 걸어보는 것이 참된 순례길 여정일 터.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물고기 이정표를 따라 솔뫼성지를 향해 걷는다. 순교자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 물고기를 따라 조형물과 논길을 벗 삼아 걷다 보니 멀리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솔뫼성지다.

 

한국 최초의 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
  소나무가 산을 이루고 있다는 뜻의 솔뫼.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태어난 곳이다. 십자가를 이고 있는 세 좌의 산을 형상화한 입구를 들어선다. 좌측의 십자가상으로 발길을 돌린다.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평화로운 언덕을 배경으로 긴 나무에 걸려 고개를 떨구고 있는 성인. 예수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숭고한 희생 앞에 더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어떤 단어를 가져온다 해도 사족일 뿐인 장엄한 정신에 말없이 손을 모은다.
  십자가상을 지나 순례길로 들어선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진 사건을 형상화해 놓은 길이다. 청동상들이 재판을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골고타 언덕으로의 여정과 그곳에서의 처형, 이후 바위 무덤에 묻힐 때까지의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길 곳곳에서 슬픔, 고난, 고통이 생생히 배어난다. 그 길이 시공을 초월해 무언의 깨우침을 남긴다. 고통의 가시밭길을 알면서도, 버거움을 느끼면서도 뚜벅뚜벅 내 길을 가는 것, 그게 어쩌면 우리네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나간다. 거창한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기에 앞을 향해 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잠시 짐을 내려둘 여유를 가지는 게 행복임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청동상과 모자이크 길을 한 바퀴 휘돌아 김대건 신부의 동상 앞에 이른다. 갓을 쓴 신부, 언젠가 전시회에서 본 김기창 화백의 그림이 겹쳐진다. 도포를 입은 선비와 물을 건너온 생소한 종교가 빚어내는 묘한 분위기에 발을 멈춰 섰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갓을 쓴 이들에게 무엇이 그토록 깊은 신앙심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그 믿음의 힘은 또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 마음은 김대건 신부의 동상 앞에 작은 감 하나를 놓고 간 누군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치고 간다.
  동상에 목례를 남긴 후 이른 곳은 김대건 신부의 생가를 복원한 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상이 김대건 신부의 초상을 마주 보고 있다.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다른 시대의 두 도반이 묘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십이 사도상으로 둘러싸인 솔뫼 아레나와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기념관을 지나 매듭을 푸시는 성모의 집으로 들어간다. 내벽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은은한 빛이 배어난다. 그 빛을 배경으로 매듭을 푸시는 성모상이 놓여있고 양쪽으로는 성모의 기도방과 예수의 기도방이 있다. 침묵의 한 가운데 서서 손을 모은다. 눈을 감고 매듭에 묶여 신음하는 모든 이들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비손해 본다.

솔뫼성지 입구

김대건 신부의 생가를 복원한 집

 김대건 신부 동상

 

천주교 순례의 길을 따라 걷다
  수녀와 수사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을 뒤로하고 다음 행선지를 찾아간다. 십여 분을 달려 이른 곳은 합덕성당이다. 합덕성당은 기나긴 천주교 박해가 끝난 뒤 지어진 성당이다.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한 합덕성당은 대전 교구의 본당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형상을 본뜬 고딕 양식의 독특한 외형이 눈을 사로잡는다. 신발을 벗고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스테인드글라스 위로 쏟아지는 빛을 조명 삼아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신도가 보인다. 무슨 사연이 있어 저토록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걸까. 숨죽여 옆자리에 앉아 마음을 씻어내 본다. 빛을 타고내리는 고요함이 먼지 낀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경건함이란 어쩌면 이러한 순간의 전율을 이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오니 성당을 본 따 만든 형태의 12개의 종이 보인다. 하루에 세 번 울린다는 종. 그 위에 놓인 닭 조형물을 가슴에 담으며 다음 목적지인 신리성지로 향한다.
  한국의 카타콤바로 불리는 신리성지.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머물렀던 곳이다. 다블뤼 주교가 황석두 루카의 도움으로 집필한 비망기는 『한국 천주교회사』의 기반이 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이 저서는 103위 성인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탁 트인 평야를 배경으로 조성된 신리성지 입구에 서니 우뚝 솟은 순교미술관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다음으로 나지막한 성당과 다섯 채의 나무 경당이 눈을 지나간다. 이 고요하고 평온한 풍경을 흐트러뜨리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성지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성당을 돌아 나와 들판을 걷는다. 수많은 이들의 발길이 머물다 갔을 소박한 경당에 손을 모으고 앉는다. 성 손자선 토마스의 조각상을 마주 보며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신념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 생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 하는 질문이 귀를 두드리고 들어온다. 뒤이어 이 땅에 깃든 오랜 이야기가 파도가 되어 나를 감싸 안는다. 어떤 난관이 닥쳐와도 자신을 믿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 여정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생의 완수일지도 모른다.

