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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고 전환이 자사고·외고·국제고 학생에게도 유익한 이유


글_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오는 2025년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된다. 그동안 자사고·외고·국제고로 유형화된 고교체제는 설립 취지와 다르게 학교 간의 서열화를 만들고, 사교육을 심화시키는 등 불평등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반고 중심의 고교 생태계 복원이 필요한 이유와 이를 통해 향후 일어날 변화는 무엇이고, 앞으로의 교육체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논의해본다. <편집자 주>

  이번 정부의 결정으로 자사고·외고·국제고가 2025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되게 되었다. 만시지탄이다.

  이들 고교가 없던 시절, 중학교는 사교육 무풍지대였다. 아이들이 독립된 주체로 서기 위해 거치는 사춘기 시절을 별 불편 없이 경험했다. 그런데 20여 년 전 특목고가 들어서고 10년 전 자사고가 들어서면서 고교가 대학 못지않게 서열화되고 대학들이 이들 학교 졸업생들을 우대한다는 소문이 자자해지자, 이들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는 1차 관문이 되면서 고입경쟁은 격화되었다. 사춘기, 즉 부모로부터 독립된 자기를 찾아가기 위한 자유는 실종되고 중학교 사교육비는 고교 사교육비를 압도했다.

  여기에 이들 고교들이 다단계 입시 과정을 통해 상위권 중학생들을 차례차례 독식하자 일반고는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인적 기반을 잃었다. 이는 비단 일반고만의 재앙이라 볼 수 없다. 특목고 학생들이야 상위권 대학들이 그들을 우대한다는 점과 면학 분위기가 좋다는 점에서 이런 체제를 싫어할 리 없다. 그러나 이는 짧은 생각이다. 이런 동질집단의 문화에 익숙하게 되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큰 문제에 부딪힌다. 학교 간판 때문에 좋은 기업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최근 기업 환경은 출신학교 간판과 동질집단 속에서 살아온 경험이 독이 되는 상황이다. 기업은 학교와는 달리 끼리끼리 모여 있는 고객들을 상대하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이해하며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 홍보해야 한다. 특목고 졸업 후 교사가 되고자 해도, 자기가 살아온 삶의 배경과 전혀 다른 아이들을 상대로 교사로서의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공존 능력을 통해 길러지는 자생력과 리더십

  그러니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욕구나 성향을 가진 소비자들을 상대로 그들의 욕구를 분석하며 그 필요에 맞추어 기업의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고, 수업시간에 내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잠자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그들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런 교사의 효능감 없이 안정적 직장이라 해서 교사로 정년을 마친다면, 그의 삶은 재앙이다.
즉, 고객과 학생들과 서비스 받아야 할 대상에 대한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공감 능력이 아니다. 공감이 능력이 되려면, 나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읽어내며 그들의 필요에 맞추어 소통할 때 가능하다. 그런 ‘능력’으로서의 공감을 경험하는 것은 초중고 시절이다. 그런데 그런 이질적인 집단 속에서 뒤엉킨 경험이 없이 오직 나와 비슷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좋은 면학 분위기를 즐기며 학창시절을 보내왔다면, 20대 후반부터 살아갈 40년의 직업 인생은 적잖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 국가들은 이런 역량을 키우기 위해 초중고 교육을 혁신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기질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사는 가운데 빚어지는 공존 능력을 키워야 직업의 영역에서도 자생력과 리더십이 길러진다는 그 이유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초중고 시절에 학생들의 성적과 부모의 경제력 등으로 나누어 교육시키는 분리교육 체제를 극도로 회피한다. 그런데 우리만 그런 방식을 허용해버렸다. 그로 인한 재앙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므로 특목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그 학교 소속 학생들에게 유익하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이런 분리교육을 가능하게 했던 고입 5~6단계 불공정 입시 경쟁 제도를 당연한 것처럼 방치했다. 영재고에서 먼저 우수학생을 뽑아가고 그다음 남는 학생들을 특목고와 자사고가 쓸어가고 그 후에 자율학교가, 그렇게 해서 남는 학생들을 일반고가 담아내는 방식은 전형적인 불공정 입시이다. 만일 대입에서 상위권 고등학생들을 서울대가 먼저 뽑아 간 후, 연대와 고대가 뽑아가고, 남는 학생들을 인서울권 대학들이, 그 후에 지방대가, 그 후에 전문대가 뽑아간다고 하면, 국민들은 그 부조리를 참아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고교입시에서는 버젓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용인되고 있었던 것이다.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으로
중학생들의 입시 경쟁은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 틀림없다.


