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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산격중학교 뮤지컬동아리 ‘반창고’ - 학교폭력 예방은 마음 치유가 먼저

글 _ 편집실

“우리 이제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학교폭력전담기구 위원들은 헤어지면서 늘 이렇게 인사한다. 학부모와 교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할 때 열린다. 다시 보지 말자는 인사는 누구라도 상처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다. 최근 10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학교폭력 제로를 이뤄낸 학교가 있어 주목받고 있다. 바로 대구 북구 산격중학교(교장 원미옥)가 그 주인공이다. 그 중심에 뮤지컬동아리 ‘반창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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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창고’가 다루는 주제는 자아존중감 회복, 학교폭력 등 다양한 청소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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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예방 뮤지컬 ‘잃어버린 나학교폭력 예방 뮤지컬 ‘잃어버린 나


무대에 올리는 나의 이야기

  “오늘은 ‘침묵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해 볼 거니까 천천히 움직이면서 내 몸을 스스로 조절해 봅시다.” 

연극 수업을 맡은 석효진 강사는 대본 연습 전에 이렇게 몸풀기 시간을 가졌다. 처음엔 서로 장난치느라 어수선한 듯 보였던 학생들도 어느새 진지한 몸짓으로 놀이에 집중했다. 학생들은 신체놀이를 통해 절제하는 법을 배운다. 서정훈(1학년) 학생은 실내화도 벗어 던지고 놀이에 집중했다. 조심스러운 숨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몇 차례 다시 놀이가 진행되었다. 김성민(1학년) 학생은 “조용히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정말 어렵지만 재밌다.”라고 말했다. 


  놀이를 통해 어색함을 내던지고 난 뒤 둥글게 둘러앉아서 대본 작업에 열중하는 부원들. “‘와 이라노’라고 사투리로 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데.” 요즘 아이들의 입말이 더해진 대본은 마치 실제인양 생동감이 더해졌다. 


  뮤지컬동아리 ‘반창고’는 학기 초에 공연 주제를 선정한 후 학생들이 상황별 대본을 작성하고 미니 콩트 형식으로 발표를 한다. 이를 토대로 지도 선생님이 전체 대본을 구성해 학생들과 한 학기 동안 수정작업을 거친 후 여름방학부터 본격적으로 극 연습과 노래 연습을 시작해 매년 11월에 발표회를 연다. 공연 한 달 전부터는 매일 방과 후 2시간씩 연습하는 강행군이 시작된다고. 오빠 따라 반창고에 왔다는 강하라(1학년) 학생은 “힘찬 오빠가 공연하는 것을 보니 멋있어 보여서 나도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작곡과 보컬 교육을 맡은 김가영 강사는 “아이들이 대본을 완성하면 그 내용을 토대로 곡 작업을 한다. 좀 느려도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과정 안에서 아이들의 성취감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연극 수업 한 시간, 보컬 수업 한 시간을 알차게 보낸 아이들의 얼굴은 처음보다 환하게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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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모여 뮤지컬을 연습하는 ‘반창고'매주 토요일 모여 뮤지컬을 연습하는 ‘반창고'


소통으로 하나 되는 우리

  2017년에 시작한 반창고는 어느새 6년 차에 접어들었다. 매년 한 작품씩 완성해 벌써 창작 뮤지컬만 5개, 완성된 곡은 20곡 이상이다. 2017년 ‘Who am I?’, 2018년 ‘잃어버린 나’, 2019년 ‘시선’, 2020년 ‘Dream’, 2021년 ‘지혜로운 학교생활’까지 공연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반창고가 다루는 주제는 자아존중감 회복, 학교폭력 등 다양한 청소년 문제다. 올해는 급증하고 있는 사이버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뮤지컬을 준비 중이다.


  창단부터 반창고와 함께한 임민식 교사는 “반창고는 일반 뮤지컬동아리와 다르다.”라며 “학교에 부적응하거나 초등학교 때 학교폭력 사안에 휘말린 적이 있는 학생들을 우선으로 모집한다.”라고 설명했다. 반창고라는 동아리 이름도 상처받은 학생들의 마음을 보듬어 치료해 주고,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반창고를 붙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만들었다. 


