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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오랜 목조 건물이 남긴 이야기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김경수 사진작가

 

 

볕이 따갑다. 이글거리는 도로가 뜨거운 계절을 실감 나게 한다. 가만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흥건해지는 팔월, 열을 덜어내려 길을 나선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소식을 전해온 부석사를 찾아 경북 영주로 내려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부석사


부석사 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길은 비어있고 버스는 도착하지 않았고 부석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알리는 현수막은 팔랑이고 있다. 2018년 6월 30일,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더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영주시는 도시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행사를 열어 부석사의 경사를 축하하고 있다. 양산 통도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산사로 이름을 올리게 된 부석사.

 


화엄종의 본찰인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뜻에 따라 676년에 창건한 절이다. 초기에는 선달사와 흥건사로 불리다가 무량수전 옆에 뜬(浮) 돌이 있다 하여 부석사로 불렸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 부석(浮石)에는 의상대사를 연모해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의상대사를 해하는 이교도들을 물리치려 들어 올린 바위라는 이야기도 서려 있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절, 공중에 떠 있는 바위가 있는 절, 부석사로 들어간다.

 


사과나무와 포도나무로 둘러싸인 굽은 길을 관통한다. 손부채질로 이마의 땀을 식히며 일주문을 지난다. 티끌 한 점 없이 투명한 해가 눈을 시리게 한다. 경사진 길을 따라 허리를 낮추고 속도를 늦춰 걷는다. 당간지주 앞에서 숨을 고른 후 천왕문을 지나 회전문에 이른다. 두 기의 탑 사이를 지나오니 수곽이 있다. 물 한 모금이 지금 이 순간의 내게는 꿀보다 더 달다. 범종루 계단을 올라 배흘림기둥을 자랑하는 무량수전으로 간다.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서 오래된 나무 향이 번져오는 것 같은 것을 느낀 것은 내 착각일까. 나무기둥에 코를 대고 섰다가 고개를 돌린다. 계단 위로 탑이 보이더니 이내 무량수전이 눈에 들어온다. 탑을 한 바퀴 휘돈 후 부석 앞에서 무량수전을 눈에 담는다. 화려한 단청이 없어 더 멋스러워 보이는 건물, 꾸며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 무엇. 어쩌면 이 담박함을 마주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것도 같다. 탑이 놓인 무량수전 쪽이 아닌 산을 마주하고 있는 뒤쪽으로 들어선다. 지붕이 만들어 준 그늘과 산과 벽이 전한 바람과 산(山)색 벽이 남긴 울림. 한 번도 건물 뒤쪽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부석이 있는 무량수전 뒤쪽, 천천히 걷기 좋은 사색의 공간이 펼쳐진다. 그늘을 밟고 지나오며 돌아봄을 곱씹는다. 앞만 보고 달리는데 바빠 뒤돌아볼 여유를 잃고 산 것은 아니었을까. 바삐 가느라 지난 시간을 지운 듯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모퉁이를 돌아선다. 내가 거쳐 온 곳곳이 길이 되어 나 있다. 내가 거쳐 온 시간을 선물로 받는다. 되돌아봄, 부석사가 전해 주는 깨우침을 담고 불상 앞에 고개를 숙인다. 의상대사가 이 나무가 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은 것으로 알라고 했다며 남긴 선비화가 있는 조사당을 거쳐 자인당과 응진전을 돌아 나온다.  


무량수전 앞 석등, 석조여래좌상, 삼층석탑, 당간지주, 석조기단, 무량수전, 조사당, 소조여래좌상, 조사당벽화, 고려각판, 원융국사비.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무량수전의 이야기 또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최고(最古) 목조 건축물로서의 유명세는 무량수전을 찾은 이들의 발길이, 그들이 거쳐 온 시간이 모여 만들어낸 신화다. 오래됨은 되새김이다. 그 되새김이 만들어갈 새로운 이야기를 그리며 부석사를 내려온다.

 

 

한국 토종 콩 예찬, 콩세계과학관


부석사 아래 위치한 콩세계과학관은 영주에서 재배되는 서래태, 부석태를 중심으로 한 한국 토종 콩을 알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전시는 총 여섯 전시실에 거쳐 이어진다. 콩의 역사와 문화, 생육환경과 생태환경, 콩의 활용, 콩의 효능, 친환경 제품으로서의 콩 등 각각의 테마에 맞춰 콩이 소개되고 있다. 때마침 진행 중인 콩과 함께 하는 생태미술놀이 체험과 백두대간 씨앗 작품 전시회도 함께 둘러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실 있는 볼거리가 두 손 벌려 여객을 맞아준 영주 사람들 모습을 담아낸다. 대체 에너지원이자 든든한 식량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콩의 원산지 한국. 소백산 정기와 청정한 땅 기운과 맑은 공기로 길러낸 영주의 콩과 콩에 대한 영주시의 의지를 곱씹으며 콩세계과학관을 나온다. 