여전히 남겨진 ‘입시에 유리한 교육과정’에 대한 우려

  그런데 정부가 외고·자사고·국제고를 2025년에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니 이런 문제들이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이라 기대한다. 지금은 실감 나지 않겠지만, 그때가 되면 중학생들은 더 이상 고입 경쟁 문제로 지금과 같은 수준의 고통은 겪지 않을 것이다. 중학교 교육도 학교와 교사들이 마음만 먹으면 정상화할 수 있는 기초는 놓이게 될 것이다. 다만 ‘어느 정도’라고 말한 것은,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이번 방침을 보니, 외고가 일반고로 전환되어도 그 학교의 외국어 중심 교육과정을 그대로 존중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고도 학점제에 발맞추어 교육과정을 얼마든지 외고처럼 특성화할 수 있으니, 표면적으로는 외고만의 차별적 혜택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다. 학교 마음대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라고 한다면, 너도나도 과학, 외국어, 수학 등 입시에 유리한 교육과정을 만들고 싶어 할 것이다. 좋은 일이 아니다. 더욱이 공립 일반고는 그렇게 하려 해도 교사 수급 문제 등으로 입시에 유리한 교육과정은 거의 불가능하고, 돈 많은 사립학교 정도가 그런 정책으로 혜택을 볼 것이다. 따라서 기존 외고·자사고·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화되어도 그 교육과정은 남을 것이다. 물론 지금보다는 나은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걱정은 된다. 정부가 이 문제에 신중해야 한다.


과학고·영재고 입시 준비 과정도 혁신 필요

  또 다른 문제는 과학고·영재고는 여전히 이번 정부의 결정에 예외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가 약속한 바대로 과학고·영재고의 입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개선은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입학생 숫자가 중학생 전체와 비교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소수 학교들이 중학생들의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고통에 가할 영향은 속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들 학교도 일반고로 전환하거나 혹은 영재교육 상 필요하다면 독립된 학교로서의 지위를 갖지 않고 위탁 교육기관으로 돌리는 것이 옳다.

  시간이 걸릴 문제이므로 입시부터 먼저 개선한다면, 이들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짧게는 초등 2~3학년, 길게는 5~6세 단계에서 시작되는 과학고·영재고 입시 준비 과정을 혁신해야한다. 현재 과학고·영재고 재학생들은 소수의 ‘타고난 영재’와 다수의 ‘만들어진 영재들’로 섞여 있다. 타고난 영재들만 가고 싶은 학교로 만들어야 한다. 평범한 아이를 굳이 영재로 만들기 위해 학원에 보내어 혹사하려는 부담을 없앨 입시제도와 학교 체제를 구상해야 한다. 한국의 과학기술 고급 인력을 양산해야 한다는 명분이 실제 이들 학교 존립 허용의 이유라면, 이들 학교 졸업생들 태반이 의대에 진학하려는 기현상을 철저히 바로잡아야 한다. 개인적 특권을 위해 막대한 국민 세금을 이들에게 쏟아붓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졸업하면 특권적 지위는 없고 오직 국가에 이바지하는 과학기술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만 격려하는 통로로 이들 학교를 관리할 때, 개인의 특권을 점유하려는 이상 열풍과 과도한 사교육 경쟁은 막을 수 있다.

  세간에서는 특목고·자사고 등을 없애면 강남 일반고가 각광을 받고 결국 강남 부동산값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 우려한다. 틀린 지적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낫다. 지금은 입시에 유리한 학교와 지역이 뒤섞여 중학생들을 입시 노예로 만들었다면,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으로 강남 이사 현상은 있겠지만 적어도 중학생들의 입시 경쟁은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 틀림없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또한, 강남 쏠림 현상을 막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입시 때 현재 서울대 등에 적용하고 있는 지역균형 할당제 등을 상위권 대학들에 확대 적용하고 그 비율을 높이면 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그 방향의 정책 개선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외고·자사고·국제고가 2025년에 일반고로 전환된다는 전제를 토대로 한 것이다. 해당 고교에서는 헌법 소원을 통해 이 시행령을 무력화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 사이에 현재 시행령에 기반을 두고 있는 고교체제를 법률에 근거한 안정적인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요구를 충족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게 됨에 따라 정책의 본래 목표는 왜곡되고 형식만 남게 된다. 새로운 교원수급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해소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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