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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효산고등학교 연극동아리 ‘미라클’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연극무대

글 _ 이순이 편집장

순천효산고등학교(교장 최상경) 연극동아리 ‘미라클’이 올해로 33년을 맞았다. 1988년 학생 인성교육에 어려움을 겪던 학교에서 교육연극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코자 연극동아리를 만들었고, 당시 연극무대 경험이 있던 김금삼 교사가 동아리를 맡으면서 ‘미라클’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김금삼 교사는 “초창기에는 아이들과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라고 말한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미라클’은 학교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연극인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꿈을 향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



2019년 <유린타운> 공연 후 촬영한 미라클 단원들과 김금삼 교사(맨 왼쪽 위)의 모습


<우월한 나라> 무대에 올리다

  6명의 학생과 1명의 선생님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5명의 학생은 몸에 딱 맞는 책상에 앉아 수업하고 한 명은 제 몸보다 훨씬 작은 책상에 웅크린 채 고개를 숙이고 수업하지만, 아무도 의식하지 못한다. 위축된 한 명의 학생을 둘러싸고 교실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은밀한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이는 순천효산고등학교 연극동아리 ‘미라클’의 <우월한 나라>(이민지 作) 공연 속 한 장면이다. <우월한 나라>는 ‘나라’가 전학 온 뒤 묘하게 비틀어진 2학년 2반의 일상과 평화로웠던 아이들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반장선거가 한창인 새 학기. 성실하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나라’와 매사 성실하고 올곧은 ‘하루’가 후보로 나섰다. 즐겁고 화목할 것만 같은 교실은 뭔가 불편하다. 나라는 교묘하게 한 아이를 왕따시키고, 이를 묵인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며 권력을 유지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왜 왕따가 됐든, 왕따는 꼭 필요하다는 거예요. 제가 1등을 유지하려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아세요? 아빠는 제가 성적이라도 떨어질까 봐 감시하고 때리고, 엄마는 매일 울고. 그런 제가 어디 가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겠어요? 아무나 왕따를 만들어서 괴롭히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죠. 왕따는 그냥 저의 감정 쓰레기통이라고요.”


  관객을 향한 나라의 당돌한 외침은 학교의 어두운 모습을 엿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우월한 나라>는 지난 6월 21일 열린 제22회 순천청소년연극제 단체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개인부문에서 최우수연기상(정유아)과 우수연기상(오병헌), 무대조명상(서동건)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6월 29일 순천문화회관에서 막을 내린 제25회 전국청소년연극제 예선과 제31회 전남청소년연극제에서는 단체부문 최우수상과 개인부문에서 배지민 학생이 연기대상과 우수연기상을, 서동건 학생이 무대기술상(조명)을 각각 수상했다. 


2021년 작품 <우월한 나라> 공연을 마친 미라클 단원들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만드는 무대

  ‘미라클’에는 현재 총 28명의 동아리원이 활동하고 있다. 배우팀, 음향 스태프, 조명 스태프, 의상소품 스태프로 각자 역할을 나눠 전원이 매년 공연에 매달려왔지만, 지난해와 올해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최소 인원으로 무대를 만들어야 했다. 학생들은 모두가 참여하는 공연이 아니었기에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무대에 작품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3월경 동아리원이 확정되면, 연출, 조연출, 동아리 지도교사, 연극지도 강사 등이 모여 어떤 작품을 할지 결정하고 이후 한 달간 본격적으로 배우 캐스팅을 진행한다. 배역이 정해지면 그때부터는 집중적으로 캐릭터 분석과 함께 대본리딩을 시작한다. 이때 의상소품 스태프도 캐릭터에 어울리는 의상과 소품에 대해 고민한다. 5~6월 본격적으로 배우 간에 대사를 맞춰보고 실제 무대를 상상하며 동선도 확인한다. 공연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배우의 움직임 등을 살피며 음향·조명 스태프도 분주해진다.