 

 

 

 

대대로 판서가 머물렀던 심판서 고택


차에서 내려서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길손을 맞는다. 바닥의 뜨거운 열기가 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벌써 정수리를 데워놓았다. 버스 여행을 계획하고 나선 길, 만만치 않은 더위다. 지도를 펴니 터미널 근처 삼판서 고택이 눈에 들어온다. 삼판서 고택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거쳐 세 사람의 판서가 거쳐 갔다는 데서 그 이름을 얻었다. 판서가 기거했던 곳인 만큼 삼판서 고택에서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 사헌부 지평 황전, 집현전학사 김증 등의 이름도 발견할 수 있다. 골목길을 거쳐 고택에 들어선다. 미음자 모양으로 들어선 가옥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대청에서 집을 둘러본다. 선비의 정갈한 몸가짐을 이르는 소쇄헌(掃灑軒)과 조상을 공경하는 자손들의 마음을 뜻하는 집경루(集敬樓)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정도전이 남기고 갔다는 시와 기와가 만드는 그림자에 둘러싸여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른다. 변혁의 시기의 선현들이 머문 집을 거닐며 2018년 여름에 맞는 보폭을 준비한다. 때로는 나를 둘러싼 것들이 내 속도를 결정하기도 할 터, 오늘의 걸음은 태양의 보폭이다.  

 

 

 


선비정신이 깃든 선비촌과 소수서원  


소수서원과 선비촌으로 방향을 잡는다. 친절한 길동무들이 선비촌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자세히 일러준다. 55번 버스에 오른다. 에어컨 바람이 숨통을 틔워준다. 덥다고 찬바람만 찾아다녀서인지 따끔거리는 뙤약볕의 여운이 새삼스럽다. 창밖 풍경을 눈에 담는다. 사과, 복숭아, 자두, 청포도. 더위에 굴하지 않고 치열하게 여름을 담아내고 있는 과실들이 지천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시들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살벌한 더위에도 나무는 꽃을 틔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 생명력에서 배어나는 싱그러움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빡 적셔도 좋다던 시인 이육사의 시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색색의 열매를 눈에 담는 사이 선비촌에 도착한다. 선비촌이 있는 순흥은 고려에 유학을 들여온 성리학자 안향의 고향이다. 선비촌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영주의 선비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영주 선비들의 가옥을 복원, 수신제가, 입신양명, 거무구안, 우도불우빈의 네 가지 테마에 맞춰 배치해두고 있다.

 


출구를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길을 가운데 두고 무쇠공방과 김상진의 가옥이 마주 보고 있다. 떡 만들기 체험 행사 중인 무쇠공방을 지나 김상진 가옥, 해우당 고택을 거쳐 강학당에 이른다. 강학당에서 펜을 쥐고 있는 여행객을 만난다. 더운 여름을 더 뜨겁게 보내고 있는 길손의 사색을 방해할까, 물레방앗간으로 방향은 튼다. 멈춰선 물레방아와 바짝 마른 물길을 대신해 꽃사과를 눈에 담고 나온다. 선비촌에서 가장 규모가 큰 두암고택을 지나 고구마 밭을 앞둔 옥계정사를 돌아 각각의 특색을 자랑하는 집들을 지나온다. 옥계교를 건너 저잣거리로 나선다. 커피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저자를 기웃거리다가 소수서원 쪽으로 방향을 튼다. 

 


소수서원은 한국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안향을 기리고자 백운동서원을 건립한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황이 풍기군수가 된 후 특권을 가진 서원인 사액서원으로 승격, 소수서원이 되었다. 소수서원에 들어서기 전 소수박물관을 먼저 찾는다. 출처 모를 향기가 코를 간질이고 들어온다. 계단을 내려가니 전시실이 나온다. 암각화, 벽화고분, 불상, 유학자, 서원, 향교에 소수서원까지. 영주에서 시작해 유학사를 훑어 온 전시실 끝에 작은 연못이 있다. 긴긴 선비들의 이야기를 곱씹어보고 가라는 듯 그림 같은 풍경이 발을 붙든다. 현판과 경판, 투박한 그림과 글로 채워진 전시실의 앞날을 그려보며 소수서원으로 들어간다. 나무그늘을 벗 삼아 백운교를 지나온다. 강을 가운데 두고 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소수서원. 서원에 들어서고서야 알았다. 영주가 왜 도시 이름 앞에 ‘선비’를 내세웠는지를. 충효교육관에서 문묘를 지나 경렴정을 거쳐 와보면 알게 된다. 소수서원의 동선과 나무, 건물과 주변 풍광 자체가 곧 ‘선비 됨’이라는 사실을. 노거수와 굽은 소나무와 기와 그늘과 물소리와 바람소리의 거님을 관통하다 보면 미국 명문 사학보다 훨씬 앞선 사학이라는 수식은 사족이 되고 만다. 사색을 나누는 사람들, 그 오랜 역사가 오늘날 영주인들의 저력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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