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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복지, 전인적 성장을 돕는 통합지원망

글 _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원장

  코로나19 팬데믹이 미래를 앞당기기도 하였지만, 우리 사회에 내재된 문제를 증폭시키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교육격차이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을 통해 교육 단절은 피했지만, 학업성취도 조사 결과에서 중간층의 비율이 낮아지고 저성취 집단과 고성취 집단은 오히려 늘어난 코로나 디바이드라고 할 만한 양상이 드러났다. 올해 초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보다 우울해졌다’라거나 ‘코로나 이전보다 불안해졌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초등학교 저학년의 25%, 고학년의 30% 이상이었다. 그 외에도 친구관계와 교사와의 관계도 나빠졌다거나 멀어졌다고 응답한 비율이 좋아졌다거나 가까워졌다고 응답한 비율보다 높았다. 

  감염을 피하기 위해 온라인 원격 수업이 장기화되었을 때 돌봄이 필요한 자녀를 방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가정이 많았다. 이제 조금씩 일상이 회복되고 있으나 코로나 시기의 부정적 영향을 안고 있으며 감염 위험도 아직 남아 있다. 이러한 시점에 교육격차를 완화하고 모든 학생들이 학습 면에서나 정서발달 면에서 안전하고 조화롭게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복지가 정책 순위의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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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복지 정책의 전개

  요즈음에는 교육복지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25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5.31 교육개혁안에 교육복지라는 말이 있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교육복지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참여정부 시기 교육복지 정책 종합계획 수립 이후다. 이 종합계획에는 기초학력 향상, 학교부적응 학생 지원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중에서 저소득층 밀집 지역을 겨냥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 사업이 가장 주목을 받았고 이후 교육복지 정책의 전형으로 간주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교육복지라는 말보다 교육안전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 사업이 지속되었지만, 이 시기에는 기초학력 부진을 없애고 학력을 향상하는 정책을 강조하였다. 


  교육복지와 교육안전망, 두 용어는 정책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비슷하나 교육안전망은 일정 기준선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공적 서비스 체제를 강조하며, 교육복지는 모든 학습자, 특히 불리한 여건의 학습자가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포함한 공적 서비스의 제공 혹은 그 결과를 일컫는다. 어느 용어를 사용하건 정책의 배경으로 교육격차 해소가 있었다. 정책의 초점을 학력 면에서의 격차 해소, 기초학력 보장에 맞추는 경우와 학습자가 처한 상황과 여건의 불리함을 넘어서도록 하는 데 맞추는 경우는 접근 방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학습 면에서 격차 해소에 초점을 두더라도 학습자의 정서발달을 위한 지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며, 학습자의 불리함 극복에 초점을 두더라도 학력 향상을 도외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 교육복지나 교육안전망 관련 문서들에서도 개천에서 용을 다시 내야 한다는 비유가 강조되기도 하고, 개천을 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비유가 강조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중점적으로 추진하였던 기초학력부진 제로를 위한 학력향상 중점학교 사업은 학습자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학습부진을 벗어나고 성취를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학생들에게 교과 학습 보충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평가를 통해 부진 탈피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학생의 불리함 극복에 주목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 사업은 종래의 정책과는 구별되는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지역’ 접근과 ‘통합적’ 접근을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지역’ 접근을 강조한 것은, 학교 이외 다른 교육적 자원이 취약한 저소득층 밀집 지역에서 성장하는 학습자들이 유의미한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으려면 학교를 넘어선 지원과 학생을 둘러싼 환경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합적’ 접근을 강조한 것은 이전과는 달리 빈곤이 경제적 차원만이 아니라 문화, 정서, 사회적 자본 등 여러 차원이 결합된 중층적 양상을 지닌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예컨대 학습부진의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보충학습 기회만이 아니라 의미 있는 타자들과의 신뢰할 만한 관계가 형성된 안정된 돌봄이 함께 제공될 때 효과적이다. 통합적 접근은 학습자 중심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그러나 각 영역에 따라 조직이나 담당자가 다르면 한 학교나 기관에서도 분절적으로 이뤄지기 십상이다. 실제로 이 정책 사업은 이후 하위 영역들이 독립적인 정책으로 분화되기도 하였다. 학생들의 학력을 보장해 주는 기초학력부진 제로 정책, 학생들의 심리 정서에 특화되어 지원하는 위(Wee) 프로젝트, 돌봄 교실 확대, 도서관 활성화 등이 그 예이다. 정책의 분화는 한편으로는 각 분야의 전문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어려움을 중첩적으로 안고 있는 학생들에게 일면적인 접근을 하게 되거나, 학생을 두고 사업 간 경쟁하는 부작용이 초래되기도 한다.



