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한승배 모현중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생명을 살리는 일, 건전한 인터넷 문화로 시작됩니다”

글_ 편집실

 

모현중학교 청소년 선풀달기 동아리 아이들과 교정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승배 교사

 

  예기치 않은 일은 때론 삶을 다르게 바꿔 놓는다. 여기, 한 교사의 삶이 그랬다. 2002년 4월 19일은 그에겐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이었다. 학기 초 교실마다 환경정화 활동으로 분주하던 때, 한 여고생이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기 전까지는. 그 전날 저녁 9시까지 서로 웃고 떠들며 교실 환경을 꾸미던 해맑던 아이였다. 영문도 모른 채 제자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담임교사 곁에서 장례식 절차를 돕던 그는 더 충격적인 일과 마주해야 했다.
  그 제자는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30대 회사원과 대구의 모 여고에 다니는 여학생과 셋이서 동반자살을 했던 것. 그날 아침부터 학교는 온통 난리 그 자체였고, 곧이어 빗발치는 전화와 기자들로 학교는 아수라장이 됐다. 유복한 가정환경과 무난한 대인관계, 별 탈 없는 학교생활을 하던 여학생이 한순간에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한승배(52) 경기 용인 모현중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번민하게 된 이유였다.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받은 충격과 그리고 부유한 환경에서 곱게 자란 아이의 가족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영안실, 경찰서를 오가면서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됐죠. 이들은 인터넷을 능숙하게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주변에서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할 정도로 문제가 없었어요. 온라인 공간의 역기능으로부터 청소년을 해방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의 연속이었지요.”
  이후부터 그는 인터넷에서 자살사이트나 청소년 유해 정보를 찾아 나서고 있다. 지난해만 발견해 신고한 건수가 4,000여 건. 그렇게 활동을 시작한 지 16년이 흘렀다. 그간 추방한 유해 사이트는 벌써 12만여 건을 넘어섰다.

 

그는 16년째 올바른 인터넷 문화 만들기에 힘써 오고 있다.

 

16년간 이어 온 인터넷 ‘파수꾼’ 
  “자해놀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아이들이 손목을 칼로 긋거나 자해한 사진을 온라인 공간에서 공유하며 노는 놀이지요. 수면제나 일부 신체 부위를 상해한 사진을 올리기도 하는데 유행처럼 그 형태도 매번 달라집니다. 특히, 최근에는 트위터 같은 실시간 SNS로 동반자살자를 모집하는 등 매우 빠르고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점이 특징이지요.”
  오랜 시간 인터넷 ‘파수꾼’으로 활동하다 보니 최근 청소년 유해 정보의 트렌드도 꿰뚫고 있다고. 대략적으로 학급 구성원의 거의 대부분이 SNS를 사용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한 반에 5명 정도는 트위터 SNS를 사용하는데, 유해 정보가 잘 걸러지지 않은 채 정보가 소비되고 공유되기 때문에 자살 위험의 온상으로 꼽힌다. 그래서 그는 이런 아이들을 특히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이들이 점점 더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사이버 공간에서 맘껏 표출한다.”며 아이들의 카카오톡 대화명이나 메시지 등도 그냥 흘려 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기술교사인 그는 이와 함께 정보윤리교육에 대해 더 깊은 공부를 이어갔다. 관련 지식을 배우기 위해 주말마다 정보통신 역기능 세미나에 참석하고, 연수도 듣고, 관련 교육 교재도 만들었다. 그 결과, 현장연구 전국 1등급 등 연구대회에만 12회에 걸쳐 입상하기도 했다. 그 당시 생소하던 정보통신 교과서도 집필하면서 그는 인터넷의 역기능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학교의 역할을 환기시켰다. 여기에 동료교사들의 동참을 끌어내며 더 큰 변화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청소년사이버범죄예방 교육교사연구회 회장, 경기도 정보통신윤리 교육교사연구회 회장 등을 거치면서 그는 “몇몇 교사의 노력만으로는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만들 수 없다. 각 학교의 모든 교사가 인터넷 역기능 예방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인터넷 저작권에 눈을 뜬 것도 이 때문이다. 국어교사는 문학작품의 무단복제가 저작권 침해 행위임을 알려주고, 미술교사는 명화나 사진이 70년 이상 경과되면 저작권이 말소됨을 수업 중에, 또는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한 것. 그사이 틈틈이 자살 유해 정보를 찾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하고, 경찰청 누리캅스 활동에도 참여했다.