  연출을 맡았다는 배지민(3학년) 학생은 “갑작스럽게 배역이 펑크가 나면서 대타로 일진 중 똘마니 역할을 맡게 됐다.”라며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우월한 나라>라는 작품을 선정하게 됐다.”라고 말한다. ‘나라’ 역할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정유아(3학년) 학생은 “연극의 특성상 배우들이 함께 대사도 맞춰보고 동선확인도 해야 하는데, 연습할 때마다 꼭 한 명씩 빠지는 상황이 생겨 연습에 애를 먹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연극 통해 인내심, 끈기, 협업능력 배운다

  33년째 연극동아리를 지도하고 있는 김금삼 교사와 ‘미라클’ 단원은 초창기 3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연극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 김금삼 교사는 연극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한국교사연극협회 등에 가입하여 교육연극과 연극치료를 체계적으로 배웠다.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했고 초창기 예산확보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교육부와 지자체 등에서 학교예술지원사업을 확대함에 따라 지금은 예산 걱정 없이 오롯이 학생들과 연극에만 집중하고 있다. 김 교사가 공연을 위한 제반 사항을 지원하고 연극지도 강사가 학생들의 발성과 연기 등을 맡아서 가르친다. 


  매년 연극제에 출품하는 이유에 대해 김금삼 교사는 “학생들에게 목표를 세워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무대에 올라 관객과 오롯이 마주하는 것은 학생들이다. 때문에 완성도 있는 무대를 위해 학생들은 목표를 정하고 구슬땀을 흘리며 연극에 빠져든다. 이 과정에서 낮았던 자존감을 회복하고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고 있다. 


“아이들은 연극에서 한마디를 하기 위해 

  3시간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연극은 인내심과 끈기, 협업능력, 배려심, 양보 없이는 불가능하거든요. 연극을 함께 연습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목표에 도달하며 자신감을 얻습니다. 33년간 교육연극을 하면서 느낀 점은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참고 기다리면 무대는 올라가더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구슬땀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하고 때로는 수상의 기쁨으로도 이어진다. 다양한 무대 경험은 사회생활의 발판이 되기도 하고 더 큰 연극무대를 향한 도전이 되기도 한다. 올해 고3인 배지민, 정유아, 오병헌 학생은 ‘미라클’에서 배우의 꿈을 키워왔으며 더 큰 무대를 향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여러분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Mini Talk


배지민 3학년

배지민 3학년

  올해 <우월한 나라>(이민지 작(作))를 두 차례 공연했어요. 초기엔 연출을 맡았는데, 공연을 앞두고 똘마니역을 맡은 배우가 중도에 하차하면서 제가 배우로 투입됐어요. 미라클은 저에게 연극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알려줬고 지금은 저의 꿈이에요. 연극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연극을 통해 희망을 주고 싶어요.



정유아 3학년

정유아 3학년

제가 맡은 ‘나라’라는 아이는 직접 폭력을 쓰지는 않지만, 뒤에서 교묘하게 조종하는 아이예요. 저에게 연극이란 ‘새로운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중학교 때의 저는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는데, 미라클에서 활동하면서 자신감을 찾은 것 같아요. 지금은 학급 임원을 맡고 있으며 학생회에서도 활동하고 있어요.



오병헌 3학년

오병헌 3학년

연극을 하면서 내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어요.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하다 보면, 감정이 이입되어 배역처럼 변해있는 저를 발견하곤 해요. 연극을 하면서 학교생활이 완만해졌고 성적도 많이 향상됐어요. 가장 큰 변화는 행동에 자제력이 많이 생긴 거고요. 이번 공연에서는 대사가 너무 많아 암기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한시도 손에서 대본을 놓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서동건 2학년

서동건 2학년

작년에는 배우를 맡았는데, 연습하는 과정에서 말하는 속도나 발음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올해는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배우가 자꾸 바뀌는 상황이 생겼어요. 연습할 시간이 많이 부족해서 아쉬움도 크지만, 모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조명을 맡아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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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서 1학년

‘하루’역은 마음속에 야망을 품고 때를 기다리는 캐릭터예요.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 강인한 면도 있어요. 저는 성격이 소심하면서도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연기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발음도 좋아졌어요. 연극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연습하고 어울리며 구슬땀을 흘렸던 모든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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