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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네 번째 교육편지 - 경쟁을 완화시키는 교육체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

 

  행복한 교육 독자 여러분!
  교육부 수많은 교육 정책 중에서 언제나 가장 큰 관심과 논란이 집중되는 것은  대입제도 개편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 정부까지, 역대 정부 대다수는 대학입시제도를 교육개혁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개편안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때마다 국민들이 대입정책에 많은 관심을 가진 이유는 교육적 이해당사자이고 국민 전체가 대상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국민 요구 모두를 수용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는 구별되는 한국교육만의 독특한 특징이 대입제도에 관심을 집중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서구 국가들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겪어 왔던 변화의 총량을, 불과 몇 십년이라는 단시간 내에 모두 경험하는 압축된 근대화의 과정을 밟아 왔고, 교육은 그 핵심에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 개인은 세대 간 사회적 신분 상승의 가능성을 높이려는 욕망을 교육에 투사시켰고, 이는 자연스럽게 모든 교육활동이 대학입시로 귀결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교육은 나와는 다른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상의 방식으로 이해되었고, 실제로 부모의 교육열을 바탕으로 자식들은 부모보다 높은 학력과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이는 입학경쟁을 통한 대학의 서열화를 가속시켰고 입시 경쟁은 날로 심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한국인들의 평등주의가 특권의 해체가 아니라 지위상승의 평등주의라는 매우 독특한 성격을 갖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서구에서와 달리 한국사회는 전통적 신분 문화가 유지되면서 학력을 얻어 관직으로 나가는 방식이 보편화되었고, 학력주의 의식이 일반 대중들에게 폭넓게 침투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역대 정부의 교육정책이 교육적 가치와 사회적 효용 여부보다 입시정책 위주의 처방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던 이유일 것입니다.

 

 

대학 입시 교육문제의 출발점이자 귀결점
  자연스레 국가가 교육과 관련하여 하는 일은 강력한 절차상의 공정성을 확립하고 철저히 입증 가능한 것,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하며 점수로 환산할 수 있는 방식의 대학입시를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른바 ‘스카이’를 정점으로 한 가파른 피라미드형의 대학 간 서열체계가 고착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학 간 서열체계는 학벌사회로 지칭되는 사회구조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모든 교육을 대학입시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입시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지금까지 수행해 온 학습결과를 평가하는 형식이었지만, 실제로는 대학서열체계 속으로 편입하는 수단이자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선발의 역할까지 겸하게 됨으로써, 입시문제야말로 교육문제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행복한 교육 독자 여러분!
  한국교육이 단시간에 교육기회 확대와 교육수준의 향상을 이루어내는데 강력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교육은 계층이동 면에서나 효율성 면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교육제도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교육이 비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과 학생 인권 침해를 용인하는 등 학교교육을 왜곡시켰고, 모든 교육개혁의 흐름을 좌절시켜 왔다는 비판에 오랫동안 직면해 왔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정책이 공교육의 문제를 지나친 규제와 관리 위주의 비효율성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개인 간 선택과 경쟁을 통해 극복하려는 시도로 이어져, 개인의 경쟁과 계층과 지역의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유행하는 ‘금수저와 흙수저’, ‘헬조선’은,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보다는 부모 영향에 따른 비능력적 요인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청년들의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용어들입니다. 이처럼 교육 정의를 개인 간의 선택과 경쟁을 통해서만 구현하려고 하면 전체적으로 공교육제도의 신뢰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고 맙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교육은 개인의 노력을 통한 능력주의의 실현보다, 부모의 구조라는 비공식적 보험이 중요해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출발점에서부터 사회경제적 배경과 지원이 없으면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는 자조도 깊습니다. 문제는 교육불평등은 돈이 증여되고 상속되는 것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의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고, 이는 곧 학교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는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우려일 것입니다.

 

 

모두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를 부여하는 일
  대한민국 교육제도의 근간은 차별적 특혜를 배제하고 모두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와 무관하게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하여 교육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헌법정신이 추구하는 교육정신입니다. 온전한 능력주의가 정의롭게 구현되도록 장애물을 제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서열화하고, 시험 점수의 높고 낮음이 인간 존엄성의 높고 낮음의 기준이 되는 교육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교육체제를 전환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깊습니다. 왜냐하면, 학교는 모든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중심에 둔 교육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학업성취 결과의 차이가 인간에 대한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어떤 학생들은 앞서 나가고 어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낮습니다. 이렇게 학업성취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공부의 속도는 모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능력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하지만, 시험성적과 등수가 개인 간의 모멸과 열등감으로 작동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학업 성취의 속도와 숙달도에 있어서 차이가 날지언정, 그것 때문에 다른 학생을 무시하거나 또는 무시 받아서 안 되는 것은 교육의 기본원리입니다. 학교에서 모든 학생은 성취의 차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한 경쟁을 완화시키는 교육체제가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경쟁을 완화시키는 교육 체제는 정의로운 능력주의가 구현되어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가 되는 것과, ‘용’이 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존엄한 개인이 되도록 교육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국민여론을 수렴한 대입제도를 잘 설계하고 정착시키는 노력과 함께, 긴 호흡으로 능력주의와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루는 경쟁을 완화시키는 교육체제에 대한 고민과 토론에 독자 여러분께서도 동참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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