  2013년의 산격중학교는 소규모 학교인데도 학교폭력 사안이 21건에 달하는 등 학생 생활교육이 시급한 학교였다. 소외계층의 학생도 많고, 학생들이 하교 후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경우도 많았다. 학생들이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며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임민식 교사는 “집단상담프로그램과 한 편의 뮤지컬이 완성되는 과정을 체험하면서 학생들은 스스로 성찰하게 되며 소통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라며 “관객의 박수는 참여 학생들의 삶에 든든한 정서적 지지와 자존감의 바탕이 된다.”라고 밝혔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동아리를 찾게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5명이나 되는 지도 교사들은 포기가 습관처럼 자리 잡은 아이들을 수시로 관찰하고 상담하며 자연스럽게 동아리로 이끌었다. 이제는 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는 8월 방송을 앞두고 촬영 중인 EBS다큐프라임 3부작에는 반창고의 이 같은 노력이 고스란히 담길 예정이다. 


  그 밖에도 동아리 부원들은 다양한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과 학교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사이버 폭력 예방을 위한 이모티콘 제작과 배포, 학교폭력 예방 서명 대회 진행 및 교내 안전동아리와 협업 등 교내 인기동아리로 거듭나고 있다. 


  ‘나’의 아픔이 치유되지 않으면 ‘너’의 고통에 눈뜨지 못한다. 반창고의 출발지는 ‘서로 다른 각자’이지만 목적지는 ‘하나로 빚어낸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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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뮤지컬이 완성되는 과정을 체험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성찰하게 되며 소통의 가치를 깨닫는다.한 편의 뮤지컬이 완성되는 과정을 체험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성찰하게 되며 소통의 가치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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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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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힘찬(3학년) 학생

성악을 배우다가 변성기가 찾아오면서 그만뒀다. 그래서 지금도 노래 연습할 때가 대본 연습할 때보다 즐겁다. 작년에 ‘지혜로운 학교생활’을 공연할 때 내 곡이 늦게 나와서 노래 연습을 많이 못 해서 아쉬웠다. 올해는 그런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부원들과 더 열심히 연습하고 싶다. 선생님도 아낌없는 간식 지원으로 응원해 주시면 좋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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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은(3학년) 학생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는데 ‘혹시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다. 작년에 언니들이랑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같이 즐겁게 공연 준비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올해도 다 같이 친해져서 재미있게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다. 공연을 생각하면 떨리지만, 관객들의 박수소리를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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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2학년) 학생

우리 공연을 보면서 관객들이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깨닫고 학교폭력이 없어야 한다는 것에 격하게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연습이나 공연이 끝나고 나서 같이 밥 먹고 노는 게 좋아서 시작하게 됐지만, 이제는 학교폭력 예방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솔선수범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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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1학년) 학생

뮤지컬을 접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학교에서 하게 되어서 즐겁다. 토요일마다 시간을 내야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친구들이 우리 동아리의 공연을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더 설렌다. 또 ‘반창고’에서 즐겁게 연습할 시간이 기대된다. 지금처럼 사이좋게 활동하면 좋겠다.



기사 이미지이혜린(1학년) 학생

뮤지컬이라든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색다른 경험 중이다. 그래서 대본 연습도 즐겁고 노래 연습도 신난다.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후에 노래 실력도 많이 늘고 자신감도 생겼다. 앞으로도 토요일 활동에 빠지지 않고 나오고 싶다. 우리의 결과물을 보여줄 것을 생각하면 설레기 때문에 어떤 역할이라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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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은(1학년) 학생

평소 노래를 좋아하지만, 음치라고 생각해왔다. 선생님께 노래를 배우면서 실력을 많이 키울 수 있었다. 평소에 소리를 잘 내는 법을 기억하면서 노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공연할 때 실수할까 봐 걱정되는데,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고 있다는 이 느낌이 너무 좋고, 내 의견이 반영된 대본으로 연습하는 것이 무척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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