  버그내 순례길

 합덕성당 전경

  신리성지

 

 

미술관이 된 폐교, 아미미술관
  길을 돌아 나와 닿은 곳은 아미미술관이다. 미술관이 된 폐교는 작가 박기호와 설치 미술가 구현숙이 재탄생시킨 공간이다. 야외전시장과 5개의 실내 전시실, 작가들의 작업실과 한옥숙소, 쉼터와 연구실로 이루어진 내실 있는 미술관이다. 하얀 벽을 장식하고 있는 색색의 작품들과 그 사이를 타고 오른 덩굴의 묘한 조화가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천장의 설치작품이 이야기를 건네 온다. 창에 턱을 괴고 있는 푸른 잎들이 그 소곤거림을 이어받는다. 여기저기서 속살거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귀를 간질인다.
  쉬어가라 손짓을 보내오는 낡은 의자의 속삭임 기대 숨을 골라 본다. 삐걱거리는 의자에서 숨을 덜어내고 향한 곳은 지베르니다. 모네도 수련도 없는 지베르니는 사진기를 든 아마추어 작가들과 커피를 내리는 주인장과 멀리서 온 장식품들로 채워져 있다. 아이를 품에 안은 부부와 부모님을 모시고 온 딸과 중년의 부부들 사이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나온다. 당진 지베르니의 커피 냄새가 음식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던 모네의 지베르니 못지않은 향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다. 장독으로 길을 낸 숲길을 걸어 나와 옥상에 이른다. 아름드리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그 옆으로 펼쳐진 파란 잔디밭.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씻기는 풍경을 안고 심훈 선생님을 찾아 나선다.

아미미술관

 

 

소설 『상록수』를 집필한 곳, 필경사
  심훈 기념관과 나란히 있는 필경사는 심훈 선생이 『상록수』를 집필한 곳이다. 필경사는 ‘붓으로 밭을 가는 집’이라는 뜻으로 심훈 선생이 직접 지은 당호다. 다부져 보이는 초가지붕의 집을 보자니 붓끝으로 돌밭 같은 땅을 쓸고 또 쓸어 누군가 머물다 갈 수 있는 집을 지었을 작가 심훈이 그려진다. 필경사를 지나 심훈 기념관으로 들어간다. 자필 원고와 생전에 쓰던 책상과 벽 곳곳에 새겨진 시들이 작가의 세상으로 나를 인도한다. ‘우리가 생명이 있는 동안은 값이 있게 살어 보자’는 『상록수』의 한 구절처럼 호기롭게 삶을 꾸려갔을 작가의 모습이 겹쳐진다. 기념관을 돌아 나오는 길, 애송하던 시 「그날이 오면」이 발을 붙든다. 시퍼렇게 날이 선 시인의 외침이 가슴을 긁고 간다. 며칠 동안 계속 이어지던 비는 멎어있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오랜만에 뽀얀 햇살에 옷을 말린 듯 마음도 티끌 한 점 없이 말끔해져 있다.

심훈 동상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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