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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과 악의 평범함에 대한 재인식

글_ 홍정선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전 『문학과지성사』 대표)

 


  1960년에 체포되어 1961년에 시작된 아이히만 재판은 흥미롭게도 우리 인간이‘악의 평범성’을 새삼스럽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또 ‘지배와 복종’ 문제와 관련하여 예일대학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 ‘밀그램 프로젝트’라 부르는 유명한 실험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재판을 취재하면서 별다른 죄의식 없이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아이히만으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악행을 저지르는 보통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아이히만의 그 같은 모습으로부터 악의 평범함이란 개념을 도출해냈다. 반면에 정상적인 인간에게는 잘못된 명령을 거부하고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저항하는 도덕성이 있다고 믿었던 스탠리 밀그램은, 그래서 아이히만은 범죄자라고 생각했던 밀그램은 아이히만 같은 학살의 장본인들에게 확실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 앞에서 권위에 복종하거나 저항하는지를 밝히는”실험을 기획했다.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
  밀그램은 먼저 신문에 광고를 내서 평범한 사람들을 자원자로 모집한 후 이들에게 교사의 역할을 부여했다. 그리고는 이 교사들에게 손목에 전극을 붙인 채 끈으로 묶여 있는 학생을, 사실은 학생이 아니라 연기를 하게 될 배우를, 보여준 다음 이 교사들을 학생과는 다른 방으로 데려가서 15볼트로부터 450볼트까지 15볼트 간격으로 30개의 스위치가 나란히 있는 기계 앞에 앉혔다. 그리고는 학생에게 일정한 단어쌍이 연상시키는 단어를 말하게 하고 틀릴 때마다 한 단계씩 전압을 높이라는 역할(명령)을 교사에게 맡겼다. 동시에 학생 연기자에게는 75볼트에서는 앓는 소리를 내고, 120볼트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150볼트에서는 실험을 멈춰달라고 요구하고, 270볼트에서는 몸부림치는 비명을 지르고 350볼트에서는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말라는 주문을 해놓았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62.5% 이상이 최대전압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전기충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그램은 실험 참가자들이 처한 환경을 여러 가지로 바꾸어 가며 실험을 계속해 보았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사가 처한 환경과 그들이 지닌 성격이나 생각에 따라, 그리고 학생이 반응하는 고통의 강도에 따라 충격을 중도에 중단하는 일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던 결과가 크게 빗나간 것이다. 유태인 학살의 책임이 특정한 종류의 권위주의 체제와 그 체제를 이끈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실험이 엉뚱한, 아니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래서 밀그램은 이 실험의 결과 앞에서 “무섭고 암울하다.”고 말하면서 “나는 한때 미국에 악랄한 정부가 등장해서 독일과 같은 죽음의 수용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도덕적으로 열등한 인력을 확보하는 일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뉴헤이븐 한 곳에서도 다 채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는 절망감을 토로했다.

 

 

악의 평범함과 성범죄
  결국 밀그램이 자신의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것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악이란 결코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처럼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밀그램이 악의 평범함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진실에 가깝다.”고 말한 것은 우리 모두 속에 아이히만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미투 운동’과 이 운동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수많은 성범죄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악의 평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낯선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이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동료, 이웃, 선배, 선생 등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두운 골목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성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일상적 생활을 함께 영위하던 사람들이 성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악의 평범함을 밝혀준 밀그램의 실험과 우리 주변의 성범죄들이 평범한 사람이 곧 악인이라고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지배와 복종에 대한 밀그램의 실험으로부터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평범한 인간은 잘못된 권위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사실이며, 그 평범함을 이용하고 조종하는 인간이나 체제의 출현을 막아야 한다는 경각심이다. 우리 인간이 지배에 아무리 취약해도 우리가 미워해야 할 대상이 평범한 개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한사코 평범한 개인이 아니라 그 개인을 악인으로 만드는 세상과 사회와 권력을 미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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