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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삼별초의 마지막 격전지 -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글 · 사진 _ 김혜영 여행작가


  2013년 10월 제주도 항파두리성(사적 제396호)에서 고려 시대 철제 갑옷 파편과 무기류가 발굴됐다. 이곳은 약 740년 전 고려 특수 정예 부대 삼별초가 고려·몽골연합군에 맞서 싸운 최후의 격전지였다. 발굴된 갑옷은 어느 병사의 것이었을까. 흔적만 남은 옛 성터에 서서 고려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돌덩이만 남은 항파두리 내성 터. 성터 옆으로 제주올레 16코스가 지나간다.돌덩이만 남은 항파두리 내성 터. 성터 옆으로 제주올레 16코스가 지나간다.


두려움과 희망의 땅이었던 제주

  1231년(고려 고종 18) 유럽과 아시아대륙을 정복한 몽골이 고려를 침략했다. 고려는 이듬해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몽골에 맞섰다. 그러나 강화 천도 39년 만인 1270년(고려 원종 11년), 고려는 개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개경 환도를 반대한 삼별초는 병사를 이끌고, 진도를 거쳐 제주로 내려왔다.


  1271년 삼별초 대장 김통정은 제주 애월에 지명을 딴 ‘항파두리성’을 쌓고, 2년 반 동안 여몽연합군에 대항했다. 1273년 최후 결전의 날, 남은 병사와 한라산 중턱 붉은오름으로 피신한 김통정은 결국 자결하고 말았다. 이로써 강화, 진도, 제주로 이어진 삼별초의 대몽항쟁이 끝났다. 


  항파두리성 내 빈 창고에 누군가 적어 놓았다. ‘더는 물러설 곳 없는 제주. 두려움과 희망은 늘 바다 넘어서 밀려왔다. 1271년’. 삼별초가 제주에 도착했던 그해, 어느 병사가 썼을 법한 글이다. 어쩌면 이 병사는 삼별초의 운명을 짐작했을지도 모르겠다.


  삼별초가 전멸한 뒤, 제주는 약 100년 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1374년(고려 공민왕 23년) 최영 장군이 몽골인 목동인 목호를 몰아내고 나서야 몽골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5월에는 황보리를 감상하며 토성 둘레를 걸을 수 있다.5월에는 황보리를 감상하며 토성 둘레를 걸을 수 있다.

유유자적 항파두리 토성 산책

  항파두리성은 흙으로 외성을 쌓고, 돌로 내성을 쌓은 이중성이다. 내성 안에 관아와 부대시설을 두고, 삼별초군과 그 가족이 살았다. 내성 터에서 무기류, 청자, 청동 바늘, 철제 솥, 윷판, 고누판 등 1,0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놀이 도구를 통해 긴장과 휴식 사이를 오갔을 삼별초군의 일상을 짐작해본다.


  외성인 토성은 자연 지형을 이용해 언덕과 하천을 따라 쌓았는데, 둘레 3.8km, 높이 4~5m, 너비 3~4m에 달한다. 토성 위에 올라가면 멀리 제주 시내와 애월 바다, 한라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김통정이 이곳에 항파두리성을 지은 이유를 알 것 같다. 토성 안은 옛 전장 터였던 사실을 잊을 만큼 고요하다. 이따금 비행기가 정적을 깰 뿐이다. 토성 안팎을 오르내리며 울창한 소나무 숲, 광활한 풀밭, 누런 황금보리밭, 귤꽃이 만발한 감귤밭, 싱그러운 차밭을 만난다. 넓디넓은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숲길에서는 산딸기를 따 먹는다.


  보물찾기하듯 토성 일대에 남아있는 삼별초 관련 장소들도 찾아본다. 김통정이 여몽연합군에 쫓겨 토성을 뛰어넘을 때 밟은 자리에서 우물이 솟아났다는 ‘장수물’, 삼별초 병사들이 마셨다는 ‘구시물’, 장교들이 마셨다는 ‘옹성물’, 활 연습 때 표적으로 사용했다는 ‘살 맞은 돌’, 건물의 주춧돌로 사용된 ‘돌쩌귀’ 등의 유적 등이 그것. 작년에는 사라진 네 개의 성문 중 동문으로 추정되는 문 터가 발견됐다.


5월에는 항몽유적지 주차장 뒤편 꽃밭에서 꽃양귀비를 볼 수 있다.5월에는 항몽유적지 주차장 뒤편 꽃밭에서 꽃양귀비를 볼 수 있다.



항파두리성의 인생 사진 포토존

  몇 해 전부터 항파두리 내성 터 둘레에 꽃밭이 조성되고, ‘나 홀로 나무’ 포토존이 SNS에 소개되면서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토성 바깥 비탈면에 홀로 선 아름드리 소나무와 함께 사진을 찍으면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다나. 실제 풍경은 실망스러워도 사진발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항몽유적지 휴게소(매점) 뒤쪽 꽃밭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이 핀다. 2~4월에는 유채꽃과 청보리, 5월에는 꽃양귀비와 황보리, 6월에는 수국, 7월에는 해바라기, 8월에는 코스모스, 9월에는 메밀꽃이 차례로 관람객을 맞는다. 휴게소 건너편 ‘토성길’ 이정표를 따라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액자 포토존이 나온다. 액자 안에 토성과 제주 바다를 담을 수 있다. 액자 뒷계단이 토성길과 연결된다.



관광객이 항파두리성 나 홀로 나무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관광객이 항파두리성 나 홀로 나무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삼별초 병사들이 활쏘기 훈련할 때 표적으로 사용했다는 '살 맞은 돌'삼별초 병사들이 활쏘기 훈련할 때 표적으로 사용했다는 '살 맞은 돌'

삼별초의 방어벽 애월환해장성

  1270년 고려 조정에서 삼별초가 제주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애월 바닷가에 돌로 성을 쌓은 것이 환해장성(環海長城)의 시초이다. 삼별초가 입도한 뒤에는 환해장성이 도리어 삼별초의 방어벽이 되었다. 환해장성은 1845년(조선 헌종 11년)까지 외적을 막는 용도로 계속 지어졌다. 무너지면 보수해가며 몇 대에 걸쳐 짓다 보니, 제주 해안선의 반인 120km를 두르게 됐다. 어떤 이는 환해장성을 중국 만리장성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 환해장성이 무관심과 무분별한 개발에 밀려 상당 구간이 훼손됐다. 현재 성벽이 남아있는 곳은 온평리, 북촌리, 애월리, 고내리 등 28곳이다. 애월 환해장성도 약 360m 구간만 남아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해안도로나 제주올레에서 정체 모를 돌담을 발견한다면, 환해장성일 가능성이 높다. 관심 어린 눈길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문의 064-710-6721

내성 터 및 전시관 관람 시간

매일 10:00~17:00, 무료 관람, 해설사 근무, 외성은 24시간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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