생애단계별로 지원하는 해외의 교육복지

  기초학력부진 제로 정책은 미국 부시 대통령 시기 연방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했던 낙오방지법(No Child Left Behind)과 기조를 같이 한다. 미국 초중등교육법은 낙오방지법, 전원성취법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첫 장(타이틀원)에 불리한 여건의 학생을 위해 지원책을 명시하였다. 이 법은 특히 부시 행정부 시기 낙오자를 없애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결합하여 성취도 평가 결과를 근거로 학교의 책무성을 따졌다. 우리나라에서 작년에 제정된 기초학력보장법이 이와 취지는 같으나 단위 학교의 책무성을 묻는 것보다 모든 학생의 기초학력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 정책을 설계할 때 참고한 것은 영국과 프랑스의 교육우선지역( Education Action Zone[영], Zones d’Education Prioritaire[프]) 정책으로 둘 다 빈곤층 밀집 지원을 단위로 통합적인 접근을 취한 것이다. 미국에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 정책과 유사한 접근을 한 사례는 할렘아동지역(Harlem Children’s Zone, 이하 HCZ)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를 프로미스 네이버훗(Promise Neighborhood) 정책의 모델로 삼았다. HCZ는 포괄적인 지역 접근을 시도한다. 아동 청소년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자발성과 주도성을 진작하는 방향으로 문화를 바꾸는 한편 가족을 단위로 한 건강, 취업 지원을 함께하며, 영유아, 초중등,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역량을 키우며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생애단계별로 지원한다. 아울러 학생이 학업이나 정서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 교사와 학습·정서 심리 전문가, 변호사, 의사 등이 함께 협의를 통해 개별 아동에 맞는 해결책을 찾고 협력하는 통합적인 접근을 취한다. 



교육복지 정책의 방향은 ‘통합’

  국내의 사정과 외국 사례를 종합적으로 살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총체적으로 제시하면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통합은 다음과 같이 다차원적으로 조망하여야 하나 목표는 학생의 전인적 성장으로 집약된다. 


  첫째, 여러 정책 사업 간 분절적 지원 방식을 지양하고 학습자를 중심에 두고 요구와 필요에 의해 긴밀하게 협력하여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이미 전문화된 지원 체제를 물리적으로 하나로 만들 수 없으니 학습자를 둘러싼 교사를 비롯한 전문가, 필요한 지역사회 자원이 긴밀한 협의와 협력이 가능한 체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 내 하위 조직 간, 부처 간에도 통합에 준하는 긴밀한 연계 협력이 요구된다.


  둘째, 교육과정과 통합이다. 교육복지 정책은 교육 정책이다. 교육복지 혹은 교육안전망은 직접적 교육활동과 거리가 있는 이차적 지원 체제로 분리되어서는 곤란하다. 교육과정이 잘 맞지 않는 가르치기 힘든 학생의 증가를 교육복지 정책만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평생학습 시대를 살아갈 학습자가 기본 학습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교사는 학습자 특성에 따라 유연하게 교육과정을 적용하는 권한을 가지며, 지원 활동도 학습자 역량 함양의 방향으로 모아지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교육활동과 지원활동이 학습자의 삶과 괴리된 것이 아니라 삶과 통합되는 방향이어야 한다. 아동 청소년기는 가변성이 큰 시기이다. 특별히 전문적 진단과 접근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상에서 아동 청소년의 사소한 관심을 존중하고 지적·도덕적인 사고력을 적절하게 자극하며 또래들과 함께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해 가도록 하는 것은 전인적 성장에 자양분이 된다. 


  넷째,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삶의 공간과 문화를 바꾸어내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가족의 구조와 기능에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지역사회가 교육을 중심으로 자치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된다.


  이렇게 보면 교육복지나 교육안전망 정책의 방향은 미래교육의 방향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교육복지 정책은 그동안 현장에서 시도하였던 경험을 토대로 미래교육을 앞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도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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