진로와 진학 상담으로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 한 교사

 

정보문화대상 대통령상, 장관 표창 5회, 교육감 표창 15회 등 그가 받은 정부 기관 표창도 10여 회가 넘는다.

 

올바른 진로지도는 그의 또 다른 목표다. 진로수업 결과물과 집필 저서

 

청소년 ‘선플 운동’을 이끈 주역 
  근무하는 학교 내에서는 동아리를 조직해 청소년이 참여하는 반 유해정보 추방을 시작했다. 당시에 획기적이었던 청소년 ‘선플(아름다운 댓글) 운동’은 4년 만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선플 교육 전국 교사협의회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관련 자료 개발에도 공을 들였다. 지금은 그의 뜻을 이은 후배교사들이 전국 도처에서 동아리를 이끌고 있다고.
“악성댓글로 인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서 아이들이 직접 선플 달기를 하면 어떨까 하고 시작하게 됐지요. 선플 달기 교육프로그램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긍정적인 인식 변화에 큰 도움이 됐어요.”
그는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중, 또 한 명의 제자를 잃어야 했다. 자타공인 ‘모범생’으로 담임교사인 그와 함께 중국으로 포상 체험학습도 앞둔 때였다. 여권을 만들겠다며 일찌감치 학교를 나선 아이가 학원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졌다. 군 고위간부인 부모님과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로 자살 징후가 전혀 없었기에 놀라움은 더 컸다.
  “저 스스로도 많이 노력하던 때에 일어난 일이라 충격이 더 컸습니다. 이유를 계속 찾다가 교과서 한 귀퉁이에 ‘죽고 싶다.’고 적힌 메모 하나 찾았을 뿐이었죠. 단순한 관심만으로는 아이들을 알 수 없어요.”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지난 8월 발표한 ‘2018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체 자살자 수는 1만 3,092명. 이후 전체적인 자살자 수와 자살률이 감소하고 있지만, 10~20대 자살률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행복지수는 OECD 최하위권인 반면, 청소년 자살률은 최상위권이라는 오명은 지금의 한국교육이 풀어야 할 숙제다.
  그래서 그는 3년 전부터 진로진학상담교사로 아이들의 마음에 더 다가서고 있다. 올해도 전교생과 상담하는 것을 목표로 매일 학생들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주요 원인은 학교 성적인데,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도 수년째 학교 성적이 차지하고 있다.”는 그는 올바른 진로지도가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진로교육으로 이어진 또 다른 꿈
  “진로수업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진로 보드게임, 직업 학과 카드 등을 만들어 수업에 접목하면서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들이 없어졌어요.”
  그는 재미난 진로수업을 위한 교구를 개발하고, 교재도 여러 권 집필했다. 직업 만화 8권, 직업 단행본 6권도 진행 중이다. 이를 전국 5천여 명의 진로진학교사와 함께 나누고자 하는데도 열심이다. 그가 만든 밴드와 SNS에는 그중 1,900여 명에 이르는 진로진학교사가 온라인에서 만나 자료를 공유하고 논의하고 있다.
  그는 교단에 선 초기 10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했다. 원래 꿈과는 다르게 교사의 길을 걷게 되면서 보람과 희망을 찾지 못했던 시절이라고 했다. 그때 누군가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줬더라면, 혹은 멘토가 되어주는 선배 교사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매일 매일 자료를 만들어 공유하고, 주변 교사들에게 관심 쏟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경기도 위례 한빛중학교 안병도 교장은 그에게 수년째 이런 자극을 주는 선배 교육자로 남아 있다.
  “교사 초년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조언이나 가르침을 받은 기억이 없다는 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저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도록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젊은 후배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얘기를 줄곧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미 그의 삶을 통해 증명한 진실을. 

청소년 선플 달기 활동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